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마을에서 책읽기-노인, 사자 그리고 소년

2018.12.20 11:09:06

헤밍웨이의 '노인과 바다'

독서모임이 세 번째 겨울을 맞이합니다. 연말엔 작은 선물과 연하장을 주고받고 해외여행이라도 다녀오면 낯선 물건들을 가져와 즐거움을 더했습니다. 우리들이 한 해의 끝자락에 읽기로 한 책은 『노인과 바다』입니다. 도심의 공간에 모여 인상 깊은 부분을 읽고 느낌을 말하는 ‘송년 낭독’에 적절한 책입니다. 성탄절 가까운 도시는 화려한 조명으로 들뜬 분위기지만 산티아고 노인의 손을 타고 내리던 근육의 경직처럼 깊고 오랜 빛깔의 소설을 들여다보았습니다. 우리들이 모인 곳은 노래를 부를 수 있는 마이크와 각종 탕을 끓이는 불판, 술과 음료를 먹을 수 있는 현란한 유흥의 장이었습니다.^^

 

떡과 오뎅, 만두가 들어간 얼큰한 라면찌개, 골뱅이소면무침, 황도 슬라이스통조림, 과일빙수 등 『노인과 바다』를 안주 삼아 벗들과 눈을 맞추며 열심히 먹었습니다. 그리고 저마다 책을 읽고 느낀 점을 이야기하며 우리의 한 해도 정리하였습니다. 책과 함께하는 멋진 송년 모임이었습니다. ^^

 

저는 이 소설에서 인상 깊은 몇 개의 낱말들을 수첩에 적어보았습니다. 산티아고 노인, 멕시코만, 사자꿈, 오래된 신문, 야구, 팔씨름, 상어, 피 냄새, 청새치 그리고 소년 등 입니다. 분명 읽었던 소설인데도 펼치니 새롭습니다. 예전에 보이지 않던 내용이 자꾸 눈에 들어옵니다. 독자가 찾아낼 것이 많은 소설이 좋은 소설인 것이 맞나봅니다. 노인은 바다를 영원한 여성으로 대합니다. 그러나 84일간 한 마리의 물고기도 잡지 못하고 85일째 되던 날 사람들이 가지 않는 육지에서 떨어진 바다에서 배보다 큰 물고기를 잡습니다. 고요하고 점잖으며 인생을 관조하는 멋진 청새치를 잡아오다 탐욕스러운 상어들에게 빼앗기고 뼈만 남은 물고기를 배에 매달고 항구로 귀환한다는 다소 짧은 소설입니다.

 

노인은 매일을 사는 우리들의 모습이 아닐까요. 늘 빈 배로 귀환하는 소시민이지만 내일 다시 낡은 돛을 달고 짙고 푸른 바다를 향해 나아갑니다. 아침에 눈을 뜨고 세상 속으로 출근하고 이따금 버거운 행운 버거운 고통 사이에서 잠깐잠깐 졸면 그 사이에 별빛은 쏟아지고 바다엔 날치가 뛰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밤하늘의 별빛을 오래 바라보고 싶어도 잡고 있는 낚싯줄을 놓지 못합니다. 그렇게 잡은 큰 물고기는 이전투구(泥田鬪狗)의 세상에서 날카로운 이빨을 가진 상어들에게 뜯어 먹힙니다. 그래도 남은 꼬리와 머리를 배에 매달고 우리들은 불빛 휘황한 항구 하바나를 향해 가야합니다. 언덕 위 낡은 집에는 어제신문이 있고, 침대에 누워 사자와 아프리카를 꿈꿀 수 있기 때문이죠. 그런 노인을 위해 소년은 커피 한 잔을 가져옵니다.

 

노인은 왜 사자꿈을 꾸는 것일까요? 사자에 대한 은유를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에서 철학자 니체는 인간의 삶에 대해 말합니다. “정신의 세 가지 변화를 나는 그대에게 말한다. 이렇게 정신이 낙타가 되고, 난타는 사자가 되고, 사자는 어린애가 되는가.”라는 글을 통해 ‘그는 낙타-사자-어린이’ 정신변화를 세 단계로 표현합니다. 무거운 짐을 지고 가는 사막을 가는 낙타는 등에 실린 짐이 자기의 것은 아니지만 왜 그 짐을 짊어져야하는 지를 모르고 살아갑니다. 정해진 사회의 규범에 순응하며 살아가는 것입니다. 낙타가 자신의 용기와 자신의 기준을 가지면 사자가 됩니다. 자신이 해야 할 일을 알고 자신의 의지에 따라 행동하는 것이 사자입니다. 사자의 삶을 벗어나는 순진무구하며 어떤 억압과 구속에서도 벗어나 모든 것이 자유로운 어린아이의 삶이 됩니다. 니체는 자신의 삶을 예술적으로 보며 긍정적인 자아를 가진 ‘초인’ 즉 ‘위버멘쉬’라고 볼 수 있다고 합니다.

 

노인의 사자꿈은 아직은 굴레에 묶여 있지만 바다를 향해 나아가 의지를 가진 한 인간이 되어 물고기를 잡는 것이 아닐까하는 제 생각을 송년모임에서 이야기하였습니다. 궁극적인 삶의 형태는 노인에게 미끼 생선을 가져다주는 눈 맑은 소년으로 귀결되는 것이라고요. 이 책에 나오는 멋진 말을 오래 기억하려 합니다. 그리고 노인처럼 바다를 향해 돛을 올리고 조각배를 저어갈 것입니다.^^ 모두 행복한 송년 보내시기 바랍니다.

 

“하지만 인간은 패배하도록 창조된 게 아니야.”

“인간을 파멸당할 수는 있을지 몰라도 패배할 수는 없어.”

 

『노인과 바다』, 어니스트 헤밍웨이지음, 김욱동옮김, 민음사, 2012

이선애 수필가, 경남 지정중 교사 sosodang@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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