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성에 대한 반성

2017.11.01 09:00:00

“음주운전이란 잘못된 행동으로 피해를 드리게 되어 사죄의 마음으로 반성합니다. 향후 본인은 얼마간 무면허 상태이기 때문에, 본인의 차량은 수리해서 팔고, 집에서 근무지까지 멀기는 하지만 대중교통을 이용하거나 자전거로 출퇴근을 병행하겠습니다. 그리고 절대로 무면허 운전을 하지 않을 것입니다. 다시는 이와 같이 어리석은 일을 저지르지 않고 선량한 시민으로 살아가겠습니다. 가정에서는 아내와 자녀로부터 존경받는 가장이 되도록 열심히 살겠습니다. 판사님께서 이러한 형편을 고려하시어 선처해 주기를 간곡히 부탁드립니다.”


인터넷 포털 검색에서 ‘반성문’을 치고 검색해 보았다. 그랬더니 ‘반성문 양식과 예문’을 올려놓은 사이트들이 있었다. 위에 소개한 글은 음주운전으로 사고를 낸 사람이 법원의 판사에게 제출한 반성문인데, 인터넷에 있는 예시 글의 일부를 옮겨와 본 것이다. 물론 전문을 다 받아 가려면 유료이다. 이런 식으로 돈을 내고서라도 반성문 양식과 예문을 구하는 사람이 있으니까 반성문 장사가 이루어지는 것이리라.


음주운전 사고는 분명 잘못된 것이기에 재판에서 처벌까지 받게 되었다. 그러하니 반성문 아니라 더한 것을 제출해서라도 처벌을 경감하고 싶은 입장일 것이다. 그런 입장을 이해하면서도, 이렇게 반성문을, 자신의 마음을 담아 직접 쓰지 않고, 인터넷에서 구입하여 편리하게 제출하려는 데 대해서는 전폭적인 신뢰를 주기 어렵다. 반성의 진정성이 떨어진다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판사들도 이런 반성문 제출 풍조를 알까.


검색창에 들어 간 김에 반성문 관련 사이트를 더 뒤져 보았다. 정말 생각지도 못했던 반성문들의 사례가 즐비했다. 남편이 아내에게 잦은 음주를 반성하는 반성문, 남편이 아내에게 자신의 게으름에 대해서 반성하는 반성문, 아내가 남편에게 홈쇼핑 과잉을 반성하는 반성문 등은 흔히 있을수 있는 반성 형태로 보였다. 부모가 자녀에게 심한 말을 한 것을 반성하는 반성문, 엄마가 아들에게 자신의 행동에 대해서 반성하는 반성문 등은 부모의 반성이라는 점이 특이했다. 옛날 같으면 없었던 반성 양태이다.


학원에 빠진 것에 대해 부모에게 반성하는 반성문, 자녀가 부모에게 실언한 것에 대해 반성하는 반성문, 시험 부정을 모의한 것에 대해서 반성하는 반성문 등은 이전에도 보아왔던 것이다. 매우 구체적인 정황을 반영한 것으로, 시아버님의 제사를 잊은 아내가 남편에게 반성하는 반성문, 부모님께 부부싸움을 한 것에 대해서 반성하는 반성문까지도 있었다. 거듭 말하지만 이들 반성문 양식과 예시 글은 모두 돈을 내어야 다운받을 수 있다. 반성문을 사고팔고 하다니, 직접 쓰지 않고 돈 주고 사서 반성문을 제출한 데 대한 반성문이 있어야 할 것 같다. 아니, 그것조차도 인터넷에서 돈을 내고 다운받아서 제출하려나.


그렇구나. 반성을 가시적 행동으로 보일 때는 반성문이라는 형식이 있었지! 새삼 다시 알았다. 나는 언제 반성문을 썼던가. 초등 3학년 때 담임 선생님은 자신의 반성을 우리에게 가끔 보여주셨다. 그리고 우리에게도 반성문을 자주 써내도록 하셨다. 사관후보생 훈련 때는 ‘수양록’을 적어야 했는데, 무언가 반성을 요구하는 기제가 들어 있었다. 쫓기듯 써내는 반성문에는 정작 ‘반성’이 없다. 그래서 현실의 반성문은 자칫 상투적으로 흐르기 쉽다. 인터넷에서 돈 내고 다운받는 반성문도 상투성을 면하기 어렵다. 반성과 반성문은 반드시 일치하지는 않는다. 아니, 서로 배반할 수도 있다.


인터넷에는 학생들이 선생님께 제출하는 반성문의 양식도 있었다. ‘반성문’이란 표제를 쓰지 않고, ‘선생님께 들려드리는 이야기’라는 제목으로 된 양식이다. 이 반성문 양식은 크게 세 가지로 구성되어 있다. 첫째, 본인이 했던 일을 적는다. 누구와, 언제, 어디서, 어떤 일을, 왜 했는지를 적도록 한다. 둘째, 이 일과 관련해서 ‘잘못했다고 생각하는 일’과 ‘앞으로 어떻게 할 것인가’를 적도록 한다. 그리고 셋째, 선생님 말씀을 적고 선생님 도장을 받고, 부모님 말씀을 적고 부모님 도장을 받도록 하는 양식이다.


반성을 일단 행동으로 옮기면 마음에 품었던 원래의 반성적 사유(思惟)대로만 진행되지 않을 수도 있다. 생각과 달리 현실에서의 행동은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 사이에서 조정을 받기 때문이다. 그런가 하면 반성하는 마음은 없었는데 닥친 곤란한 상황을 모면하자니 반성하는 행동을 보여주어야 하는 경우도 있다. 이게 의외로 많다고 한다. 관계가 복잡다단하고, 손해와 이익이 민감하게 오가는 사회에서는 ‘반성하는 마음’과 ‘반성 행동’이 다르게 갈 때가 늘어난다는 것이다. 앞에서 본 법원 판사에게 제출한 반성문이 그 예이다.

반성의 본질은 무엇인가. 반성은 본질적으로 ‘내적 성찰’이다. 반성은 사고(思考)의 차원에서 보면 그 자체로 의미 있는 독립된 사고 범주이다. 일찍이 ‘반성적 사고(reflective thinking)’라는 용어가 있지 않았는가. 그래서 철학을 지향하는 사람들은 ‘반성’이라는 말을 좋아한다. 반성은 인간이 자신과 세계를 다시 더 깊이 돌아보려는 철학적 성찰의 일종이기 때문이다. 철학적 성찰로서의 반성은 우리에게 도덕적 안목을 갖게 한다. 반성은 ‘도덕적 사고’의한 양태이기도 한 것이다.


진실로 존재론적 고뇌가 진지하게 묻어나는 반성이 ‘훼손되지 않은 반성’의 원형이다. 바깥으로 보여주는 ‘반성의 기술’에 집착하면 그때부터 반성의 본질이 훼손된다. ‘정치적 수사’로 전락한 정치인들의 반성을 우리는 얼마나 많이 목격하는가. 이미 변질화되어 의미도 없고 표정도 없는 반성은 또 얼마나 많은가. 밖으로 보여주는 반성, 행동으로 확인해야 직성이 풀리는 반성, 이것에 대한 반성, 즉 재고(再考)가 필요하다. 교육에서도 반성을 무슨 행동 도식처럼 강조할 일은 아니다. 반성의 생명은 자발성이다. 먼저 자발성을 일깨워 주는 반성의 교육적 맥락(context)를 살려주는 것이 필요하다.


반성이 점차 사라지는 세태이다. 반성이라는 것이 낡은 유물처럼 보일 수도 있다. 생각해 보면 근대 국가주의나 계몽주의 이데올로기 시절에는 반성도 넘쳐났다. 애국심이 있는지를 반성하고, 국산품을 애용하는지를 반성하고, 심지어 물자를 얼마나 아껴 쓰는지에 대해서 일상으로 반성하게 하던 시절도 있었다. 스스로 생겨나는 반성이라기보다는 제도가 요구하는 반성이라 할 수 있다. 북한 사회가 인민들에게 생활 습관처럼요구하는 ‘자아비판’은 제도화되어 강제되는 반성의 대표적인 사례이다.


과거 우리가 감당했던 반성은 무언가 억눌려서 해야 했던, ‘억지스러운 고백’ 같은 것이기도 했다. 반성은 더러 정죄(定罪) 받는 의식(儀式)으로서 다가왔었다. 반성과 처벌이 늘 같은 묶음으로 붙어 다녔다. 그러다 보니 반성은 각자의 내부 검열 기제로 따라다니면서, 겉으로 안 보이게 안으로 습관화되기도 했다. 물론 이런 것을 온당한 ‘반성’이라고 하기는 좀 그렇다.


아무튼 반성이 사라져 가고 있다. 후련해야 할 터인데, 그렇지만은 않다. 우리 사회가 진정한 반성을 감당해 보지도 못한 채, 반성이 사라져가기 때문이다. 이 점이 아쉽고 안타깝다. ‘반성’이 빠져나간 자리를 ‘자랑’이 점령한다. 이런 변화를 억압에서 자유로 나아가는, 시대정신인 양 말하기도 하지만, 마냥 수긍하기는 어렵다. 반성은 내가 나의 내면과 대면하는 것이고, 자랑은 나를 타자 쪽으로 드러내어 보이는 것이다. ‘진짜의 나’에 대해서는 알려고도 하지 않으면서, ‘가짜의 나’를 연출하는 것은 아닐까? 하는 우려가 있을 법하다.


비판의 담론은 넘치는데, 반성의 담론은 현저히 줄었다. 남을 들여다보면서 온갖 결점을 찾는 데는 선수가 되어 있다. 그러면서도 나의 결점에 대해서는 한없이 너그럽다. 스스로 심판자의 자리에서 남들을 정죄하기 바쁘다. 내가 그러는 동안 남들 또한 나를 향해서 정죄 할 것이다.


반성은 결코 한낱 시대정신에 머물지않는다. 반성은 보편적 가치를 지닌다. 자기 반성을 몰가치하게 생각하는 사람은, 설사 지식이 많다고 해도, 그는 천박한 사람일 가능성이 높다. 사회 또한 마찬가지이다. 반성을 귀하게 여기지 않는 사회는 경박하다. ‘타자 비판’을 과시하며 ‘나 잘난 맛’을 즐기며 흐르는 데로 흐른다. 마침내 서슴 없는 ‘독한 비방’까지도 지적 허영으로 소비한다. 그렇게 해서 탄생한 ‘비방 사회’가 바로 우리 곁에 있다.

박인기 경인교육대학교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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