전신주 위 까치부부, 어디로 갔을까?

2017.03.28 09:45:02

내가 살고 있는 곳은 수원시 권선구 구운동(九雲洞)이다. 총각 때 아파트를 분양 받은 후 결혼해 처음 입주한 곳이 삼환아파트 15동이다. 직장이 구운중학교라 걸어다니기에 가까워 건강에도 좋았다. 딸과 아들, 자식들이 태어나 좀 더 넓은 면적으로 이사한 것이 같은 삼환아파트 7동아다. 다만 15동보다 좋은 점은 층수가 높아 햇볕이 잘 든다는 것이다.

 

지금 살고 있는 아파트는 삼환아파트 바로 옆이다. 일월저수지가 훤히 내려다보이는 경관이 좋은 곳이다. 벌써 이 아파트에 정착한 지 10년이 넘었다. 아내는 환경을 바꾸어보자며 새로운 곳으로 이사 가자고 하지만 내가 생각하기에는 이곳보다 쾌적하게 살기 좋은 곳 같지는 않다. 벌써 이곳에 정이 붙은 것이다.

 

여기서는 사시사철 변하는 일월공원의 모습을 볼 수 있다. 건강을 관리하기에도 좋다. 일월저수지를 한 바퀴 돌면 1.9km인데 빠른 걸음으로 20분 소요된다. 여기서 오리, 물병아리, 물닭 가족 등을 볼 수 있고 잉어가 유유히 헤엄치는 모습을 보노라면 시간 가는 줄 모른다. 그 뿐인가? 가까이에는 일월도서관이 있어 지력을 키울 수 있다. 그래서 이곳에 사는 것이다.


 

얼마 전부터인가? 일월공원 입구 전신주에 까치가 집을 짓기 시작했다. 부지런히 나뭇가지를 물어 나르는데 곧 집이 완성될 것 같다. 한편으론 걱정도 된다. 한국전력에서 알면 곧바로 헐어내기 때문이다. 아니나 다를까 한국전력의 사다리차가 보인다. 직원은 기다란 막대로 까치집을 부수기 시작한다. 까치부부는 어쩔 줄 모르고 깍깍소리를 내며 날아다닌다.

 

이 까치부부는 왜 나무 위에다 집을 짓지 않고 전신주에다 집을 지었을까? 잠시 내가 까치가 돼 본다. 일월공원 근처에 까치집을 지을 만한 크고 튼튼하고 안전한 나무를 발견하지 못한 것이다. 오히려 전신주가 안전하다고 본 것이다. 무거운 까치집을 굳건히 받쳐주고 바람이 물어도 흔들리지 않는 것이 전신주다.

 

까치부부가 2세 탄생을 위한 집을 짓는 것은 본능이다. 누가 가르쳐주지 않아도 종족 번식을 위해 짝을 맺고 협동하여 집을 짓는다. 사랑을 나누고 집에다 알을 낳는다. 오랜 시간 부부가 알을 품어 부화시킨다. 새끼가 깨어나면 먹이를 물어다가 부지런히 키운다. 그리해 부부는 새끼들이 독립할 수 있게끔 한다. 까치 한 쌍이 하나의 가정을 이루고 새끼를 키우는 것이다.

 


한국전력 차량이 떠나고 난 후에 전신주 근처에 가 보았다. 도로 바닥과 보도블록에 까치집의 잔해가 수북이 쌓여 있다. 이 많은 나뭇가지들을 어디서 물어 왔을까? 이제 집이 없어졌으니 까지 부부는 다시 집을 지어야 한다. 다시 안전한 곳을 찾아 튼튼한 집을 다시 지어야 하는 것이다.

 

나는 이 까치부부가 전신주에 둥지를 만들 수밖에 없는 이유를 알고 있다. 사실 이 전신주 옆에는 커다란 미루나무가 있었다. 아파트 8층 높이에 이르는 거대한 나무였다. 작년까지만 해도 이 미루나무에는 까치집이 세 개나 있었다. 해마다 까치집이 하나씩 늘어났었다. 그런데 어느 날 갑자기 이 나무가 베어졌다. 봄이면 솜털처럼 날아다니는 열매가 사람들에게 알레르기를 일으키는 등 해를 끼친다는 민원이 발생한 후 이루어진 일이다.

 

한국전력에선 해마다 까치와의 전쟁을 선포한다. 전신주의 까치집 때문에 정전사고가 발생하기 때문이다. 까치집 재료는 나뭇가지뿐 아니라 철사 등 쇠붙이도 들어가 있어 전기 합선을 일으키기도 한다. 한국전력 입장에선 까치가 사고뭉치다. 그리하여 어느 지역에선 봄철에 하루 50여개 씩 까치집을 부수어 기간 중 총 3000 여개를 부수었다는 기록도 있다.

 

전신주 위 까치부부는 어디로 가서 다시 집을 지을까? 그 의문이 오늘 해소됐다. 귀가한 아내가 말한다. “여보, 퇴근하며 보니까 우리 동 17층 베란다에 까치가 나뭇가지를 물고 날아가네!” 나는 카메라를 들고 나갔다. 17층 파라보노 안테나 뒤에 커다란 까치집이 보인다까치가 농작물에 피해를 준다고? 사람들이 농약을 뿌려 까치의 먹이가 되는 벌레를 죽인 것이 그 원인은 아닐까? 까치와 인간이 공존하는 삶을 생각해 본다

이영관 교육칼럼니스트 yyg99@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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