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대 성과급연봉제, 대학 경쟁력 강화엔 발목

2018.09.03 09:00:00

교육부는 2011년 국립대학 선진화 방안의 일환으로 ‘국립대학의 경쟁력 강화, 우수 교원의 유치, 대학의 선진적 보수체계 구축’이라는 명분을 내세워 ‘국립대학 교원 성과급적 연봉제’ 도입을 발표하고 단계적으로 시행하고 있다. 그러나 그동안 ‘평가시기에 따른 누적가산금의 형평성과 시간이 지날수록 심화되는 누적성과가산금 격차 문제, 전문성이 다른 전공 간 상대평가의 부적절성, 논문 중심의 업적 관리로 인한 교육과 학생지도 책무의 소홀 등이 문제로 대두됐다. 때문에 성과급적 연봉제는 대학 사회의 혼란과 분열, 교육과 중장기 연구의 질적 저하’를 초래한다는 지적이 끊임없이 제기돼 왔다. 대학들의 불만이 커지자 2014년 당시 황우여 교육부 장관은 성과급적 연봉제의 문제점을 인정하고 폐지를 약속하는 전향적 자세를 보였다. 하지만 교육부는 이 제도를 부분적으로 보완하는 시늉만 한 채 아직껏 근본적인 해결책을 제시하지 않고 있다.

 


제로섬 게임같은 성과급연봉제
독일 철학자 게오르크 빌헬름 프리드리히 헤겔(Georg Wilhelm Friedrich Hegel)은 <대논리학(Wissenschaft der Logik)>에서 ‘형식이 내용을 지배한다’고 하였다. 현행 성과급적 연봉제의 핵심 쟁점은 ‘제로섬(zero-sum) 방식의 상호 약탈식 구조와 성과급의 일부가 기본 연봉에 가산·누적되는 누적 방식’을 꼽을 수 있다. 업적 평가에서 하위 등급을 받은 교원의 연봉을 빼앗아 상위등급을 받은 교원에게 지급하는 상호약탈식 성과급제는 교수들의 무한경쟁을 부추기고 학문공동체를 파괴하고 있다. 국립대학 교수의 업적 평가제도는 합리적인 성과 측정과 등급 부여를 통한 동기 부여가 아닌 개별 교수들 사이의 순위 경쟁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결국 교수들은 자신의 업적을 향상시키는 것보다, 자신의 등급을 떠받혀줄 동료 교수를 찾는 데 관심을 기울일 수밖에 없는 실정으로 내몰렸다. 또 상대평가에 기초한 성과급제가 학자들 간의 협력을 해쳐 다학제 연구와 융합연구를 위축시키고 있다. 단기적인 양적 성과의 양산에 유리한 방향으로 학문적 노력의 목표를 설정하도록 유도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 결과 연구 완성도를 갖춘 논문보다는 학술지 심사기준을 통과할 수준으로 쪼개 양적 성과를 추구하게 된다.


“한국 학자들은 버리기에는 아깝지만 읽기에는 시간 낭비인 논문들을 양산한다”는 비판을 듣는 것이 현실이다. 저명 학술지에 평론 논문(review article)을 발표하여 자신의 학문적 성과를 체계적으로 정리하는 연구는 애초부터 불가능한 구조나 다름없는 것이다. 논문 준비에 오랜 시간이 필요한 평론 논문을 작성하는 바보는 더 이상 상상할 수 없다. 현행 성과급적 연봉제는 국립대학의 경쟁력 강화라는 당초의 목적에 부합하지 않는 잘못 설계된 것임을 극명하게 보여주는 사례다.


아울러 한 해의 성과연봉이 남은 재직기간뿐만 아니라 퇴직 후 연금에까지 영향을 미치는 누적식 연봉제의 폐해 또한 작다고 할 수 없다. 당해 연도 성과연봉 일부가 다음 해 연봉에 누적되는 구조에서는 평가등급이 생애 소득에 큰 차이를 유발하게 된다. 또한 ‘A→A→B→B’등급과 ‘B→B→A→A’등급을 받은 경우 전자의 연봉이 후자의 연봉보다 높게 산정되도록 되어 있다. 자신의 성과를 점진적으로 향상시켜 나가는 후자가 초기에 높은 등급을 받은 후 성과가 하향곡선을 그리는 전자에 비해 생애 연봉을 더 적게 받는 결과를 초래한다. 교수의 경쟁력 향상을 목표로 하지 않고 한번 찍히면 평생 불이익을 감당해야 하는 구조이다.

 

 

교수사회 갈등의 골은 깊어지고
학문의 가치를 계량화할 수는 없다. 기초학문과 공학 그리고 예술분야의 업적을 어떻게 상호 비교할 수 있단 말인가? 교육부도 이러한 문제점을 인식하여 평가단위를 학문분야의 유사성 및 평가의 적절성·형평성 등을 고려하여 단과대학, 계열 또는 충분한 수의 복수학과 등으로 설정할 수 있는 길을 열어주었다. 평가단위를 세분화한다고 문제가 해결되는 것은 더욱 아니다. 오히려 평가단위의 세분화로 인한 단과대학 내부의 전공분야별 특수성 문제는 고착화되고 더욱 첨예하게 불거지게 된다. 최근 한 교수단체는 ‘국립대학 교원의 보수체계 개선을 위한 논의’라는 제목의 홍보물에서 ‘농구, 야구, 축구 등 다양한 구기 종목을 하나로 묶어서 평가하는 것이 공정한 것일까요? 오직 득점이라는 숫자를 기준으로 허재 1등, 이승엽 2등, 차범근 3등이라는 순위를 매기는 것이 합리적일까요? 나아가 구기 종목 이외의 기록경기나 개인 경기 종목은 무능력하고 무가치한 것일까요?’라는 말로 통박했다.


교육부는 성과급적 연봉제가 국립대학의 경쟁력을 강화하고 교수들의 성과를 향상시키는 데 기여할 것이라고 주장했으나, 추가 재원을 한 푼도 투자하지 않고 상호약탈식으로 성과급을 마련하는 연봉제를 도입한 것은 교육부가 애당초 다른 목적을 가지고 있지는 않았는지 의심해볼 만하다. 성과급제는 조직 구성원의 동기 부여와 조직의 경쟁력 제고에 도움이 될 때 그 의미를 찾을 수 있다.


성과급적 연봉제가 도입된 2011년 이후 국립대학의 경쟁력이 강화되었다는 어떠한 지표도 찾아볼 수 없다. 최근 대학평가기관에서 발표하고 있는 대학 순위를 보면 지난 10년간 국립대학의 경쟁력은 지속적으로 약화되고 있다. 만약 교육부의 의도가 교수들 사이의 갈등을 심화하여 교수 사회를 파편화하고 교수들을 길들이려는 시도였다면, 이는 확실히 성공한 셈이다.

 

인사혁신처와 교육부는 누적식 성과급적 연봉제의 부작용을 완화시키려는 목적으로 ‘장기적인 연구를 수행하는 자 등에게 대학별 평가 대상 인원의 1% 범위 내에서 교육연구급의 10%를 가산’하는 제도인 ‘교육연구가급’을 신설하여 2019년부터 시행할 계획이다. 그러나 ‘교육연구가급’은 국내 41개 국·공립대학 교원을 대상으로 시행하기 위한 추가 소요 예산이 2천만 원도 채 되지 않는 빛 좋은 개살구의 전형이란 지적을 받고 있다. 맑은 호수를 오염시키는 방법은 너무나 간단하다. 호수에 한 차 분량의 폐수를 방류하면 그것으로 끝이다. 하지만 오염된 호수에 깨끗한 물을 한 차 가득 부어도 호수는 다시 깨끗해지지 않는다. 근본적인 해결책은 힘들더라도 호수를 말끔히 비우고 깨끗한 물로 가득 채워야 한다.

 

정교수 성과급연봉제 적용 제외는 불행 중 다행
다행히 2016년부터 전면적으로 시행될 예정이었던 누적식 성과급적 연봉제에서 정년보장 교원(정교수)은 제외되었다. 하지만 비정년 보장 교원(조교수, 부교수)의 누적식 연봉제는 여전히 해결되지 않은 채 숙제로 남아있다. 국내 국립 대학의 정년 보장 교원과 비정년 보장 교원의 비율은 70:30 정도이다. 상대적으로 목소리가 큰 정년 보장 교원의 누적제는 폐지한 반면, 기껏해야 30%에 불과한 비정년 보장 교원에게는 가혹한 누적제를 유지하는 정부는, 자신이 진정 무엇을 원하고 있는지 고민할 필요가 있다. 젊은 교수들이 자신의 학문세계를 구축하고 장기적인 연구 방향을 설정하는 고민은 뒤로 한 채, 단기 실적에 매진하도록 강요하는 현행 성과급제의 개선은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사안이다. 단기성과에 매몰되어 있는 교수에게 도전과 혁신을 기대할 수 없기 때문이다.

 

자신의 연봉과 능력이 업적평가에 의해 결정되는 현실에서 헌신과 협력의 가치를 논하는 것은 사치에 불과하다. 국립대학의 성과급적 연봉제를 폐지해야만 황폐해진 대학 사회가 되살아날 수 있다.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다. 교육·연구·봉사라는 교수 본연의 임무를 균형 있게 수행할 수 있는 환경을 재건해야 한다.

이형철 경북대학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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