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형 블록버스터의 흥행부진

2017.10.30 14:49:33

추석⋅설⋅한여름⋅연말은 영화시장의 4대 성수기로 꼽힌다. 이를테면 최대 대목인 셈인다. 경쟁이 어느 때보다도 치열해진다. 10일간의 연휴가 이어진 지난 추석(10월 4일) 대목에도 ‘남한산성’⋅‘범죄도시’⋅‘킹스맨-골든 서클’⋅‘아이 캔 스피크’가 격돌했다. ‘남한산성’⋅‘범죄도시’는 10월 3일, ‘킹스맨-골든 서클’⋅‘아이 캔 스피크’는 각각 9월 27일, 9월 21일 개봉했다.

그런 이유로 사실상 ‘남한산성’과 ‘범죄도시’의 대결이란 분위기가 지배적이었다. 그리고 ‘남한산성’의 우세를 점치는 분위기가 대세였다. ‘남한산성’이 150억 원을 들인 한국형 블록버스터인데다가 사극이 추석 대목 극장가를 접수해왔기 때문이다. 최근 5년간 추석 흥행작은 ‘광해, 왕이 된 남자’(2012)⋅‘관상’(2013)⋅‘따짜: 신의 손’(2014)⋅‘사도’(2015)⋅‘밀정’(2016) 등이다.

물론 일제침략기가 배경인 ‘밀정’을 사극이라 하기는 좀 그렇다. 2014년 추석 대목엔 흥행작이 현대물임을 알 수 있기도 하지만, 추석 하면 사극이 하나의 공식처럼 대중일반에 각인되었음직한 통계로 보이긴 한다. 신기하게도 그 예상은 개봉 초반 5일간 적중했다. ‘남한산성’이 263만 2151명인데 비해 ‘범죄도시’는 고작 138만 1496명 동원에 불과했으니까.

반전이 일어난 것은 개봉 6일째인 10월 8일부터다. 이날 ‘범죄도시’는 42만 5342명을 동원, ‘남한산성’의 36만 5582명을 제치고 1위에 올랐다. 이후 ‘범죄도시’는 승승장구, 10월 29일 현재 584만 3599명을 기록하고 있다. 10월 25일 개봉한 할리우드 블록버스터 ‘토르: 라그나로크’에 밀려 1위 자리를 내줬지만, 기세가 여전해 600만 명도 거뜬할 것으로 보인다.

반면 ‘남한산성’은 10월 29일 현재 382만 5928명에 그쳤다. 손익분기점인 500만 명은커녕 400만 명도 힘든 흥행실패의 대작으로 남게된 것이다. 이보다 앞선 여름 대목에서도 우리는 그런 한국형 블록버스터를 만난 바 있다. 바로 7월 26일 개봉한 ‘군함도’다. ‘군함도’는 한 주 늦게 개봉, 1218만 6202명을 동원한 ‘택시운전사’보다 더 올여름 최고 기대작으로 꼽혔다.

하지만 ‘군함도’의 관객 수는 659만 2170명에 그쳤다. ‘그쳤다’고 말한 것은 ‘군함도’가 순제작비 220억 원(총제작비는 260억 원)에 손익분기점이 700만 명인 한국형블록버스터여서다. 이를테면 손익분기점도 달성하지 못한 흥행실패의 한국형 블록버스터를 만난지 두 달 남짓만에 다시 ‘남한산성’을 만나게된 셈이다.

흥행실패한 대표적 한국형 블록버스터는 2011년 12월 21일 개봉한 ‘마이웨이’가 아닐까 한다. 순제작비만 280억 원을 투입한, 그때까지만 해도 한국영화사상 가장 많은 제작비를 쏟아부은 대작이었지만 관객 수는, 맙소사 고작 214만 2670명에 불과했다. 그야말로 쌍코피가 터져도 왕창 터진 흥행참패의 끝판왕이라 할까.

2013년 7월 17일 개봉한 ‘미스터 고’도 실패한 한국형 블록버스터다. ‘미스터 고’는 순제작비 225억 원으로 700만 명 이상 모아야 손익분기점을 달성하는 영화였다. 그때까지 ‘설국열차’⋅‘마이웨이’에 이은 제작비 규모 3위의 대작이었지만, 관객 수는 오 마이 갓! 132만 8888명에 그쳤다. 그야말로 더 이상의 참패가 있을 수 없는 안타까운 일이었다.

그 영화들과 무슨 연고나 인연이 있어서 안타까워하는 것이 아니다. 내가 한국형 블록버스터의 흥행부진을 안타까워하는 것은 그로 인해 빚어질 투자 위축 때문이다. 엄청난 돈을 쏟아부은 한국형 블록버스터가 시장에서 통하지 않으면 더 이상 큰 손들이 영화제작에 투자하지 않으려 할 것은 불을 보듯 뻔한 일이어서다.

가령 ‘남한산성’의 경우다. 제작사 싸이런픽쳐스 대표는 ‘남한산성’의 원작자인 김훈 소설가의 딸로 알려져 화제를 모았다. 영화사 싸이더스에서 홍보 일을 하다 2008년 독립해 회사를 차렸고, 2009년 ‘10억’을 제작⋅개봉했다. 야심차게 제작에 나섰을 대작 ‘남한산성’이 손익분기점을 넘기지 못했으니 이후 차기작이 순탄할지 장담할 수 없게 되었다. 그게 안타까운 것이다.

장세진 전 교사, 문학⋅방송⋅영화평론가 yeon590@dreamwiz.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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