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준화 블랙홀 빠진 자사고, 수월성 교육 어쩌나

2019.09.04 10:30:00

자사고 폐지를 놓고 한국사회가 뜨겁게 달아올랐다. 학교는 이념 전쟁터로 전락했다. 자사고를 폐지해야겠다는 좌파 진보진영의 밀어붙이기 행정이 빚은 결과다. 특권교육 · 귀족학교 · 입시중심학교라는 프레임을 씌워 몰아붙였다. '평등주의 교육'을 주창하는 이들은 일반고를 살리기 위해서는 자사고를 없애야 한다고 주장했다.

 

반면 자사고의 필요성을 인정하는 측은 교육을 이념 대결의 장으로 몰고 가 정권의 입맛대로 좌지우지하려는 의도가 담긴 정치적 판단이라고 반박한다. 자사고 폐지는 학생의 선택권을 무시하고 수월성·다양성 교육에 대한 시대적 요구를 외면한 처사라는 것이다. 학부모들의 목소리는 더 높다. "진보 교육감들은 자기 자녀는 자사고 · 특목고 보내면서 왜 남의 자식 앞길은 가로막느냐"며 ‘내로남불’이라고 쏘아붙인다.

 

이번 자사고 재지정 평가를 둘러싼 갈등에서 눈여겨볼 점은 대략 세 가지. 우선 지금처럼 행정적·인위적 폐지가 온당한 것인가 하는 문제다. 또 좌파진보진영이 왜 이토록 무리하게 자사고 폐지에 집착하는 이유는 무엇이고 이 같은 결과가 한국의 수월성 교육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가 하는 점이다.

 

이번 호에서는 자사고 폐지 정책의 교육적·사회적·법적인 문제점을 짚어보고 좌파진보진영이 자사고 폐지에 매달릴 수밖에 없는 속내를 들여다본다. 아울러 자사고 폐지 정책으로 심각한 위기를 맞은 한국 수월성 교육의 현주소와 극복방안을 모색한다. 자사고 재학생 좌담을 통해 갈등과 혼란의 한 가운데 놓인 학생들의 진솔한 이야기도 담았다.

 

예측불허의 혼돈으로 빠져드는 한국교육, 교육이 정치와 이념에 매몰된 지금, 우리는 어디로 가고 있는 것일까?

 

세계의 교육패러다임은 글로벌 창의인재육성으로 가고 있다. 패러다임(paradigm)은 동시대를 살아가는 구성원들의 공감대를 형성하는 사상으로 이는 시대적 상황에 따라 변화하며, 패러다임의 전환을 통해 인류문명은 발전하고 있다. 최근 세계교육의 패러다임은 창조성교육을 강조하고 있다. 바로 그 창조성의 근간에는 수월성 교육이 있다. 창조적인 인재는 누구인가 바로 수월성 교육으로 성장한 인재다.

 

우선 미국 수월성 교육의 예를 보면, 오바마 정부의 국가과학위원회는 국가의 창의력과 STEM의 정책 발표에서 ‘미국의 과학·기술·공학 및 수학교육 시스템의 요구사항에 관한 국가행동전략’을 공표하고 수월성 교육을 추진 중이다.

 

영국에서도 학생들의 수월성 창의교육과 문화 확산 운동을 장려하기 위해 이미 1998년부터 국가창의문화교육자문위원회를 범부처 자문기구로 설치하였다. 유럽연합은 2009년을 ‘유럽 창의성과 혁신의 해(European Year of Creativity and Innovation, EYCI 2009)’로 선포하고 재능 있는 인력을 발굴하고, 교육하고, 유지하는 것이 창의성과 수월성 교육에 중요하다고 선언하였다.

 

우리나라는 제7차 교육과정 개정을 통해 ‘미래사회에 능동적으로 대처할 수 있는 창의적인 한국인 육성’을 주된 목표로 설정하고, 초·중등 교육과정을 대폭 개정하여 추진하고 있다. 2010년 교육과학기술부는 제1추진과제를 창의교육 강화로 설정하고, ‘창의·인성교육 기본방안’을 발표하였고, ‘2009 교육과정 개정(창의적체험활동 신설·필수교과 축소·집중이수제 도입 등), 입학사정관제 강화, 학교 다양화·자율화 등 입시와 교육과정에 이르기까지 종합적으로 접근하고 있다.

 

 

교육의 핵심은 창의성과 수월성

역사적으로도 수월성 교육은 고대 중세로부터 특별한 관심을 뒀던 것으로 보인다. 20세기에 들어와서 현대의 수월성 교육은 존스 홉킨스(John Hopkins) 대학과 하버드(Harvard) 대학에서 학생들의 수월성을 극대화하기 시작하였다. 동양의 수월성 교육을 보면 공자와 맹자시대에 나면서부터 아는 사람이 배워서 아는 사람보다 높은 수준으로 보아 수월성이란 이름으로 칭하였다.

 

한국의 수월성 교육을 보면 고구려·백제·신라시대에 수월성 교육에 관한 관심을 두기 시작하여 조선시대까지 수월성 교육을 시도하였던 다양한 과정을 볼 수 있다. 고구려시대는 태학을 설립하여 인재양성에 특별한 관심을 두었으며, 통일신라 시절에는 국학설립을 통하여 수월성 교육을 강조하였다. 고려시대에는 12도와 서당이라는 제도를 두어 특별히 우수한 사람에게 특별한 교육을 시키는 제도를 확장시켰다. 이같이 수월성 교육은 역사 속에서 그 가치를 찾을 수 있다.

 

하지만 최근 한국교육은 어처구니없게도 수월성 교육의 한 방향인 자사고 폐지를 둘러싼 논쟁이 한창이다. 자사고 폐지라는 열차가 가속도를 내고 있다. 한계를 넘어선 듯한 이 논쟁의 방향은 진보교육감들이 선거공약으로 내세웠다는 그 자체로, ‘충분한 논의’ 없이 ‘짧은 시간’에 폐지하는 쪽으로 가고 있다. 물론 앞으로 진행될 법정 소송은 한동안 한국 교육제도의 근간을 흔들어 놓을 전망이다. 현재 진행 중인 자사고 폐지에 대한 우려는 교육 그 자체의 본질적 문제보다는 정치적 논리에서 이 문제가 논의 선상에 있다는 점이다. 보수정부에서 진보정부로 넘어오면서 자사고가 관심의 대상이 되었다는 점은 심히 우려된다.

 

한 국가를 지탱하는 근간인 교육은 백년대계이다. 그러나 지금 한국교육은 자사고 폐지를 왜 해야 하는지에 대한 좀 더 근본적이고 분명한 이유 없이, 앞으로 한국교육은 어디로 어떻게 가야 하는지에 대한 대답도 없이 방향성을 잃어 가는 느낌을 준다. 물론 나름대로 ‘평준화’라는 이름으로, 또한 고교를 서열화하고 입시기관으로 탈바꿈시키는 부작용 때문이라고 자사고 폐지 주장의 논리를 펴고 있으나 그것으로는 부족하다. 오히려 자사고를 폐지하면 고교 교육에서 대학 입시 열기가 사라질 수 있다는 근거가 있는지 궁금하다. 이는 겉으로 내세우는 구호일 뿐이다.

 

자사고 폐지하면 우리를 꽃길을 걸을까

이제 근본적인 교육문제를 한번 생각해보자. 교육은 무엇인가. 이 대답은 아주 간단하다. 한 개인이 태어날 때 가지고 있는 잠재 가능성을 극대화하는 일이다. 인간의 잠재 가능성을 교육이라는 방법으로 어떻게 자아실현을 하는가가 교육의 역할이다. 그러나 현재의 한국교육은 정권이 바뀔 때마다 교육 근간이 흔들리는 상황이 되풀이되고 있다. 이는 한 개인의 타고난 잠재능력을 고려하지 않은 채 근본적인 타당한 이유 없이 무의미한 이념적 논리로 교육의 방향을 이끌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인간의 잠재적 특성을 이야기할 때 보통 정상분포 곡선에 의거한 판단을 한다. 정상분포 곡선을 보면 우수한 학생이 있고, 중간인 학생이 있고, 덜 우수한 학생이 있다. 각 개인의 잠재 가능성에 맞는 타당한 교육적 접근방법으로 개인이 가지고 있는 잠재성을 극대화시키는 것이 교육인데, 그것을 정치적·이념적 잣대로 좌지우지한다는 것은 그 교육적 본질을 상실하게 되는 것과 다르지 않다.

 

교육은 왜 하는가. 교육의 목표는 무엇인가. 교육은 어디로 가야 하는가. 이러한 문제는 하루아침에 해결될 문제가 아니고 하루아침에 그 답을 찾는 문제는 더욱 아니다. 자사고를 폐지할 수도 있다. 그러나 그 폐지 과정에는 그 합당한 이유가 분명히 있어야 한다.

 

한번 생각해보자. 현재의 자사고 폐지 여부의 논쟁이 인간의 잠재력을 극대화 시킨다는 의미에서 문제가 무엇이냐 할 때, 아마도 그에 대한 답은 찾기 힘들 것이다. 이보다 현재의 지사고 폐지는 정치적 이념 갈등에서 나오는 것일 뿐이라는 생각이 앞선다.

 

이 결과는 앞으로 한국교육에 상당한 문제를 던질 수 있고, 한국교육에 대혼란을 일으킬 수 있다는 점을 분명히 하고자 한다. 교육을 담당하는 한 교육자로서 간곡히 바라 건데, ‘한국교육의 정책은 무엇이고 현장에서 교육은 어떻게 이해되어야 하는가?’라는 질문에 답을 찾기 위해서는 우리 사회구성원 모두가 좀 더 사려 깊은 고뇌와 끝없는 논의를 할 시간이 필요하다. 부작용 없는 교육개혁은 이러한 과정을 통해야만 가능하다.

 

끝으로 최근 교육문제가 실검 1위에 있는 경우가 많은데, 바로 자사고 폐지 문제이다. 왜 자사고 폐지를 그렇게 주장하는 것인지에 대한 질문에 대한 대답은 없고, 대답은 단순히 평준화를 이야기한다. 평준화는 자사고의 반대 개념이 아니라, 교육이 가지는 또 하나의 방향일 뿐이다. 따라서 자사고와 평준화는 상대적인 경쟁개념으로 볼 것이 아니라, 자사고는 자사고 대로 그 특성을 극대화시키고, 평준화는 평준화대로 그 의미를 찾는 쪽으로 나아가는 것이 타당한 결론으로 보여 진다.

송인섭 숙명여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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