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뜻밖의 대박 일군 입봉작’이란 제목으로 ‘범죄도시’와 ‘청년경찰’을 이미 만나보았다. 역시 입봉작인 ‘프리즌’과 ‘보안관’도 그보다 전에 만나보았다. 그 입봉작들을 본 이유는 딱 하나다. 꽤 요란한 관객몰이거나 나름 의미있는 성과를 거둔 입봉작이란 점이 그것이다. 지난 11월에만 ‘미옥’⋅‘7호실’⋅‘꾼’ 등 3편의 입봉작이 있었다. 그중 ‘꾼’은 391만 명 넘는 관객 동원으로 흥행에 성공했다.
그러나 11월 9일 개봉한 ‘미옥’(감독 이안규)의 경우 관객 수 23만 8713명(12월 14일 기준)으로 나가떨어졌다. 독립영화라면 대박일 숫자이지만, ‘미옥’은 상업영화다. 손익분기점이 200만 명쯤으로 알려졌으니 완전 쪽박을 찬 셈이라 할까. 이준익⋅김지운 감독의 조연출 출신이란 경력이 그만 무색해진 형국이다.
그런 ‘미옥’을 애써 본 것은 순전 김혜수 때문이다. 이미 ‘굿바이 싱글’을 다룬 글에서 말한 바 있다. 김혜수는 지난 해 조선일보와 영화예매 사이트 맥스무비가 공동으로 실시한 설문조사에서 관객이 가장 좋아하는 여자배우 1위로 뽑혔다고. 연기 잘하는 여자배우 1위를 차지했다고. 이때 김혜수는 46세로 30년차 배우다.
그랬던 그가 여성을 주인공으로 내세운 누아르(‘느와르’ 등 매체마다 표현이 다름을 알 수 있는데, 외래어 표기법에 따라 앞으로 이렇게 쓴다.) ‘미옥’으로 돌아온 것이다. 남성중심의 영화가 대세인 흐름에서 나름 의미있는 변신을 한 ‘미옥’이라 할 수 있다. 김혜수가 액션연기를 처음 선보인 누아르로 도전장을 내민 것이기도 하다.
사실 김혜수는 40대에 접어든 최근 5년 동안 여배우로서의 존재감을 과시해왔다. 천만영화 ‘도둑들’(2012)을 비롯 ‘관상’(2013)⋅‘차이나타운’(2015)⋅‘굿바이 싱글’ 등 그가 주⋅조연으로 출연한 영화들은 대박을 일구거나 최소 손익분기점은 넘겼다. 그 점에서 ‘미옥’은 김혜수(나현정 역)의 체면을 구긴 영화로 남게 되었다.
‘미옥’은 일개 범죄조직을 제철그룹으로 키운 언더보스 나현정과 얽히고 설킨 이야기로 펼쳐진다. 원래 이름이 미옥인 나현정을 좋아해 칼질도 서슴지 않는 임상훈(이선균)과 제철그룹 수사 검사 최대식(이희준)이 그 중심에 있다. 일단 출연배우만 보면 분명 같잖은 영화가 아닌데도 ‘미옥’은 나가떨어졌다. 무엇보다도 시나리오의 문제이지 싶다.
먼저 ‘미옥’은 청불영화다우려고 그랬는지 초반 섹스신이 낭자하다. 알고보니 회사 빼앗기 등 나쁜 짓을 하기 위한 동영상 확보 차원이다. 글쎄, 초반 그런 장면이 강렬하긴 할망정 1970~80년대가 아닌 지금 그 기능을 제대로 해낼지는 의문이다. 이야기 전개상 섹스신이 그럴 듯한 대목은 상훈이 미옥과 다툰 후 갖는 웨이(오하늬)와의 분풀이성 카섹스 장면 정도다.
총질 난무도 영화를 먼 나라 이야기로 만든다. 나름 누아르임을 의식한 것으로 보이지만, 한국적 정서라든가 분위기와 맞지 않아서다. 김혜수가 전기드릴과 단도를 휘두르는 액션장면이 두어 번 펼쳐지는데, 거기에 들인 공(功)을 한 방에 훅 가게 하는 총질 난무라 할까. 섹스 동영상을 뺏기 위한 최검사의 ‘지랄발광’도 개연성 면에서 좀 아니지 싶다.
결국 아들인 주환(김민석) 지키기의 모성애가 방점인데, 이게 또 누아르 본연의 세계와 엇나가 김혜수의 은빛 반삭발 머리처럼 언밸런스를 준다. 다만, “나한테 너말고 무슨 꿈이 필요해?”라는 상훈을 연기한 이선균의 악역 변신이 새로워 보일 뿐이다. 1982년 센세이션을 일으켰던 ‘애마부인’의 안소영(김여사 역)을 오랜만에 보는 반가움도 있긴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