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예 퇴임식을 하면서

2020.03.09 10:05:35

34년, 화려하지는 않았지만, 감동이 있었다

 

방학을 끝내고 출근을 했다. 2월 17일부터 21일까지 신학기 준비 기간이다. 늘 그랬던 것처럼 17일은 퇴임식과 다른 학교로 전근 가는 사람들 인사가 있는 날이다. 학생들도 등교를 해서 선생님들과 헤어지는 정을 나누고 축하를 해준다. 오후에는 전 직원이 함께하는 송별회도 계획되어 있다.

 

그런데 오늘은 일정에 많은 변화가 있다. 며칠 전부터 발생한 코로나19로 학생들은 학교에 등교하지 않는다. 송별회도 취소됐다. 코로나19 확산을 막기 위해 사람이 많이 모이는 행사는 취소하는 것이 좋다는 판단에 따른 결정이다. 퇴임식과 전근 인사만 하는 것으로 했다는 이야기다.

 

출근하자마자 여기저기서 축하 인사를 건넨다. 명예퇴직을 축하한다는 인사다. 오늘 모임이 이루어지는 다목적실에 들어갔다. 갑자기 분위기가 다르다. 평상시에 퇴임식 이야기를 할 때 간소하게 하라고 해서 아무 준비도 없었을 것으로 생각했는데 정면에 퇴임을 알리는 파워포인트 화면이 보인다.

 

‘우리들의 멋진 멘토 윤재열 수석선생님의 명예퇴임을 축하드립니다.’ 몇 줄 칭찬의 표현이 나를 감동하게 한다. 실내는 선생님들이 서로 오랜만에 만난 인사를 나누고 있다. 식이 시작되고 교장선생님(김성진)께서 부장단이 마련한 감사패를 대신 전해 주셨다. 감사패 전달을 위해 교장선생님이 내용을 읽는 도중 34년의 무게감이 짧은 순간에 스쳤다. 그 내용을 소개하면

 

감사패. 윤재열 수석선생님. 귀하께서는 학교 교육에 34년여간 헌신적으로 봉직하시며 참된 인재를 양성하는 데 지대한 기여를 하셨습니다. 특히 지난 3년간 천천고등학교 수석교사로 근무하시면서 제자들을 사랑으로 감싸주고 후배 교사들에게 늘 귀감이 되어 주셨으며 학교 발전을 위해 노력해주신 헌신과 노고에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귀하의 앞날에 행운이 함께 하시길 기원하며 존경과 감살의 마음을 이 패에 담아 전합니다. 2020년 2월 17일 천천고등학교 부장단 일동

 

우리 학교는 퇴임하는 분에게 감사패를 해주는 관례가 없다. 그런데 부장들이 특별히 준비를 했다. 고마움에 마음이 뜨겁다. 친화회 회장(원종석 선생님)이 전 직원을 대신해 축하금을 주셨고, 친화회 총무(김영희 선생님)가 환한 웃음으로 예쁜 꽃다발을 건네 주셨다.

 

선생님들은 박수를 치다가 때로는 환호성을 내면서 각자 자리에서 축하의 인사를 건네셨다. 이어서 인사말을 하라는데 순간 당황했다. 행사를 간단히 하는 것으로 알고 있었기 때문에 특별히 준비를 하지 않았다. 떠나면서 선생님들의 건강만 비는 인사만 하려고 했다. 준비는 안 했지만, 자리가 주어져서 몇 마디 했다.

 

교무부장님이 퇴임사라고 말씀하셨는데, 뭔가 거창하고 격식 있는 말을 해야 할 것 같아요. 그냥 떠나는 인사 말씀을 간단하게 드릴게요. 그렇게 해도 되지요. 방학 잘 보내셨나요. 신종코로나 바이러스 때문에 여행도 제대로 못 하셨죠. 걱정입니다. 여기 다른 학교로 전근 가시는 분도 많은데, 이렇게 만나면 떠나는 것이 우리의 삶이라 봅니다. 저도 이제 2월 말로 여러분 곁을 떠납니다. 하루하루는 길었는데 어느덧 34년이 시간을 지나왔습니다. 지금 생각하니까 그냥 훌쩍 지난 것 같아요.

 

돌이켜보니까 교직 생활은 힘들기도 했지만, 참 행복한 시간이었습니다. 학생들이 선생님이라는 이유만으로 저를 공경해주고, 또 동료들도 늘 지지해주고 말없이 도움을 많이 주셨습니다. 그분들의 힘이 있었기에 제가 지금 이 자리에 서 있을 수 있었다는 생각이 듭니다. 제가 교직에 첫발을 디뎠던 기억이 아직도 선명합니다. 처음이라는 시간의 특성 때문에 그런 것 같은데. 지금 마지막이라는 시간도 제가 오래 기억에 남을 듯합니다. 여러분과 함께했던 기억, 오래 간직하고 자주 떠올려 볼 것 같아요.

 

선생님들이 앞으로 뭐할까 자주 물으시는데 저는 앞으로 잠시 여유를 즐기면서, 또 새로운 도약을 위해서 노력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하고 있습니다.

 

아, 그리고 이 자리에서 선생님들께 고백할 게 하나 있습니다. 사실 제가 선생님들 한 분 한 분께 교육적 영감을 얻으며 늘 올곧게 생활할 수 있었습니다. 그동안 표현을 못 했는데 그래서 마음속으로 선생님들 엄청나게 좋아했습니다. 사랑합니다.

 

인사를 끝내고 서로 사진을 찍으며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선생님들은 선물을 주시면서 아쉬움을 남기셨다. 늘 동료들이 지지해주고 관심을 주는 것이 고마웠다. 그런데 오늘도 과분한 사랑을 주신다. 정성스럽게 손편지도 주신다. 건강과 행복을 빌며 손을 잡아주시는데, 선생님들의 뜨거운 마음이 그대로 전해온다.

 

34년 동안 작은 교실에서 아이들과 함께 했다. 그 삶은 작은 교실만큼 화려하지 않았다. 아무도 주목해주지 않았고, 조명도 받지 못했다. 그저 아무도 보지 않는 곳에서도 묵묵히 살아왔다.

 

아무도 보지 않았을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오늘 보니 그렇지 않나보다. 조용한 가운데 최선을 다한 것에 칭찬을 해준다. 선생님들의 눈빛이 ‘선생님, 참 멋진 분입니다. 참 괜찮은 교직을 하셨네요.’라고 찬사를 보낸다. 길다면 긴 34년의 세월 동안 버텨온 나 자신이 왠지 좋아 보인다. 성공을 따진다면 오늘 내 모습이 성공이 아닐까.

윤재열 경기 천천고 수석교사, 수필가 tyoonkr@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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