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합적 인간관과 예술로서의 교육

2019.03.06 14:47:41

슈타이너의 교육사상과 실천 ②

인간은 신체·영혼·정신의 통합적 존재
발도르프학교교육의 사상적 토대는 슈타이너의 인지학이다. 슈타이너의 인지학적 교육사상을 한마디로 요약하면, ‘인간 본질에 대한 올바른 인식’과 ‘예술로서의 교육’이라고 할 수 있다. 인지학에 따르면, 인간에 관해 바르게 인식하는 것은 바로 통합적 존재로서의 인간 이해를 뜻한다.

 

인간은 복잡한 유기체로서 신체·영혼·정신으로 이루어져 있다. 먼저 눈에 보이는 신체(body)를 가진 인간이다. 그러나 인간은 자극에 대한 반응이라는 간단한 과정으로 환경과 상호작용하는 것이 아니다. 인간은 사고과정(thinking)을 통해 개념을 형성하고 추상작용을 하며, 느끼는 과정(feeling)을 통해 슬픔·기쁨·호오(好惡)의 감정을 가질 뿐만 아니라, 의지를 내보이는(willing) 존재이기도 하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 보이지 않는 내적이고 은밀한 부분을 갖게 되는데, 이것을 슈타이너는 인간의 영혼(soul) 영역이라고 한다. 그런데 인간은 의지·감정·사고로 대표되는 영혼의 활동을 통해 보다 높은 차원의 정신세계와도 관계한다. 따라서 인간은 정신(spirit)적 존재이기도 하다. 이와 같이 슈타이너는 눈에 보이는 신체만을 고려하지 않고, 영혼의 활동을 통해 자기만의 내면세계를 형성해가며, 그것이 정신세계와 관계를 맺어 가는 신체·영혼·정신의 통합적 존재로 인간을 파악한다.

 

인간은 7년 주기로 질적 성장
슈타이너의 인간관에 의하면, 인간발달은 7년을 주기로 두드러진 변화를 겪는다. 7년 주기 리듬의 발달이 나타나는 것은 젖니에서 영구치로 바뀌는 이갈이(7세 경) 시기, 2차 성징이 나타나는 사춘기(14세 경)이다. 이와 같은 신체적 변화는 영혼과 정신의 변화와도 관련된다. 이갈이 현상은 신체·영혼·정신의 긴밀한 결합이 느슨해지고 영혼이 두드러지게 활동하는 것이 가시적으로 나타나는 것이며, 2차 성징의 발현은 신체·영혼·정신이 각각 독립적이 되고 그중 정신이 두드러지게 발달하기 시작하는 때를 알리는 현상이다. 이와 같이 인간은 대략 7년 주기의 리듬에 따라 지속적으로 성장하고 발달해간다.


슈타이너에 따르면, 태어나서 처음 7년은 머리 부분이 신체적으로는 완벽하게 형성되어 있지만, 영혼적으로는 꿈꾸는 상태요, 정신적으로는 아직 자고 있는 상태라고 했다. 한편 신체의 가슴 부분은 정신적으로만 꿈꾸는 상태에 있고, 팔다리 부분은 태어나는 순간부터 신체·영혼·정신이 모두 깨어 있는 것으로 봤다(모두 깨어 있되, 아직 제대로 형성되지 않았다). 따라서 슈타이너는 유아기에는 팔다리 움직임을 통한 팔다리 형성과 아직 깨어나지 않은 상태인 가슴과 머리 부분을 일깨우도록 하는 것이 교육과 수업의 과제라고 주장했다. 따라서 유아기 교육은 사고와 정신활동에 초점을 둘 수 없고, 주로 손과 발의 활발한 움직임과 활동으로 이뤄져야 한다는 것이다. 

 

이갈이를 하면서 맞게 된 두 번째 7년 즉, 초등학령기 아동은 신체기관 중 가슴 부분(슈타이너는 이것을 ‘리듬체계’라고도 부른다)이 주로 발달한다. 따라서 학령기가 돼서야 아이들은 호흡이 안정된다. 슈타이너는 리듬체계가 발달하는 7~14세 단계에서 모든 수업과 교육은 머리 부분이 최대한 적게 관련되게 하고, 리듬체계가 지배적이 되게 하라고 역설한다. 리듬체계는 영혼의 활동의지·감정·사고 중에서 주로 감정의 활동과 관련된다. 따라서 이 시기 교육은 머리가 아니라 가슴과 관련된 교육이요, 감정과 관련된 교육이 주가 돼야 할 것이다. 따라서 이 단계 교육은 추상적인 개념이나 논리가 아니라, 감정을 통해 세계를 표상하고 인식할 수 있도록 이뤄져야 한다. 이 단계 아동은 아직 추상적인 지적 개념 형태를 소화할 수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슈타이너는 초등단계 교육과 수업에서 ‘회화적 요소’(pictorial element)를 강조한다. 발도르프학교 1~8학년 수업에서 동화·전설·신화 등 상상력을 불러일으키는 이야기를 교사가 직접 들려주고, 풍부한 칠판그림을 활용해서 보여주는 것은 인간의 발달단계에 적합한 교육을 위한 것이다.

 

사춘기를 지나면서 사고력이 활발하게 활동하기 시작한다. 비로소 추상적이고 개념적인 사고력이 발달하게 되는 것이다. 이것을 슈타이너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Stockmeyer, 1991: 171에서 재인용). “사춘기까지 아동은 인류가 축적해온 많은 사고력이라는 유산을 기억 속에 사용하지 않고 쌓아둔다. 그러던 것이 사춘기를 지나면서 기억 속에 인상지어 두었던 것을 지적으로 이해할 수 있게 된다.”

 

교육은 예술이다
교육의 원리는 이러한 발달단계에 따라야 한다. 슈타이너가 유아기 교육원리로 강조하는 것은 모방(imitation)과 본보기(example)이다. 유아기 교육의 과제는 아이들이 모방할 만한 물리적·심리적·도덕적 환경을 제공하는 일이다. 눈에 보이는 물리적 환경에 국한하지 않고, 눈에 보이지 않는 태도·마음가짐·분위기까지 아이들이 고려할 만한 것을 제공하는 것이 필요하다.


7~14세 초등교육기 교육원리는 ‘학생으로서의 자세(discipleship)’와 ‘권위(authority)’가 강조된다. 물론 이때 권위는 힘에 의한 강요된 권위가 아니라, 학생이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는 권위이다. 이것을 통해 아동은 의식·습관·성향을 형성하고, 자기의 기질을 발현시켜 나간다. 공경과 존경심은 이 시기 아동이 제대로 성장할 수 있게 하는 힘이다. 따라서 이 시기 교사의 역할은 특히 중요하다. 교사는 세계에 대해 의심의 눈으로 바라보는 이 시기 아동에게 확신시켜줄 수 있는 권위를 지녀야 한다. 발도르프학교에서 한 명의 담임교사가 8년을 가르치는 것은 이 시기 교사의 권위가 중요하기 때문이다.

 

‘인간 본성에 대한 바른 인식’ 외에 인지학적 교육사상의 또 다른 축은 ‘예술로서의 교육’이다. 슈타이너는 교육을 예술로써 간주하여, 아예 ‘교육예술’(Erzieungskunst)2이라는 용어를 사용한다. 슈타이너가 교육을 예술로써 파악하는 것은 예술이 눈에 볼 수 있는 물질세계 속에서 눈에 보이지 않는 정신세계를 발견할 수 있으며, 또한 예술에서는 물질적인 것과 정신적인 것이 서로 구분되지 않고, 정신적인 것은 예술작품이라는 물질적인 것을 통해 드러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즉, 예술이 갖는 ‘정신성(spirituality)’과 ‘통합성(wholeness)’에 슈타이너는 주목한다(정윤경, 2004). 슈타이너는 교육 역시 예술과 마찬가지로, 눈에 보이는 아이들 안에서 눈에 보이지 않지만, 아이들이 가지고 있는 신성한 정신성을 발견하고, 그것을 일깨우며 아이들이 자기 고유의 내면세계를 발달시킴으로써 정신적인 것과 물질적인 것을 통합시키는 과정으로 본다.


인간의 삶과 실천 속으로 파고드는 인지학
슈타이너의 인지학이 신비주의적 색채가 있고, 슈타이너 자신의 어려운 용어로 설명되고 있어 쉽지 않지만, 오늘날 현대교육에 많은 시사점을 제공한다. 슈타이너는 인지학이 삶으로부터 분리된 이론이 아니고, 인간의 호기심이나 지식에 대한 욕구를 충족시키려는 것이 아님을 강조한다. 또한 이기적인 이유에서 고차원의 경지에 도달하려는 소수 사람을 위한 방법도 아니다. 슈타이너는 인지학이 현대사회 인문학의 중요한 과제와 결합해서 일할 수 있고, 더 나아가 인류 복지를 위해서도 기여할 수 있기를 전망했다.


교육사상가와 실천가로서 슈타이너를 조명하는 것은 그의 이론을 교조적으로 받아들이거나, 발도르프교육이 유일한 교육의 대안이라고 보기 때문은 아니다. 교육이 어느새 가시적인 지표와 성과에 몰두하고, 인간을 교육하는 것이 삶을 위한 교육에서라기보다 사회적 요구에 맞춘 교육으로 치닫는 현대사회에서 교육의 출발은 인간의 본성에 대한 바른 인식이라고 역설하는 것은 분명히 되새겨봐야 할 지점이다. 다음은 슈타이너가 1919년 학교 설립 당시 강조한 말이다.

 

기존의 사회질서를 위하여 인간은 무엇을 알아야 하며 무엇을 할 수 있어야 하는가를 묻지 말고 그 인간에게 어떤 소질이 있으며 무엇이 그 속에서 개발될 수 있을 것인가를 물어야 한다. 이렇게 될 때 자라나는 세대로부터 항상 새로운 힘이 사회질서에 공급될 수 있고, 또 이 질서 속으로 들어오는 온전한 인간이 자신으로부터 만들어내는 것이 그 질서 속에 살아있게 될 것이다(Wolfgang Saßmannshausen,1996: 4에서 재인용).

 

인지학은 인간과 세계의 정신적 본질에 관한 인식을 추구하는 정신적 세계관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신비사상으로 끝나지 않고, 살아 움직이는 인간의 삶과 실천 속에 파고든다.


이상에서 살펴본 슈타이너의 인지학적 교육사상의 현대적 시사점을 다음과 같이 요약해 볼 수 있다. 첫째, 분절화된 현대 사회 속에서 인간과 세계, 그리고 인간이 세계와 관계를 형성해 가는 과정인 교육과 삶 전반을 다시 통합적으로 바라볼 수 있는 관점을 제시한다. 둘째, 물질주의가 만연한 시대에 슈타이너는 정신성의 회복을 강조함으로써, 내면세계의 교육, 영성의 교육까지 교육의 지평을 확대한다. 이것은 오늘날 만연된 머리만의 교육, 주지주의 교육의 폐단을 극복할 수 있게 한다. 셋째, 발도르프학교는 학교 교육의 위기가 거론되는 오늘날, 새로운 학교 모델로서 가능성을 시사한다. 발도르프학교는 성적과 등급으로 구별하고 서열화하는 교육, 지적인 교육만을 강조하는 일면성·관료적 형식주의 등이 나타나는 학교 모습을 거부하고, 인간이 세계 안에서 스스로 자신의 삶을 개척하고 꾸려나갈 수 있는 통합적인 인간을 형성하고자 한다. 

정윤경 전주교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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