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상보다는 심상이다!

2019.10.07 16:30:04

‘동그라미 그리려다 무심코 그린 얼굴…….’로 시작되는 어느 유행가 가사처럼, 인생을 살다보면 문득문득 보고 싶은 얼굴이 있는 반면, 떠올리기조차 끔찍한 얼굴도 있다. 외모의 아름다움과 추함을 떠나서 하는 말이다.

 

아무리 조각상처럼 완벽한 얼굴이라 하더라도 차가운 얼굴이 있고, 설령 못생긴 얼굴일지라도 어딘지 모르게 끌리고 정이 가는 얼굴이 있는 것이다. 이것은 그 사람이 평소 씨 뿌리고 가꾸는 마음 밭의 미추 때문인데, 시인의 얼굴이 유난히 맑고 향기로운 것도 바로 이런 까닭이다.

 

얼굴과 관련된 이야기가 나오면 흔히 링컨에 관한 일화를 빼놓을 수 없다. 에이브러햄 링컨이 미국 제16대 대통령에 취임하고 나서 며칠이 지났을 때의 일이라고 한다.

 

링컨의 친구 중 한 사람이 찾아와 자기와 잘 아는 사람을 정부 고위직에 추천했다. 링컨이 어느 날 마지못해 그 인물을 만나보고 나서 말하길

 

“그 사람은 얼굴 때문에 안 되겠어”라고 완곡하게 거절했다.

 

“사람의 됨됨이를 어떻게 얼굴로 판단한단 말인가. 평소 자네답지 않으이”라며 친구가 불쾌한 기색을 보이자 링컨이 정색을 하고 말했다.

 

“지금, 얼굴이 잘생기고 못생긴 것을 말하는 게 아니야. 그 사람의 얼굴에 악의가 보여. 사람의 얼굴은 마흔 살이 넘으면 자기가 만드는 것이라네. 마흔 살 이후의 얼굴은 그 사람의 정확한 이력서라구.”

 

링컨의 예언대로 그 사람은 몇 년 후 어떤 사건에 연루되어 처벌을 받았다니 정말 날카로운 통찰력이다.

 

얼굴의 표정, 주름살, 눈빛, 미소 하나하나가 결국은 자신이 살아온 삶의 이력서란 뜻이니, 살아오면서 무슨 생각을 했고, 어떤 행동을 했으며, 사람을 사랑했는지 미워했는지 얼굴에 모두 나타나기 때문에 짙은 화장이나 가면으로도 숨길 수가 없다는 것이다.

 

2500년 전에 살았던 공자도 링컨과 비슷한 말을 했다. 사람의 나이 마흔 살이면 세상의 풍파를 겪을 만큼 겪어서 이제는 원숙의 경지에 접어들어 미혹함이 없다고 했으니, 결국 마흔 이후의 얼굴은 자기가 만든 것이란 주장이다.

 

안병욱님도 ‘얼굴’이란 수필에서, 선천적인 얼굴은 어쩔 수가 없으나 후천적인 얼굴은 얼마든지 본인의 노력 여하에 따라 바꿀 수 있다고 했다. 착한 생각, 아름다운 생각을 몇 십 년에 걸쳐 수천 번, 아니 수만 번을 반복하다 보면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아름답게 성화가 된다는 것이다.

 

반대로 악의와 질투의 감정과 표정을 수천 번 수만 번을 짓다보면 스스로 얼굴에 보기 흉한 표정으로 굳어질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그러고 보면 사람은 저마다 자기의 얼굴을 매일같이 조각하면서 인생을 살아간다는 의미이다. 즉, 천사의 얼굴도 악마의 얼굴도 종국에는 자기가 만들기 나름이라는 뜻이니 이 얼마나 섬뜩한 말이냐.

 

이것을 몸소 증명해 보인 사람이 있다. 바로 백범 김구 선생이다. 선생은 어렸을 적 천연두를 앓아 곰보 얼굴에다 지독한 추남이었다고 한다. 유년시절 마의상서란 관상학 책을 읽다가 자신의 상이 천격, 빈격, 흉격인 것을 알고는 스스로 좌절하여 삶을 포기할 무서운 생각까지 가졌다고 한다. 그러던 중 ‘상서’ 한 구절을 읽고 곧 마음을 바꿨는데 상서 중에 ‘상호불여신호 신호불여심호(相好不如身好, 身好不如心好)’란 구절을 발견한 것이다.

 

즉, 얼굴이 잘생긴 것은 몸이 건강한 것만 못하고, 몸이 건강한 것은 마음이 건강한 것만 못하다는 뜻이다. 이 구절에 큰 감명을 받은 선생은 어차피 외양은 이미 틀렸으니 이제부터 좋은 마음 밭이나 가꾸어야겠다고 결심하고 내적 수양에 피나는 노력을 한 결과 오늘날의 격조 높은 존영이 되었다는 것이다.

 

나는 가끔 전철이나 버스 속에서 혹은 길을 걷다가 발걸음을 멈추고 잠시 동안 뒤를 돌아보는 때가 있다. 늘씬한 팔등신의 선남선녀가 내 눈을 사로잡아서가 아니다. 생김새는 비록 평범하지만 잔잔한 미소, 맑은 얼굴이 내 발걸음을 멈추게 하기 때문이다. 그런 표정을 가진 사람을 보면 흡사 감동적인 예술 작품을 마주한 듯, 한 번이라도 더 보고 싶고 그저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기분이 좋아진다. 부처님 상호처럼 부드럽고 온화한 미소는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확실히 평화로운 느낌과 행복감을 가져다주는 것 같다.

 

그런데 요즘에는 어쩐 일인지 이렇듯 보기 좋은 얼굴을 갖춘 사람을 만나기가 점점 어려워진다. 얼굴다운 얼굴이 사라지고 있는 것이다. 경제가 어려운 탓인지, 세상이 각박해진 탓인지 많은 사람들의 표정에 생기가 없고 잔뜩 화가 난 것처럼 전투적이다. 바라보기 부담스럽고 거북한 얼굴들이 점점 늘어난다는 얘기다.

 

그래서 석가는 일찍이 돈 안 들이고도 남에게 베풀 수 있는 보시로 일곱 가지를 설파하셨다.

 

첫째, 안시(眼施) - 부드럽고 그윽한 눈빛으로 상대를 바라보아 주는 것.

둘째, 안시(顔施) - 항상 친절하고 웃는 얼굴로 대해 주는 것.

셋째, 신시(身施) - 상대에게 깨끗하고 단정한 옷차림을 보여 주는 것.

넷째, 언시(言施) - 만나는 사람마다 상냥한 말, 격려의 말, 위로의 말을 해 주는 것.

다섯째, 상좌시(床坐施) - 바른 자세로 앉아있는 것.

여섯째, 당사시(堂舍施) - 자기가 거처하는 주변을 항상 청결하게 하는 것.

일곱째, 심시(心施) - 되도록 선하고 아름다운 생각만 하는 것.

 

이런 작은 실천만으로도 우리는 충분히 자신의 얼굴을 아름답게 조각할 수 있고, 남에게 사랑을 베푸는 보시가 되어 극락에도 갈 수 있다고 하니 이것이 바로 불교에서 말하는 시심작불이다.

 

지금 우리 집 거실에는 커다란 전신 거울이 걸려있다. 우리의 신체 중에서 가장 중요한 얼굴을 보기 위해서이다. 그 맑고 투명한 거울 앞에서 나는 아침마다 외양을 치장하면서도 정작 나의 진정한 내면의 얼굴은 가꾸지를 못했다. 머지않아 내 나이 쉰을 바라보게 되었다. 지금의 내 얼굴에 책임을 질 부담스러운 나이인 것이다.

 

그렇다면 지금 내 얼굴은 과연 어떤 얼굴일까. 남들에게 내일의 활력을 찾도록 도와주는 온화하고 맑은 얼굴일까. 아니면 이기적이고 표독스러워 보기만 해도 짜증이 나는 얼굴일까. 스스로 거울 앞에 서보면 알겠지만 내 얼굴의 평가에는 못내 자신이 없다. 그래서 거울 앞에 서기가 두렵다.

김동수 충남 서령고 교사, 수필가, 여행작가, 교육부 명예기자 su9493@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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