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향, 추석’ 이란 단어를 생각하면 대부분 사람들은 기다림, 그리움 같은 아름다운 감정을 느낄 것이다. 한 가위 보름달을 바라보며 서울로 돈 벌러 가신 형님 누님들이 “올 추석에는 어떤 선물을 사 오실까?”하루하루 기다림 속의 흥분과 긴장 속에서 밤잠을 설치기도 했다.
“우리 언니는 이번에 새 옷 사왔다. 우리 형아는 과자를 엄청나게 많이 사왔어.”
입에 침이 마를 정도로 온 동네에 자랑하고 돌아다니느라고 바빴고
“여러분, 마을 뒷산 공터에서 콩콜 대회가 있으니 저녁 일찍 드시구 많이 참석해 주세유.”
이장님의 우렁찬 목소리가 온 동네에 울려 퍼지면
'이번 콩콜 대회에는 누가 상을 탈까?
기대하며 저녁밥도 먹는 둥 마는 둥 삼삼오오 무리를 지어 마을 뒷산으로 향했다.
콩콜 대회의 최우수 상품은 시계였고 낫, 곡괭이, 삽 같은 농기구가 대부분이었다.
꾀죄죄한 모습에 햇볕에 검붉게 그을렸던 형님도 충청도 사투리에 시골티가 났던 누님도 서울만 갔다 오면 뽀얀 얼굴에 서울 말씨를 쓰는 세련된 모습으로 변신했다.
‘나도 어서 커서 형님, 누님들과 같이 돈 많이 벌어 멋진 모습으로 고향에 나타나야지.’라는 야무진 꿈도 꾸었다.
추석날은 윷놀이와 자치기를 하며 형님 누님이 사다 주신 새 옷을 입고 마치 패션쇼를 하는 모델과 같이 온 동네를 누비고 다녔다.
동네 아저씨 아주머니들은 이 집 저 집을 돌아다니며 송편, 떡, 과일과 같은 음식과 동동주를 실컷 나눠 마시며 동네 한 바퀴를 돌고나면 저녁때는 모두들 얼큰하게 취하여서 흥얼흥얼 콧노래까지 부르셨다. 그 날 만큼은 음식과 함께 듬뿍 정도 나누었다.
가끔씩 세상일에 지쳐 사람들의 순수한 인정이 그리워 질 때면 욕심 없이 오순도순 지냈던 그 시절로 돌아가고 싶은 충동이 일 때가 있다.
서로를 경계하며 마음의 문을 굳게 잠그고 살아가는 요즈음 사람들은 무슨 재미로 살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