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 23일 70주년을 맞이한 한국교원단체 총연합회(교총)는 1947년에 창립된 우리나라 최대·최고 교원단체이다. 유치원부터 대학까지 전국 10,000여 개의 학교분회와 190개의 시·군·구교총, 17개 시·도교총, 각종 직능단체를 아우르는 중앙단체이며 ‘교직관을 전문직’에 두고 있다는 점에서 ‘노동직관’과 차별되는 단체다. 굴곡진 대한민국의 현대사만큼이나 교총 70년 역사도 빛과 그림자가 공존하지만 교육전문가들도 현재의 교육관련 법과 제도, 교원의 보수와 수당·후생복지와 관련된 것들의 역사를 추적해보면 교총의 손을 거친 것이 대부분이라는 의견을 내놓고 있다. 교원의 예우와 교권보호를 강화한 교원지위법 제정, 교육재정의 안정적 확보를 가능하게 한 교육세 신설과 교육재정 GDP 5% 확보, 학교교육 정상화를 이끌어낸 중학교 무시험 입학제도 도입 등이 대표적이며 교원의 후생복지 증대와 관련된 것은 사립교원의 연금제도 신설을 비롯해 매우 다양하다.
그러나 교총의 현재 심정을 표현한다면 ‘갈 길은 아직 먼데 벌써 날은 저물고’라고 할 수 있다. ‘현장의 교육부’로서 우리나라 교육 역사를 만들어 왔지만 50만 현장교원과 회원은 교총이 더 분발하기를 바라고 있다. 하루를 쉬면 이틀을 달려가야 할 운명의 단체인 교총에게 그야말로 갈 길은 멀고 지는 해는 아쉽게만 느껴지는 것이다. 선도자가 가지는 중압감도 교총을 자극하는 요소이다.
잘해야 한다는 의무감과 추적자의 존재는 선도자를 항상 긴장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교총은 광복 이후 미개척지이거나 황무지와 같았던 대한민국의 교육을 밑바탕부터 다지며 이끌어 오는 데 있어 선도자의 역할을 해왔다. 동전의 앞면과 뒷면처럼 늘 따라다니던 위기의 순간마다 교총은 과감한 혁신으로 제2, 제3의 도약을 이끌어냈던 저력있는 단체다. 이번에 고희(古稀)를 맞은 교총 앞에 놓인 것도 분발과 자기혁신에 대한 회원의 요구인데 그것은 교총이 미래 100년을 향해 다시 힘차게 달려가라는 응원의 메시지이기도 하다.
이 글은 창립 70주년을 맞은 교총의 현주소를 학교현장의 눈으로 살펴보고 미래 100년을 향한 과제를 모색하는 데 있다.
현장의 교육부로 불리는 교총
교총의 뿌리는 당연히 ‘학교현장’에 있다. 학교현장이라는 거대한 용광로에서 뿜어져 나오는 강력한 힘인 교심(敎心)이 바로 교총 힘의 원천인 셈인데, 일부에서는 교총 70년 의 역사가 ‘일방적인 정부정책(top-down)에 맞서 학교현장중심의 정책(bottom-up)을 실현하기 위해 달려온 기록’이라고 평하면서 교총을 현장의 교육부라고 부르기도 한다.
현장의 교육부란 이 명칭은 현장의 여론을 정책화하고 이를 정부와 국회·정당 등 정책 결정권자를 대상으로 실현시키는 일련의 과정을 현장의 교원들과 철저하게 현장의 관점에서 이끌어 나가는 것을 함축한 용어인데, 중앙정부에는 교육부가 있지만 학교현장에는 교총이 있다는 것을 상징적으로 나타내기 위해 회원들이 붙인 것이다.
교육이라는 무거운 주제를 떠나서도 학교 현장은 교총에게 매우 중요한 존재다. 전국 50만 교원과 회원의 희노애락이 일어나는 삶의 현장이기 때문이다. 교총이 「가르칠 맛 나는 학교! 선생님이 행복해집니다」라는 슬로건을 내걸고 학교를 선생님이 행복한 공간으로 만들려하는 이유도 거기에 있다. 이러한 현장중시는 단순히 구호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지난 70년 동안 교총이 정책과 조직운영 전반을 통해 지속해 왔다는 것은 현장교원의 목소리에서도 확인할 수 있었다.
필자가 만난 회원 중 상당수는 한국교총에 애정과 친근감을 표시했다. 충남의 한 여 회원은 “70년대 말에 교직에 들어올 때부터 줄곧 교총회원이다”라고 하면서 “교직생활을 하면서 교총의 도움을 많이 받았다”고 했다.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산업시찰이었는데, “당시 교총의 초청으로 시골교사가 서울을 처음 방문했고 산업시설 시찰을 통해 견문도 많이 넓혔다”면서 지금도 교총하면 그 때의 기억이 떠오른다고 했다. 다른 한 회원은 “교총이 발행했던 월간 <새교실>이 자신의 교직멘토였다”면서 “수업준비나 계획서를 작성할 때면 디테일한 부분이나 궁금한 것에 대해 일종의 갈증 같은 것을 느꼈는 데 그때마다 <새교실>을 보며 해소했다”며 고마워했다.
지금도 왕성한 활동을 하고 있는 현직 교장인 회원은 교총이 주도했던 1998년의 교원정년단축반대 여의도 전국교육자총궐기 대회를 먼저 꺼내면서 “20년 가까이 지났지만 그때의 벅찬 감정을 지금도 잊지 못한다” 고 했다. 자신은 당시 30대였기 때문에 정년 단축은 남의 이야기였지만, 전국교육자총궐기대회에 참석한 7만이 넘는 교원들의 노도와 같은 물결 속에서 함께 정년 단축 반대 구호를 외치고 시가행진도 하면서 내가 교육자라는 아이덴티티와 교총회원으로서의 소속감도 느꼈다면서 “그날을 계기로 교사로서의 각오도 다지고 적극적인 교총맨이 되었다”고 했다. 한편 최근 한국교총이 기간제 교사·강사 정규직 전환문제 대처를 보면서 “우리를 대변하는 선배 선생님들의 단체라는 인상을 받았다”는 의견을 밝히는 교대, 사대 재학생도 많이 있었다.
교총은 현장중심의 활동을 통해 수많은 미래의 교육 지도자를 발굴하여 육성하는 일종의 사관학교 역할도 했는데, 중추적 역할을 하고 있는 교육계 인사를 만나면 자신이 교총회원이라는 것과 교총의 이런저런 활동에 참여하거나, 하고 있다는 말을 자랑스럽게 하는 경우가 많았다. 그들은 교총의 정책 형성과 해결 과정, 조직 활동에 참여하 면서 자연스럽게 교육에 대한 안목과 교육자로서의 품성을 기르게 되었고 또 대내외의 다양한 인사와의 교류를 통해 보다 유연한 사고를 가지게 되면서 교육계의 지도적 위치에 오르게 되었다고 말했다.
그런 회원 중 한 사람은 “교총 회원이 된다는 것은 교육공동체의 일원이 되었다는 증명서와 같았으며 교직의 선후배와 동료로서 교직의 전문성 신장과 교육발전에 힘을 모으겠다는 약속이기도 하다”며 의미를 부여 했다.
흔들리는 학교현장, 교총에게는 시련
그러나 진보와 보수 정권이 이어서 집권한 지난 20여 년의 세월 동안 교총의 기반이자 뿌리조직인 학교현장이 조금씩 흔들리고 있다. 교원단체 활동에 예전과 같은 열정과 관심을 보이지 않는 교원들이 늘어나고 있 기 때문이다. 이렇게 된 데는 학교현장의 다양한 요구와 기대를 충족시키지 못한 교총에 1차적인 원인과 책임이 있겠지만 그것과는 별개로 시대환경적인 요인도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
먼저 교원의 업무가 늘어난 것을 원인으로 들 수 있다. 수업과 수업준비 외에 각종 회의와 운영회 운영, 학부모 응대, 민원성 업무와 같이 처리해야 할 업무가 계속 늘어나 다른 것에 눈을 돌릴 여유가 없어진 것이다. 그러다 보니 학교현장에서 교총의 활동 입지도 좁아지게 된 것이다. 두 번째는 이 단체 저 단체 모두 가입하지 않는 소위 무적 교원이 늘어나고 있다는 것이다. 이렇게 된 데는 제도적인 맹점도 어느 정도 작용했는 데, 굳이 교원단체에 가입하지 않아도 정책의 성과나 혜택은 회원 비회원 구분없이 함께 누릴 수 있기 때문이다. 2016년부터 담임 수당 2만원이 올랐는데, 교총이 교육부, 국회·정당, 인사혁신처 등을 대상으로 한 끈질긴 활동의 결과지만 혜택은 회원 비회원을 가리지 않고 모두에게 돌아간 것이 한 예이다. 특히 신규 교원을 비롯한 젊은 교원은 어떤 교원단체에도 관심을 보이지 않고 있는데, 이것은 교원단체의 유지와 발전에 상당한 장애요소가 되고 있다. 세 번째는 교육감 직선제의 도입으로 특정 이념의 교육감이 있는 시·도는 교총활동 자체가 어려워지고 있다는 것이다. 교원의 신분은 국가공무원이지만 인사와 재정 등 막강한 권력을 가진 교육감의 정책을 정면에서 반박한다는 것은 상당한 용기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어느 지역 교육감은 공개적인 장소에서 “교총회원 손들어 보라”고 하면서 교총 힘빼기를 시도하기도 했다.
이런저런 요인이 겹치고 쌓여 학교현장이 흔들리면서 교총도 그 영향을 받고 있다. 그러나 현장의 문제나 교원의 다양한 요구들은 정부나 국회·정당을 움직여야 해결할 수 있는 것들이 대부분이다. 그러므로 교총을 중심으로 단결하여 하나하나 해결해 나가는 전략적 인내심이 필요함에도 불구하고 학교현장과 교원이 개인화, 파편화되어가는 것은 결국 교직사회의 힘만 빠지게 되는 것이다. 역설적이게도 교총이 70년간 전력을 다해 구축해온 교원의 사회적·경제적 지위향상이라는 교원 안전망이 어느 정도 성과를 드러내기 시작하자 학교현장이 교총의 절실함을 잘 느끼지 못하는 현상도 교총 활동 약화에 한 몫하고 있다.
교총 미래 100년을 향한 과제
이 시점에서 교총에 절실히 필요한 것은 학교현장의 신뢰이며 이것을 얻기 위해서는 뼈를 깎는 자기혁신이 반드시 있어야 한다. 이를 통해 조직을 일신하고 선도자로서의 위상을 굳건히 한다면 교총 미래 100년도 현장의 박수 속에서 맞게 될 것이다. 그러면 조직을 어떻게 일신할 것인가. 학교 현장의 의견을 종합하면, 첫 번째가 회원 참여 조직으로의 일대 혁신이었다. 교총회원은 자신이 교총회원이라는 의식, 다른 말로 하면 교총에 대한 소속감이 없거나 있어도 매우 낮다. 이것은 회비만 냈지 교총의 활동에 직접 참여한 경험이 없기 때문이다. 면 단위 소규모 학교에서 근무하는 회원이 농어촌학교 활성화를 주제로 한 회의에 참석해서는 “교총회원 35년 만에 처음으로 교총회관에 와봤다”면서 감격해 했고, 군 단위 지역교총에서 사무장을 맡아 봉사하던 젊은 회원은 “일을 하면서 교총에 반했다”면서 “누가 물으면 교총과 결혼했다고 한다”고 말해서 주위를 놀라게 한 적도 있다. 회원참여 조직으로 전환된다면 앞의 사례처럼 교총의 활성화와 회원 의식의 강화도 이끌어 낼 수 있다. 두 번째 가 젊은 교원의 회원 확보였다. 교총은 사실과 달리 교장, 교감 관리직들의 단체라는 오해 때문에 젊은 회원의 확보가 쉽지 않다. 그러나 교총 안에서 젊은 교사들이 들끓는다 면다른 젊은 교사도 편안한 마음으로 들어올 수 있기 때문에 이러한 선순환 구조를 만들 수 있는 조직으로 탈바꿈시켜야 한다는 것이다. 세 번째는 조직만의 일신으로는 학교현장의 교심(敎心)을 이끌어올 수는 없기 때문에 학교현장 밀착형 정책의 지속적인 개발과 이의 실현으로 회원들의 지지를 이끌어내는 투트랙(two track) 전략으로 나가야 한다면서 하윤수 제36대 교총회장이 취임 후 제1호 법안으로 추진하고 있는 교원지위법 개정 법률안을 좋은 예로 들었다.
마지막으로 현실 안주를 버리고 지속적인 혁신을 주문했다. “교총이 70년의 역사와 성과가 있다고 해서 앞으로도 그럴 것이라는 생각은 버리라”면서 “경쟁력은 오랜 기간 성공과 실패, 위기의 극복과정에서 축적한 경 험 위에 지속적인 자기혁신을 통해 만들어진다는 것을 강조”했다. 그러면서 “교총은 현재의 난관을 극복하고 미래를 개척해 나갈 충분한 자질과 능력을 갖춘 교원단체”라면서, “앞으로 30년 후인 교총이 100년을 맞이하는 그날까지 교총호(敎總號)가 순항하기를 바라는 것이 교육계의 한결같은 심정이다”고 응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