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복자매의 한 가족 되기 '바닷마을 다이어리'

2017.10.16 13:16:05

오랜만에 일본영화를 감상했다. 독도나 위안부 문제 등 전범(戰犯) 자체를 인정하지 않는 아베정권을 맹렬히 질타하는 입장이지만, 그 때문은 아니다. 내가 오랜만에 일본영화를 본 것은 한국시장에서 맥을 못추고 있어서다. 일본영화는 그들의 만화처럼 결코 세계적이지 않다. 한국영화 보기도 바쁜데, 부러 극장까지 찾아가 일본영화를 볼 필요성을 못느낀 것이라 할까.

그런데 추석특선 TV영화표를 보다가 ‘바닷마을 다이어리’(감독 고레에다 히로카즈)가 눈에 들어왔다. 마침 고레에다는 한국 팬이 많은 것으로 알려진 감독이다. 2013년년 칸국제영화제 심사위원상을 받은 그의 ‘그렇게 아버지가 된다’는 12만 5324명을 동원, 일본영화로선 나름 흥행한 영화로 기록되기도 했다.

방송시간도 ‘바닷마을 다이어리’를 보게 하는데 한몫했다. EBS ‘금요극장’ 전파를 탔는데, 평소 고정적으로 보던 어떤 프로나 다른 방송사 추석특선 영화들과도 겹치지 않았다. 편성전략은 좋았지만, 그러나 좀 생뚱맞다는 인상을 지울 수 없었다. ‘바닷마을 다이어리’가 평소 ‘금요극장’에서 방송하는 고전영화들과 너무 다른 최신작이기 때문이다.

‘바닷마을 다이어리’는 2015년 12월 17일 개봉한 영화다. 일반극장 개봉 전 제20회부산국제영화제 초청작으로 상영된 바 있다. 그때 영화제에 참석한 고레에다 감독은 한겨레(2015.10.7.) 인터뷰에서 “송강호와 언젠가는 꼭 영화 찍고 싶다”는 다짐을 밝혀 눈길을 끌기도 했다. 그로부터 2년이 지난 지금 그런 소식은 들리지 않고 있다.

‘바닷마을 다이어리’는 제20회부산국제영화제 프로그래머가 추천한 6편의 영화에 들어있다. 75개국 304편이 상영작이었으니 자그만치 50대 1의 경쟁률을 뚫은 대단한 영화라 할 수 있다. “부모없이 오순도순 살아가는 자매 이야기는 슬픈 듯하지만, 한편으론 샤방샤방한 영화. 뛰어난 흡인력은 고레에다 감독이 왜 거장인지를 보여준다”(한겨레, 2015.9.30.)가 추천의 말이다.

‘바닷마을 다이어리’는 한 마디로 이복자매의 한 가족 되기 영화이다. 장례식이 시작과 끝을 장식하지만, 영화 전체적으로 밝고 따뜻한 느낌을 주는 것은 그래서다. 사치(아야세 하루카)⋅요시노(나가사와 마사미)⋅치카(가호) 세 자매는 15년이나 안본 아버지 부음 연락을 받고 찾아간 장례식장에서 이복동생 스즈(히로세 스즈)를 만난다.

스즈는 아버지 두 번째 부인의 딸이다. 아버지 임종을 맞은 지금의 부인은 세 번째이기에 스즈와 아무 관계도 아니다. 따라서 가련한 신세의 스즈다. 아버지 첫째 부인의 소생인 세 자매는 가련한 처지에 놓인 스즈를 별다른 거부감없이 가족으로 받아들인다. 그냥 받아들이기만 한 것이 아니다. 진심으로 정성을 다한 동생 받아들이기다.

가령 술 취해 잠든 스즈를 세 자매가 다소 신기한 표정으로 바라보는 장면은 뭔가 찡한 여운을 안겨준다. 아주 보기 드문 장면으로 신선해 보인다. 그것이 그런 느낌을 주는지도 모른다. 바람이 나 조강지처와 자식들을 버리고 집을 나간 아버지조차 “저런 여동생을 남겨줬으니까” 구제불능이었지만, 정말 다정한 사람이었을 것이라 긍정한다.

그런 이복자매의 한 가족 되기는 가족의 소중한 의미를 환기 또는 전달한다. 스즈를 통해 기억 희미한 아빠 추억하기에 나선 치카, 뱅어 토스트 먹으며 아버질 떠올리는 스즈, 할머니 옷들을 들어올리며 냄새까지 맡아보는 세 자매들이 그렇다. 할머니, 아버지로까지 이어지는 가족사랑의 의미를 깨닫게 해준다. 불운한 가족사 영화이면서도 어둡거나 슬프지 않은 이유다.

“가끔은 남의 말도 들을만하다니까”라든가 “괜찮은 여자일수록 비밀이 많다는 것 몰라?” 등 기억해둘만한 대사와 다르게 좀 아니지 싶은 것도 있다. 우선 “내 존재만으로도 상처받는 사람이 있다”며 괴로워하는 스즈가 그렇다. 과연 15살 중학생이 할 수 있는 생각일까? 유부남일망정 사랑하는 사람과 헤어지고도 되게 씩씩한 사치 역시 좀 아니지 싶다.

어찌된 일인지 사치 생모가 떠나가는 기차역엔 다른 승객은커녕 역무원조차 없다. 세세한 일상적 디테일이 박진감을 안겨주는 영화의 전반적 인상과 동떨어진 것이어서 좀 아쉽다. 대사 없이 생김새나 쌀 씻고 빨래 걷는 사치 네 자매 모습만 보면 그들이 일본 배우임을 깜박 잊게 된다. 영락없는 한국 배우란 느낌이 되게 신기하다.
장세진 전 교사, 문학⋅방송⋅영화평론가 yeon590@dreamwiz.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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