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생님, 저 00엄마예요. 잘 계신가요? 김장 김치를 담갔는데 가시는 길에 오셔서 김치 한 통 가져가세요. 선생님이 주신 김종대 작가님의 『이순신』도 다 읽었습니다. 참 좋은 책을 주셔서 감사합니다. 요즈음은 도서관에 가서 책도 빌려 읽습니다. 꼭 오세요!"
며칠 전 00엄마께서 전화를 하셨습니다. 00는 3학년 때 가르친 제자입니다. 그 아이가 벌써 중학교 2학년입니다. 졸업한 지도 2년이나 되었고 가르쳐 보낸지 6년이나 되었는데. 아직도 잊지 않고 해마다 김장철이면 연락을 하시는 00엄마. 그 마음만으로 내 마음은 벌써 부자가 됩니다. 선생님께 선물을 주면 안 되는 세상입니다. 이미 가르쳐 졸업시킨 제자 부모님의 선물이니 법에 저촉이 될 리는 없지만.
"00엄마, 정말 감사합니다. 그 김장 김치 먹지 않아도 입맛이 돕니다. 집에서 직접 기른 시골 배추에 직접 수확한 고추로 담은 무공해 김치일 테니 더욱 맛이 있겠죠? 교권은커녕 교사의 자존감을 팽개치는 사건들이 난무하는 요즘 같은 세상에 오래 전 담임 선생님을 잊지 않고 계신 것만으로도 이미 충분히 넘치도록 감사합니다!
00엄마의 김장 김치는 먹지 않아도 배부르고 맛있습니다. 추운 이 겨울에 손끝이 시리도록 김치를 담그시면서 제 생각까지 해 주신 그 마음, 오래도록 잊지 않겠습니다. 선물 중에 최상은 마음의 선물이니까요. 00이도 열심히 공부한다니 고맙습니다. 그리고 00이를 위해 독서하는 엄마의 모습을 부탁드렸는데 잊지 않고 실천해 주시니 더욱 고맙습니다. 저는 오늘 출장이라 곧 나가야 됩니다."
마음의 선물로 이미 따듯해진 오후였습니다. 거절할 명분을 찾으려고 출장 가야 한다고 핑계를 댔지만 참 기분 좋은 거절이었습니다. 각박한 세상이라 하지만 아직도 아름다운 세상이지요? 짙푸른 배춧잎을 자랑하던 00이네 텃밭, 태양초로 담근 무공해 김치를 하얀 쌀밥 위에 얹어 먹던 6년 전 그 가을 00집을 찾아가며 감귤 한 상자로 갚았던 그 김장 김치 맛이 입안에 맴돕니다.
'00엄마, 정말 감사해요. 00이도 잘 키우시고 아무쪼록 행복하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