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떻게 배우는가를 알아야 교육이 산다

2017.08.07 13:30:43

오늘날 교육현장이 너무 힘들다고 하는 소리가 여기저기에서 들려온다. 그 이유는 매우 다양하지만 예전에는 학교 교실만을 통하여 배울 수 있는 한 길 통로가 열려 있었다. 그래서 대부분의 학생들은 일정 부분 공유된 지식에서 큰 차이가 없었다. 하지만 지금은 양상이 너무 다르다. 아이들이 많이 달라지고 정보의 개인차가 너무 심하다. 그러다 보니 선생님이 가르친 것으로부터 큰 흥미를 얻지 못하는 경향이 많다. 실제로 지금 받는 수업이 호기심과 미래를 좌우할 수 있는 정보라고 확신하면서 교사의 수업에 의존하는 학생은 거의 없다.


이처럼 상황이 변했는데도 교사들의 의식 수준은 학생들 수준을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 교사는 아직도 학생들이 어떻게 학습하는가에 대한 문제의식 보다는 어떻게 하면 현재 주어진 교육과정, 단위 시간 학습과제를 잘 가르칠까에 대한 관심에 몰입하고 있다. 그래서 이 갭이 크기에 아이들이 학습에서 도피함으로 교육이 형식화 되고 있다.


선생님이 교육을 시킨다는 것은 학습이 일어날 수 있다는 하나의 여건이자 신호에 불과하다. 지금 학습이 일어나지 않는데도 열심히 교사가 내용을 설명하면 학생들이 듣고 학습이 일어나는 것으로 착각하는 사이에 많은 아이들이 엎드려 버린다. 그러기에 평가는 의식화 되어 있고 얼마나 정보를 잘 정리하여 습득했는가를 알아보는 중간, 기말고사를 보면 교과 평균 성적이 60점대를 오르지 못하고 있다. 이같은 점수 결과를 보면서 교사는 자신의 능력을 의심하게 된다. 왜 난 성취 목표점수를 75점으로 잡았는데 이 점수 밖에 안나오는 것인가 말이다.


이같은 차이는 교사가 대학에서 교육과 관련하여 많은 것을 배웠지만 실제로 자신이 중, 고등학교를 다니면서 배운 학습 방식의 비중이 교사의 생각 속에 큰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라 생각한다. 이같은 과거의 내가 배웠던 방법으로는 학습과 거리가 멀어진 아이들을 구원할 방법이 없다. 무엇보다도 지금 아이들이 어떻게 학습하고 있는가에 대한 관점이 정립되지 않고는 학습이 이뤄질 수 없다.


과거에는 교사의 권위와 관심, 노력으로 교육이 수행됐다. 나름 학생들은 교사를 존경하고 교사의 가르침을 거의 수용했기에 교육은 붕괴되지 않고 지금까지 이어질 수 있었다. 이러한 증거는 1980년대 학생들을 가르친 기록에서 엿볼 수 있다.


 "저는 1학기 때에는 사회 성적이 좋지 않았는데 선생님을 만난 뒤부터 사회라는 과목이 재미있고 성적도 좋아져서 저는 매우 기뼜답니다. 그래서 저는 어럽다고 생각했던 사회과목이 쉬운지를 그때 알았습니다. (중략) 3학년때 저는 선생님께서 사회를 가르쳤으면 하고 마음 속으로 빌었습니다."


이렇게 수업을 했던 아이들이 지금은 50대를 넘어서 이 사회의 중견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이중에 어떤 이는 사업가로, 판사, 변호사, 교수,  의원직을 수행하면서 그 역할도 잘 감당하고 있다.

김광섭 교육칼럼니스트 ggs1953@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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