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賞)에 대한 명상

2017.06.02 14:31:34

박인기의 말에게 말 걸기 126회

01
박 선생이 이번에 어떠어떠한 공적으로 상(賞)을 받는다는 이야기가 좌중에 나온다. 그때 누군가 불쑥 진지한 표정으로 말한다. “나도 상을 많이 받아 봤지요.” 옆에 있던 사람이 묻는다. “선생님은 무슨 상을 받으셨는데요?” “아, 나는 아침저녁으로 밥상을 받습니다.” 옛날에 유행했던 ‘아재 개그’ 중 하나다. 이 썰렁한 개그 안에도 상 받는 사람에 대한 부러움이 은연중에 숨어 있다. 누구나 상 받고 싶다는 욕구가 있음도 드러난다.

상(賞)은 잘한 일이나 우수한 성과를 칭찬해 주는 표적이다. 그래서 상은 명예의 증거품이다. 상금이 많으면 금상첨화(錦上添花)지만, 상금에 이끌리는 상은 그저 그렇고 그런 상인지도 모른다. 상금의 가치가 명예의 가치를 넘어서지 못하기 때문이다. 상금은 사라져도 상의 명예는 쉽사리 사라지지 않는다. 노벨상이 그렇다. 그런데 참, 세상이 어지럽다 보니 돈으로 상을 사려는 사람도 있다. 상이 타락한 것인지, 돈이 타락한 것인지 모르겠다.

흔히 ‘상을 탄다’고도 말한다. 곗돈을 타다, 배급을 타다, 봉급을 타다 등과 같은 쓰임이라고 보면 된다. 복이나 운명 같은 것을 태어나면서부터 가지는 것을 ‘타고난다’고 하는데, 이것도 ‘상을 탄다’의 ‘타다’와 크게는 같은 범주에 든다. 상을 준다는 뜻으로 ‘시상(施賞)’이란 말이 있다. ‘시(施)’는 ‘베풀다’라는 뜻이니, 상이란 주는 쪽에서 무언가 베풀고 있음을 느끼게 한다. 상은 주고받음이 함께 반듯해야 한다. 세상에 민망한 것 중에 하나가 상을 주려고 해도 상 받기를 거부하는 경우다.

상을 받는 사람의 심리적 태도는 다채롭고 다양하다. 상으로 인해 기쁜 사람, 후련한 사람, 겸손해지는 사람, 감사하는 사람 등을 본다. 상의 순기능이다. 반면에 상을 받고서도 더 욕망에 목마른 사람, 억울한 사람, 잘난 척하고 싶은 사람, 질투를 느끼는 사람이 있다. 더러는 허무감을 느끼는 사람도 있다고 한다. 상의 역기능이다. 상이 지나친 경쟁의 산물일 때 이런 부작용이 생긴다. 그러나 그게 상 탓인가, 사람 탓인가. 간단치가 않다. 엄밀히 보면 상은 수상자를 위한 것이라기보다는 상 그 자체를 위한 것일 때가 많다. 세상에 유명한 상, 그래서 상 자체가 이미 제도가 돼버린 상은 수상자를 위한 상을 넘어서서 세상을 위한 상으로 진화하기 때문이다.

상(賞)으로 인해 더욱 분발하는 경우도 있지만, 오히려 더 나태해지는 경우도 있다. 미시계량경제학자로서 노벨상을 받은 대니얼 맥패든(Daniel L. McFadden)의 말이 정곡을 찌른다. “조심하지 않으면 노벨상이 나의 경력을 끝장내는 상이 될 수 있다. 자칫 방심하면 온갖 기념행사의 테이프 리본을 자르고 다니는 데에 나의 모든 시간을 허비할지도 모른다.” 좀 더 과격한 경고도 있다. 영국의 노벨 문학상 수상자 엘리엇(Thomas Stearns Eliot)은 이렇게 말했다. “노벨상은 수상자 자신의 장례식 티켓이 될 가능성이 크다. 노벨상을 받은 후 뭔가 더 큰 일을 해낸 사람은 하나도 없다.”

02
상은 수월성을 발휘한 자에게 주는 것이 원칙이다. 그런데 수월성이란 개인 차원에서는 명료할지 모르겠으나 사회 차원에서는 그리 간단한 문제가 아니다. 개인의 수월성이 사회 전체의 공동선에 기여하지 못하는 경우도 있기 때문이다. 미국의 진화생물학자인 데이비드 슬론 윌슨이 지은 <진화론의 유혹(Evolution for Everyone)>에서 소개한 연구 사례를 보자.

진화생물학에 관심을 가진 동물학자 윌리엄 뮤어(William Muir)는 닭의 달걀 생산성에 대한 실험 연구를 했다. 그는 선택적 품종 개량을 통해 달걀 생산량을 늘리고 싶어 했다. 이를 위해 좁은 우리에 9~12마리의 닭을 집어넣고 키우는 양계 생태를 그대로 실험 대상으로 삼았다. 그 안에서 다음 세대 닭의 품종 개량을 위해 두 가지 방법을 시도했다.

첫째 집단은 각각의 우리에서 달걀 생산량이 가장 많은 닭을 한 마리씩 골라내 이들로만 따로 한 우리씩을 만들어 관리했다. 요컨대 생산 능력이 뛰어난 닭들만 모아서 지내도록 한 것이다. 둘째 집단은 여러 우리 중에서 달걀 생산량이 가장 높은 우리 하나를 통째로 선정해 관리했다. 두 집단 모두 관리의 방식은 같았다.

어느 방법이 더 효과적인 결과를 가져올 것으로 생각하는가. 혹시 두 방법이 큰 차이가 없으리라 예측하지는 않는가. 달걀 생산력이 우수한 닭만 모아 둔 첫 번째 방법이 더 나을 거라는 생각을 할 수도 있다. 우수한 정예분자만 모았으니 말이다. 두 번째 방법으로 하면 선정된 우리의 생산력이 다른 우리보다 상대적으로 나을 수는 있지만, 그 우리에 있는 닭이 첫 번째처럼 모두 우수한 정예분자라고는 할 수 없기 때문이다. 

뮤어는 연구의 결과를 학회에 보고했다. 그는 첫 번째 방법으로 선별돼 한 우리에 지내게 된 닭들이 여섯 세대가 지난 뒤에 어떻게 됐는지를 슬라이드로 보여줬다. 우리 안에 집어넣은 닭 아홉 마리 중에 여섯 마리가 죽어 세 마리밖에 남지 않았다. 살아남은 세 마리마저 그칠 줄 모르는 공격으로 서로 하도 물어뜯어 깃털이 거의 남아 있지 않았다. 사정을 추적해 보니 생산성이 가장 높던 닭들은 같은 우리에 있던 다른 닭들의 생산성을 억제하는 불공정하고 비열한 방식으로 자신의 생산성을 높인 것이었다.

두 번째 방법으로 선정, 관리된 닭들의 모습도 슬라이드로 보고됐다. 우리 안에는 통통히 살이 오르고 깃털도 온전한 닭 아홉 마리가 있었다. 달걀 생산량도 급증했다. 결국, 생산성이 가장 높은 집단은 공격적 자질을 포기하고 조화롭게 공존할 수 있는 협동적 자질을 선택한 것이었다. 아니 그렇게 함으로써 생산성을 높인 것이다. 집단 차원에서 자연 선택이 수반된 셈이라 할 수 있다.

닭의 경우를 그대로 사람에게 적용할 수는 없겠지만, 경쟁과 수월성의 관계를 사회생물학의 차원에서 조명한 연구라는 점에서 암시하는 바가 크다. 뮤어의 연구 보고를 듣고 자신의 직장이나 연구팀이 첫 번째 닭 우리와 너무나 흡사하다고 토로한 사람들이 많았다고 한다. 어떤 교수는 자기가 속한 학과가 첫 번째 우리와 같다고 고백했다고 한다. 혹시 우리의 학교와 교실은 그렇지 않은지 생각해 볼 일이다. 만약에 그런 점이 적지 않다면, 우수한 개인에게만 상을 주는 방식은 개선될 필요가 있다. 협동과 조화의 자질을 잘 드러내는 단체나 그룹에도 더 다양한 상을 줄 수 있도록 해야 할 것이다. 

03
상은 불가피하게 사회적이다. 상은 사회적 경쟁 내지는 격려의 인자를 갖고 등장하기 때문이다. 상은 개인에게 수여되지만 동시에 사회적 효과를 늘 목표로 한다. 부모가 자녀에게 주는 상, 선생님이 학생에게 주는 상도 어쩔 수 없이 사회적 효과를 발생시킨다. 사회적 효과 면에서 상과 벌은 같다. 똑같은 구조로 ‘사회적 기능’을 하기 때문이다. 무조건 칭찬하고 상을 많이 주면 좋을 것 같지만, 벌을 줄 때 못지않은 신중함과 보살핌이 따라야 한다. 상 잘 주기는 벌 잘 주기보다 훨씬 어렵다.

상이 가지는 사회성은 또 있다. 어떤 공적으로 상을 받는가 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누구에게서 상을 받는지도 중요하다. 상이 많아지면서 상의 위신이 추락하는 경우도 있다. 줬던 상을 회수해 가기도 하고, 주겠다는 상을 거부하기도 한다. 이러다가는 상을 평가하는 상이 따로 있어야 할지도 모르겠다. 상에 대한 상이 곧 생길 것 같다. 가짜 뉴스 시대에 진짜 뉴스를 판별하겠다는 언론이 생겨나듯이 말이다.

생각해 보니 상의 사회성은 골치 아프다. 상의 사회성을 걱정하지 않아도 되는, 그런 상이 있을까. 그것은 ‘내가 나에게 주는 상’이라 할 수 있다. 내가 나에게 주는 상은 내 마음 안에서만 수여되는 상이다. 물론 주관적인 상이다. 그러나 이 상이야말로 정말로 나의 동기를 북돋우고, 처진 자존감을 이끌어 올리고, 나를 ‘힐링’할 수 있는 묘한 힘이 있다. 쓸데없는 경쟁과 질투의 불순물을 다 걸러내기 때문이다. 힘들 때마다 내가 나에게 상을 주자. 
박인기 경인교육대학교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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