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르페 디엄, 현재를 즐겨라!

2019.01.31 09:49:09

<멈추면 비로소 보이는 것들>을 읽고

현대시 중에 ‘운전면허증을 딴 아들에게 보내는 충고’란 시가 있다. 운전면허를 따면 어디든 빠르게 다닐 수 있는 편리함은 있겠지만, 대신 아주 작고 소중한 것들을 잃어버리고 만다고 경고한다. 예를 들면 평소 걸어 다닐 때 보았던 길가에 피어 있는 작은 민들레꽃, 동토를 뚫고 올라오는 귀여운 새싹, 풀잎에 맺힌 영롱한 이슬, 거미줄에 갇힌 잠자리 등등 얻는 것 대신 잃는 것이 더 많다고 걱정하는 내용이다.


혜민 스님의 두 번째 책 ‘멈추면 비로소 보이는 것들’도 바로 이런 인간의 끝없는 탐욕을 걱정하고 있다. 현대인들은 너무 바쁘다는 것이다. 그래서 진짜 소중한 것들을 잊고 산다. 가족 간의 사랑, 친구 간의 우정, 이웃 간의 대화가 그런 것들이다.


세상이 요구하는 부귀와 공명, 출세를 얻었을 때만 사람들은 칭찬하고 인정해준다. 하지만 우리는 이미 존재 그 자체만으로도 소중하고 사랑받을 만하다고 스님은 주장한다. 인간의 가치를 평가할 때 무엇인가를 꼭 이루어 냈을 때만 대단한 가치가 있는 존재로 판단하는 세상을 비판하고 있는 것이다.


비록 남이 자신을 하찮게 보더라도 자신만큼은 자신을 소중하게 여기고 사랑하라고 충고한다. 이 구절에서 필자는 격한 공감이 갔다. 얼마 전 예전 직장 동료의 결혼식장에 갔는데 마침 상무와 전무가 있었다. 모든 직장 동료들이 상무와 전무한테만 인사를 하고 필자는 거들떠보지도 않는 것이었다. 그때 그 자괴감과 비참함이란 말로 표현할 수 없었다.

 

아, 이래서 세상의 모든 사람들이 출세를 하려고 기를 쓰는구나. 다시 한 번 느꼈다. 혜민 스님은 이런 경우 자기 자신마저 자신을 저버리면 그런 사람들한테 지는 것이라고 말씀하신다. 인간은 존재만으로 존엄한 가치가 있기 때문이다. 온전히 자신을 느끼는 것이 자신을 사랑하는 비결이란 것이다.


스님은 또 기대가 크면 클수록 인간관계는 어긋날 수 있다고 경고한다. 그러면서 인간관계가 힘들다고 느낄 때를 자세히 살펴보라고 한다. 자신이 상대방에게 너무 많은 기대를 하고 있어서 그렇게 서운한 것은 아닌지 말이다.


이 부분에서 필자는 무릎을 쳤다. 필자도 친구한테 서운함을 느낀 적이 많았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친구 생일 때는 필자가 이만큼을 해줬는데 정작 필자의 생일에는 그의 절반도 안 되게 되돌아왔을 때 솔직히 많이 서운했었다. 지금 생각해보니 스님의 말씀처럼 필자가 너무 큰 기대를 했었기 때문에 서운했다는 생각이 든다. 앞으로는 상대에 대한 기대를 많이 낮추어야겠다는 생각이 저절로 들었다.


안타깝게도 사람과 사람의 관계는 아주 이기적인 관계라고 한다. 자신보다 남을 먼저 생각하는 사람은 이 세상에 단 한 사람도 없다는 것이다. 자신의 배가 채워졌을 때 비로소 다른 사람의 배고픔이 느껴지기 때문이란다. 하지만 우리는 사랑이나 우정을 빌미로 상대방에게 너무 많은 기대를 하고 있다. 오히려 편안하게 상대방을 바라볼 때 우리의 사랑과 우정은 더욱 깊어질 것이라고 한다.


스님은 실수를 두려워하지 말라고 한다. 다만 실수를 통해 배움이 없는 것을 두려워하라는 것이다. 어느 분야의 전문가가 된다는 것은 이런저런 실수를 통해 내공이 쌓인 사람을 칭하는 말이다. 잘하는 것과 성공에 너무 익숙해져 있는 우리를 반성하게 하는 대목이다. ‘자기계발서’에서 주장하는 것처럼 누구나 성공할 수는 없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우리는 너도나도 성공할 것이라고 믿고 성공하지 못했을 때 좌절하는 것이다.


맞는 말이다. 스님께서는 성공보다는 과정을 중시하라는 말씀으로 들린다. 아무리 성공을 한들 과정이 아름답지 못하다면 시간이라는 것을 잃게 된다는 것이다. 절대로 실패한 자들을 위로하는 말이 아닌 것이다. 성공의 결과는 기쁘지만 잠시뿐이고 성공을 이루려고 하는 과정은 우리의 삶 전체이기 때문이다.


카르페 디엄! 스님께서는 현재를 즐기라고 충고한다. 나중을 위해서 현재를 희생하지 말라는 것이다. 현재는 다시 오지 않는다. 미래는 담보할 수 없다. 과거는 지나간 시간일 뿐이다. 따라서 현재가 가장 중요하다는 뜻이다.


멈추고 보면 비로소 보이는 것들이 있다. 온전히 그것을 느껴보라는 것이다. 탐욕의 반대말은 금욕이 아니고 만족할 줄 아는 마음이란 것이다. 만족은 우리를 행복으로 이끌고 탐욕의 마음은 불행을 이끈다. 물론 그렇다고 부족한 자신에게 늘 만족하여 노력하지 않으면 안 된다. 결과를 향하는 아름다운 과정을 중시하라는 뜻이다.

 

힘들면 한숨 쉬었다 가라고 한다. 사람들에게 치여 상처받고 눈물 날 때, 그토록 원했던 일이 이루어지지 않았을 때, 사랑하던 이가 떠나갈 때, 그냥 쉬었다가라는 것이다. 자신을 진심으로 아껴주는 친구를 만나 그동안 가슴 속에 담아두었던 말들, 서럽고 안타까웠던 이야기, 조근조근 다 토해버리고 힘든 마음을 지탱하느라 애쓰는 자신의 몸을 위해 운동도 하고 찜질방도 가고 어렸을 때 좋아했던 떡볶이, 어묵 다 사먹으라는 것이다.

 

평소에 잘 가지 않던 극장에도 가서 제일 재밌는 영화를 골라 미친 듯이 가장 큰소리로 웃어도 보고 아름다운 음악, 자신의 마음을 이해해줄 것 같은 노래도 들어보란다. 그래도 안 되면 병가 내고 며칠 훌쩍 여행을 떠나라고 권한다. 경춘선을 타고 춘천으로 가도 좋고 ‘땅끝마을’의 아름다운 절 미황사를 가도 좋고 평소에 가고 싶었는데 못 가봤던 곳으로 혼자 떠나라고 한다. 그런 시간들을 보낸 후 마지막으로 기도하라고 한다. 종교가 있든 없든 상관없이 자신을 위해 자신을 좀 더 사랑할 수 있게 해달라고 기도를 하라는 것이다. 그리고 용서할 수 있게 해달라고 기도를 하라는 것이다. 그래야 자신이 살아갈 수 있으니까 제발 용서하게 해달라고 아이처럼 조르라고 한다.


오늘, 필자는 혜민 스님의 말씀을 들으며 가장 중요한 구절이 계속 머릿속을 맴돌고 있다. 미래를 위해 현재를 희생하지 말라. 과거는 지나간 시간이요, 미래는 아직 오직 않은 불확실한 시간이요, 오직 현재만이 자신의 것이라는 스님의 말씀. 그동안 필자 역시 안 먹고 안 입고 안 쓰며 미래를 위해 희생만 했는데 이제부터 그런 바보 같은 짓은 당장 멈춰야겠다. 카르페 디엄! 현재를 즐겨야겠다.

김동수 충남 서령고 교사, 수필가, 여행작가 su9493@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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