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C가 8월 11일 밤 8시 45분부터 천만영화 ‘부산행’을 방송했다. 원래 주말드라마를 방송하는 시간대에 ‘여름방학 특선’으로 천만영화 ‘부산행’을 내보낸 것. 8월 4일 주말드라마 ‘이별이 떠났다’ 종영후 바로 이어져야 할 후속작 ‘숨바꼭질’이 8월 25일 시작되기 때문 그 공백을 메운 땜방이라 할 수 있다. 지난 해 추석특선으로 방송(10월 6일)했으니 재탕이기도 하다.
제작비 190억 원의 ‘인랑’이 일찌감치 나가떨어지고 ‘신과 함께-인과 연’과 ‘공작’, 그리고 할리우드 블록버스터 ‘미션 임파서블: 풀아웃’이 경쟁하는 일명 7말 8초의 2018 여름 대목 영화시장이지만, 잠깐 2년 전으로 돌아가보자. 공중파인 MBC가 여름방학 특선으로 방송한 천만영화 ‘부산행’을 본 사람들이 많을 것같아서다.
2016 여름 대목 영화시장은 그 어느 해보다 뜨거웠다. 가령 2014 ‘군도’⋅‘해적: 바다로 간 산적’⋅’명량’⋅‘해무’의 대결이나 2015년 여름 쌍천만 영화로 동시에 등극한 ‘암살’⋅‘베테랑’의 쌍끌이에 비해서도 뜨거웠다. 2016 여름 영화들은 7월 20일 ‘부산행’, 7월 27일 ‘인천상륙작전’, 8월 3일 ‘덕혜옹주’, 8월 10일 ‘터널’ 등이 정확히 1주일 간격으로 개봉했다.
결과는? ‘부산행’ 1156만 명, ‘터널’ 712만 명, ‘인천상륙작전’ 705만 명, ‘덕혜옹주’ 559만 명이다. 관객 수로만 보면 ‘부산행’이 단연 대박이다. 관객 수로만 본 것은 제작비 대비 수익률이 차이가 나 섣불리 대박이라 단정하기 힘든 부분이 있어서다. 요컨대 총제작비 177억 원대의 ‘인천상륙작전’과 100억 원쯤인 ‘터널’의 각 700만 명이 같을 수 없다는 얘기이다.
그렇게 보면 총제작비 115억 원쯤 들인 ‘부산행’은 왕대박이라 할만하다. ‘부산행’은 역대 박스오피스 9위로 올라섬과 동시에 여러 기록들을 갈아치웠다. 예컨대 7월 23일 128만 738명으로 ‘명량’이 세운 하루 최다 관객 수 125만 7380명을 훌쩍 넘어섰다. 최단기간 500만 돌파 기록도 세웠다. 물론 2016년 당시 기록이다.
그 외 ‘부산행’은 국제영화제 초청작 최초의 천만영화라는 기록을 세우기도 했다. ‘부산행’은 2016년 5월 제69회 칸국제영화제 비경쟁부문인 미드나잇 스크리닝 부문에서 첫 상영된 바 있다. ‘역대 최고 미드나잇 스크리닝’으로 극찬받은 ‘부산행’은 칸국제영화제에서 해외 선판매를 시작해 156개국에 수출, 30억 원 이상을 벌어들인 것으로 알려졌다.
‘부산행’은 애니메이션 ‘돼지의 왕’(2011년), ‘사이비’(2013년)를 연출한 연상호 감독의 첫 장편 실사영화다. 사실상 데뷔작으로 천만클럽 감독이 된 셈이다. ‘부산행’은 국내 장편 상업영화 최초의 좀비 소재 작품이기도 하다. 손익분기점이 330만 명쯤이니 엄청난 대박의 스타감독이 탄생한 것이다.
영화는 지극히 평온하게 시작된다. 구제역때와 같은 방역 소독, 차에 치인 동물 따위로 좀비 감염이 암시되는 듯하지만, KTX가 서울역을 출발하면서부터 영화는 숨가쁘게 달려간다. 정확히 말하면 감염자가 열차에 타고 좀비로 변하면서부터다. 거의 두 시간을 전혀 지루하지 않게 하는 긴장감은 기차라는 폐쇄적 공간 설정 덕으로 보인다.
CG임이 표날 정도로 달리는 열차 안 진동이 전혀 없어 아쉽지만, 생존을 위한 사투가 펼쳐지는 건 ‘설국열차’의 그것과 또 다른 느낌을 준다. 솔직히 말하면 그런 걸 생각할 짬 없이 오로지 좀비 공격을 막아내는 석우(공유)와 상화(마동석) 등에 빨려 들어간다고 할까.
그런 사투는 자신보다 딸이나 아내를 지키기 위한 것이다. 딸 수안(김수안)으로부터 “자기밖에 모르니까 엄마도 떠나가잖아”라 평가받은 석우이기에 그의 죽음이 찡하게 와닿는다. 각각 임신한 아내 성경(정유미), 여친 진희(안소희)를 위한 상화와 고교 야구선수 영국(최우식)도 크게 다르지 않다.
그 반대편에서 빛을 발하는 것은 용석(김의성)이다. 용석은 수안의 말처럼 “자기밖에 모르는” 악덕 캐릭터다. 산 자들끼리 문 개폐를 두고 다투는 장면이 가히 하이라이트라 할만한 이유이다. 좀비에 물린 진희가 영국을 물어뜯는 장면도 마찬가지다. 열차에 매달린 채 주행하는 좀비떼는 한국영화사상 최초의 명장면으로 기억될 성싶다.
재난이라는 극한상황과 맞닥뜨린 인간의 모습, 국민안전처라는 정부 부처가 있는데도 거의 손을 못쓰거나 놓고 있는 국가, 그럼에도 소중한 사람 지키려는 개개인의 사투 등 ‘부산행’은 많은 것들을 생각케 하는 영화이다. 2014년 세월호 침몰사건이나 2016년 9월 12일 발생한 규모 5.8의 경주 지진 등이 자연스레 떠오르는 이유이기도 하다.
다만, 그 또래 아이들과 비교해 볼 때 수안인 아빠 직업이 증권사 펀드매니저라 말하는 등 지나치게 야무져 너무 비현실적 캐릭터로 보인다. 당연히 개봉 전 3일간의 유료 시사회도 변칙 개봉이란 흠집으로 남게 되었다. 근데, 좀비들은 문을 못 열고 어둠에선 동작 정지되는 아킬레스건이 있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