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짜밥 달라는 기자회견

2017.11.13 13:47:08

강원도의 고교 무상급식 소식이 전해진 건 지난 달 11일이다. 한겨레 보도에 따르면 내년부터 강원도내 72개 고교생 4만여 명이 공짜밥 혜택을 받게된다는 것. 경기 하남⋅광명시와 전남 광양시 등 기초지방자치단체에서 고교 무상급식을 시행하고 있지만, 광역지방자치단체론 강원도가 처음이란 소식이다. 그 기사엔 없지만, 전북 정읍시도 고교 무상급식을 시행하고 있다.

최문순 강원지사와 민병희 강원교육감이 2011년 8월 ‘강원교육 발전을 위한 업무협약’을 체결한지 6년 남짓만의 결실이다. 최지사는 “무상급식이 진보와 보수 간의 이념 대결로 왜곡돼 시행이 늦어졌으나 시간이 흐르면서 친환경 급식을 중심으로 공감대가 형성됐다”고 말했다. 민교육감은 “7년에 걸친 급식 논란이 끝났다. 학생⋅학부모⋅농어민 모두가 만족하는 행복급식을 하겠다”고 밝혔다.

나아가 신문은 유정복 인천시장이 고교 무상급식 확대를 위해 인천시 교육청과 군⋅구와 협의하겠다고 밝힌 기자회견 등 다른 광역지방자치단체로 확산하는 소식을 전하기도 했다. 2011년 공짜밥 문제로 오세훈 서울시장이 사퇴하는 등 보수와 진보의 대립이 첨예했던 걸 떠올려보면 격세지감(隔世之感)이 느껴지는 소식이라 할만하다.

그로부터 한 달쯤 지나 ‘제주, 내년부터 전국 첫 고교 무상교육’ 소식이 전해졌다. 공짜밥에 이어 아예 수업료도 내지않고 고등학교를 다닐 수 있게된 것이다. 제주도 교육청은 고교 무상교육이 선심성 정책 아니냐는 지적에 대해 “무상교육 실시를 위한 재정여건이 마련된데다 국정과제로 선정됐기 때문에 전면 실시를 결정했다”(한겨레, 2017.11.9.)고 말했다.

고교 무상교육은 문재인 대통령의 후보때 공약이다. 박 전 대통령 대선 공약이기도 했지만, 이전 정부에선 예산 등의 이유로 후순위에 머물다 결국 좌초되고 말았다. 그것을 문재인 정부가 국정과제로 선정하고 거침없이 밀어붙일 기세다. 바야흐로 고등학교까지 공짜로 다니는 시대가 코앞에 와있는 형국이라 할까.

그 영향인지 전주⋅군산⋅익산⋅남원⋅김제지역의 초⋅중⋅고 학부모들이 고교의무급식운동본부를 결성하고 고교 전면 무상급식 시행촉구 기자회견을 열었다. 이들은 “학부모 부담 완화를 위해 도시지역 고교까지 무상급식이 이뤄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한 마디로 공짜밥을 달라는 것인데 당사자격인 학부모들이 기자회견까지 하다니, 되게 놀랍고 당황스럽다.

또 그들은 “내년 지방선거를 맞아 단체장 입후보자들을 상대로 고교 무상급식에 대한 정책과 입장을 묻고, 이를 공개하는 강력한 유권자 운동을 펼치겠다”고 말했다. 내년 지방선거에서 공짜밥 주는 후보를 찍겠다는 속내도 ‘유권자운동’이란 이름으로 내비친 것이다. 남원⋅김제지역 학부모로 구성된 고교의무급식운동본부가 연달아 공짜로 밥달라는 기자회견을 하기도 했다.

전북도의회 박재만⋅이상현 도의원들도 가세했다. 그에 화답이라도 하듯 남원지역 고등학교도 내년부터 무상급식이 이뤄질 전망이라는 소식이 오늘 자 속보로 전해졌다. 그런데 의문이 생긴다. 과연 학생들에게 밥을 공짜로 주는 것이 복지인지, 만약 그렇다면 대한민국이 그럴만한 나라가 되었는지 하는 의문이 그것이다.

의무교육인 만큼 장차 그렇게 가야 맞지만, 아직은 때가 아닌 것 같다. 벌써 오래 전 재임 학교에서 있었던 일이다. 학교예산으로만 교지를 제작해 학생들에게 나눠주었다. 학생들은 펼쳐보기는커녕 화장실에 버리는 등 ‘주인의식’이 별로였다. 바로 공짜였기 때문이다. 공짜란 원래 그런 것이다. 그것이 국민 혈세로 이루어진 재원(財源)이라면 당연히 엄청난 낭비인 셈이다.

이듬해 나는 ‘학생들에게 내 것’이란 인식과 참여정신을 갖게 하고자 일반고의 절반도 안 되는 소액 납부로 전환하여 수익자 부담이 되게 했다. 물론 학교운영위원회 심의를 거쳐서 그리 했다. 배고픈 자에게 밥을 주면 당장 끼니는 때울 수 있을지 모르지만, 자립은 그만큼 멀어지거나 어려워진다. 일하거나 노력하는 만큼 보상받는 세상 이치를 망각하지 않을지 걱정도 된다.

공짜 수업료도 마찬가지다. 이미 오래 전부터 공짜인 특성화고의 방과후학교 수업도 예외가 아니다. 국가는 공짜밥보다 그들이 가난을 털고 장차 뻗어나갈 환경과 기반 구축을 해줘야 한다. 그것이 국가의 책무요 몫이다. 세상에 공짜는 없는 법이다. 이 말을 오랫동안 만고(萬古)의 진리로 여기며 살아 왔기에 이렇듯 공짜밥 기자회견 소식이 씁쓰름한 것인지도 모르겠다.
장세진 전 교사, 문학⋅방송⋅영화평론가 yeon590@dreamwiz.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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