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미르 고원에 갈리맛 가족

2020.09.07 12:00:00

 

타지키스탄 두샨베를 떠나 징(Zing)마을까지 7시간이 걸렸다. 풍경들이 아름다워 지루할 틈이 없었다. 갈리맛 가족을 다시 만난다고 하니 설렜다.

 

대부분 차들이 그냥 지나치는 작은 마을 ‘징’. 이곳에 연을 맺은 것은 3년 전에 시작됐다. 매주 토요일 열리는 아프가니스탄 시장에 갔다. 아프가니스탄 사람들이 국경을 넘어 시장에 왔다. 태어나서 처음 보는 아프가니스탄 사람. 사진을 찍고 싶었으나 경찰이 다가와 촬영이 금지라고 했다. 우울해 하는 내 앞에 나타난 갈리맛 씨. 이 마을 의사인데 경찰도 어찌 할 수 없는 힘을 가진 사람이었다. 갈리맛 씨 덕분에 사진을 찍을 수 있었고 그의 집에 초대도 받았다.

 

이번이 갈리맛 씨와 세 번째 만남이고 동행들과 두 번째 오는 길이다. 파미르에는 올 때마다 마음을 다해서 현지 사람들을 만난다. 그런 걸음에 보폭을 맞춰주는 동행들이 많이 고맙다. 이번 방문에는 갈리맛 씨 부인이 디스크로 고생한다고 이야기를 듣고 한약 20kg를 한국에서 챙겨온 동행도 있었다. 그 뿐 아니라 미리 블로그에서 갈리맛 씨 이야기를 보고 아이들에게 줄 선물을 챙겨온 분도 계셨다. 이번 여행은 음식에 조예가 깊은 분들이 함께 하면서 한국 음식을 갈리맛 씨와 동네 주민들에게 대접하는 시간을 갖기로 했다.

한국은 7월이면 무더위가 기승을 부릴 때지만 이곳 파미르는 태양만 뜨겁지 그늘에 들어가면 선선하다가 쌀쌀해지기도 하는 그런 날씨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방 불 앞은 예외였다. 두샨베에서 준비한 재료들과 한국에서 공수해간 재료들이 동행들 손에서 마술을 부리고 있었다. 턱없이 부족하고 불편한 주방에서 고생 아닌 고생을 즐겁게 할 수 있었던 것은 큰 눈을 뜨고 음식을 기다리는 갈리맛 씨 아이들과 동네 주민들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남에게 주방 내주는 일이 그리 쉬운 일은 아니었을 터…. 그 마음에 보답하고자 모두의 얼굴엔 미소가 가득했다.

 

두어 시간 동안 김밥, 잡채 그리고 계란말이가 준비됐다. 한국에서야 가스불 켜고 뚝딱 만들거나 근처 식당에 가서 쉬이 사올 수 있는 음식이지만 여기 파미르 고원 오지 마을에서 김밥을 만들었다는 건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 아닌가. 한국 음식이 궁금했던 동네 여자 분은 음식이 만들어지는 내내 옆에서 보고 물어보고 맛보며 우리와 가까워졌다. 음식의 마무리는 플레이트라지만 여기 파미르에서는 널찍한 접시 찾기도 쉽지 않았다. 널찍하고 깨끗한 장판 위에 빵과 고기를 놓고 먹는 문화라서 그런가 주방에는 그릇이 많지 않았다.

음식을 다 내놓고 우리는 서로를 바라보며 무언의 칭찬을 하고 있었다. 이제 먹기 시작하면 되는 상황 앞에서 당황스러운 일이 발생했다. 타지키스탄은 무슬림 나라, 남의 여자와 겸상을 하지 않는 문화가 있고 아이들은 어른들과 겸상이 또 쉽지 않다보니 음식 앞에 앉은 사람들은 우리 동행들이었다. 우리가 우리 먹으려고 이 고생을 한 것은 아니잖아. 갈리맛 씨를 부르고 아이들을 부르고 동네 분들을 불러보았지만 오랜 전통을 우리가 깰 수는 없었다. 음식을 따로 담아서 동네 분들에게 드리고 갈리맛 씨 아이들을 부득부득 음식 앞에 앉히고 음식을 맛보았다.

 

짭조름한 김밥과 야들야들한 잡채를 처음 맛보는 아이들은 연신 손을 멈추지 않았다. 아이들은 잡채가 맛있는지 손으로 마구 먹는 모습이 귀여웠다. 우리도 포크를 내려놓고 아이들과 함께 손으로 먹기 시작했다. 그 와중에 갈리맛 씨는 기도하러 갈 시간이라며 자리를 떴다. 아버지가 자리를 비웠다고 밥상 분위기가 이렇게 달라지나. 아이들도 아버지가 없으니 많이 자연스러워졌다. 만드는 건 한세월, 먹는 건 한 순간이었다. 빈 그릇은 아이들이 설거지를 하겠다고 가져가버렸고 우리는 수고한 서로를 칭찬했다.

 

 

깊은 골짜기라 해가 빨리 떨어졌다. 잠깐처럼 느껴지지만 2년 동안 갈리맛 씨와 종종 안부를 물었던 일, 동행들과 북스쿡스에서 여행을 준비했던 일, 두샨베부터 여행을 꾸려나간 일, 다음 방문을 준비하는 일을 이야기하며 맛있는 한 끼의 밥상을 마무리했다. 한참을 기다려도 갈리맛 씨가 오지 않아 전화를 걸었더니 그제야 그가 왔다. 자리가 파하길 어디선가 기다렸던 모양이다. 많이 아쉬웠지만 충분히 아름다운 저녁이었다.

강석환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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