되게 충격적인 서사 '의문의 일승'

2018.02.02 11:59:41

지난 달 30일 SBS 월화드라마 ‘의문의 일승’이 막을 내렸다. ‘사랑의 온도’ 후속으로 지난 해 11월 27일 방송을 시작한 40부작(옛 20부작) ‘의문의 일승’ 첫회 시청률은 5.0%(닐슨코리아, 전국 기준)였다. 그 아래로 떨어진 적도 있지만, 최종회 시청률은 9.0%를 기록했다. 한 번도 두 자릿 수에 오른 적 없는 6~7%대 드라마에 머물고 말았다.

사실 ‘의문의 일승’은 되게 충격적인 서사의 드라마다. 저조한 시청률이 의아한 이유인데, 전 대통령 이광호(전국환)가 반동인물의 주인공으로 나와서다. 얼마 전 끝난 ‘이판, 사판’(SBS)이나 이번 주 종영을 앞둔 ‘돈꽃’(MBC)에서처럼 유력 대선 후보 내지 차기 대통령이 아니다. 전직 대통령을 내세우고 있어 훨씬 흥미를 돋우는 드라마라 할까.

사실상 주인공이라 할 김종삼(윤균상)은 사형수로 수감중 신분 세탁을 거쳐 형사 오일승으로 거듭난다. 그것만으로도 혀를 내두를 시나리오인데, 그것이 이광호 지시에 의해서다. 전 국정원장 국수란(윤유선)이 부하들을 시켜 그리 한 것이다. 드라마에서 펼쳐지는 모든 범죄의 꼭대기엔 전 대통령 이광호가 있다. 물론 드라마는 허구의 창작임을 밝히고 있다.

솔직히 창작임을 믿고 싶다. 살인을 예사로 저지른 이광호 같은 사람이 어떻게 대통령이 되었을까 오싹 소름 끼쳐서다. 그것도 그냥 살인이 아니다. 가령 자신의 아들 낳은 여자를 걸림돌이라며 죽여버린다. 충격적인 서사는 또 있다. 아들로 밝혀진 김종삼 살해 지시다. 28년(김종삼이 28세다.) 이상 악인 그대로인 전직 대통령 이광호의 모습이다.

그런 전직 대통령의 드라마 등장은 시사점이 적지 않다. 달리 말하면 재벌처럼 대통령도 드라마의 만만한 소재가 되었음을 의미한다. 우선 무엇보다도 전직 대통령이 감옥에 가있거나 각종 의혹으로 검찰 소환이 임박한 현실이 반영된 결과로 보인다. 대통령 비자금, 국정원 특수활동비, 댓글부대, 구속영장 기각, 기자회견때 기침까지 많은 실제상황이 묘사되고 있다.

하긴 박근혜 전 대통령이 감옥에 가고, 조기 대선을 통해 문재인 정부가 들어서면서 세상은 바뀌었다. 그러니까 그렇게 되는 사이 드라마보다 더 드라마틱한 사건들이 실제상황으로 벌어졌으니 더 놀랄 일도 없는 세상이 되고만 것이다. 드라마가 대중의 시선을 새삼스럽게 끌 일이 없어진 셈이지만, 그러나 ‘의문의 일승’ 시청률 저조에는 다른 이유가 있어 보인다.

가장 큰 이유는 코믹터치다. 후반부로 가면서 제법 진중한 분위기로 전환되었지만, 첨엔 그냥 옆구리 터져라 낄낄거리는 오락활극처럼 보일 뿐이다. 마치 애들 장난 같은 전개가 까발려지는 온갖 적폐의 진정성을 애써 희석시킨 꼴이다. 다음 너무 황당하고 복잡한 서사가 그 이유다. 박진감 획득은커녕 ‘우리 드라마는 첨예한 사회현실과 거리가 멀어요’를 드러내는 듯하다.

이광호는 “이 나라를 다시 손에 쥐어야 대한민국이 살 것 아닌가”라 외치는 전직 대통령이다. 황당함의 극치인데, 그런 ‘또라이’를 “왜 우리 세금으로 경호해주냐”는 볼멘 소리가 그럴 듯하게 다가온다. 바로 경찰의 소리다. 장필성(최원영) 같은 악인도 있지만, 그러고보면 김종삼과 청소년시절부터 알았던 진진영(정혜승) 등 그나마 경찰이 법과 정의의 수호자로 나온다.

국수란의 20년 충성도 좀 아니지 싶다. 국수란이 이광호에게 20년을 충성한 것은 자신이 버린 아들 때문이다. 그 아들을 입양한 이광호가 밀쳐 죽은 걸 알고 국수란은 돌변한다. 뜬금없는 모성 본능으로 이광호를 죽이려 하지만, 그 역시 온갖 나쁜 짓을 일삼은 범죄자다. 대통령과 호가호위하던 권력의 종말을 그런 식, 그러니까 고작 개인적 원한으로 그려내고 매듭까지 지으려 하니 너무 허망하지 않은가?

‘의문의 일승’은, 이를테면 사이코패스 전직 대통령을 통해 성역이거나 베일에 가려졌던 그 치부를 낱낱이 고발한 되게 충격적인 드라마인 셈이다. 문재인 대통령이 소통 행보를 보여 성역이나 베일에 가려진게 아닌, 국민과 함께 할 수 있는 보통 사람 이미지를 많이 구축했다곤 하지만, 드라마가 밝힌 대로 그것이 창작임을 애써 믿고 싶은 이유이다.

한편 어설픈 김종삼과 진진영의 로맨스를 굳이 끼워넣을 필요가 있었는지도 의문이다. 그 외 “도박비치 많아서 자살한거야”나 “축구도 가르켜주고” 따위 오류도 있다. ‘이판, 사판’처럼 스폰서가 1개 사로 줄어드는데도 악착스럽게 중간광고를 하는 방송사의 상업주의가 참 딱하다. 광고 단가가 높다는 중간광고의 둘로 쪼개기 편법 방송을 언제까지 계속 할 참인가.
장세진 전 교사, 문학⋅방송⋅영화평론가 yeon590@dreamwiz.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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