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베리아 횡단열차 삼등칸 사람들

2020.10.06 10:30:00

 

여행을 좋아한다. 더 구체적으로 말한다면 기차여행을 좋아한다. 어쩌다 러시아와 인연이 되어 세계에서 가장 긴 기차를 자주 타고 있다. 처음에는 무작정 대륙을 횡단하고자 이용했었다. 그리고 계절에 따라 옷을 갈아입는 시베리아 풍경이 궁금해 기차표를 끊었다. 기차여행을 하면서 러시아어가 이리 유용할 줄 몰랐다. 언어 덕분에 기차 안에서 사람들과 어울림이 즐거웠다. 제한된 공간에서 나의 얘기를 하고 남의 얘기를 들어주는 일은 국경을 넘어 사람이라서 즐거운 일이었다. 그렇게 기차 탑승 횟수가 점점 늘어갔다.

 

우리가 알고 있는 시베리아 횡단열차(Trans Siberia Railway)는 일주일을 달려 러시아의 수도 모스크바에서 연해주 블라디보스토크에 닿는다. 객실은 1·2·3등칸으로 나뉘는데 재미난 일은 대부분 삼등칸에서 일어났다. 지금은 법적으로 객실에서 술을 마실 수 없다.

 

 

 

 

예전에는 술이 있어 더 가까워지기도 했고 도중에 기차에서 내려 그들 집에 함께 가기도 했다. 지금은 술이 아니어도 대화를 나누긴 하지만 스마트폰의 등장으로 점점 대화도 줄어드는 듯하다.

 

 

 

 

 

한국에서는 서울에서 부산까지 KTX를 타면 세 시간 정도가 걸리는데 그 거리도 멀다고 말한다. 러시아에서는 부모님을 만나거나 오랜만에 친구를 만나러 가는 길도 3일을 마다하지 않는다. 요즘은 저비용 항공사가 생겨서 기차 요금만큼이나 저렴한 비행기로 이동이 가능해졌음에도 많은 러시아 사람들은 기차를 이용한다. 해를 거듭할수록 승객 구성이 외국인 여행자나 중앙아시아 노동자 그리고 북한 사람들이 점점 많아지고 있지만, 러시아 사람들에게도 여전히 시베리아 횡단열차는 인기 있는 교통수단이다.

 

 

삼등칸 사람들은 모두가 한 편의 다큐멘터리 소재를 담고 있다. 식사시간을 제외하면 책을 읽거나 오락을 하거나 잠을 잔다. 슬쩍 어디를 가는지, 누구를 만나러 가느냐고 질문을 던지면 기찻길 닮은 긴 이야기가 마구 쏟아진다. 맞은편 자리에 할머니는 남편과 사별하고 자식들이 있는 도시로 이사하는 길이라고 했다. 보드카에 취해 살던 남편이 미웠고 이제 남은 인생은 꽃길을 걷고 싶다며 책 사이에서 리즈 시절 사진을 꺼내셨다. 사진을 보면 기분이 좋아진다고 했다.

 

지인의 소개로 먼 거리 연애를 하던 여자는 처음 남자를 보러 가는 길이라고 했다. 수개월 온라인 연애 끝에 그가 사는 도시에 도착했다. 기차에서 내린 그녀가 손을 흔드는 곳에는 휠체어에 앉은 남자가 있었다. 가슴이 덜컹 내려앉았다.

 

한국에만 일하러 오는 줄 알았던 중앙아시아 노동자들. 하바롭스크나 블라디보스토크 건설현장에서도 중요한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 다만 악덕업자들이 임금체불을 밥 먹듯이 하는 바람에 빈털터리로 고향에 돌아가는 사람들이 많았다. 고향에서는 10만 원 정도의 월급을 받는다면 러시아에서는 40만 원 이상은 보장이 된다고 하니 많은 젊은이가 길 위에 시간을 두려워하지 않고 먼 길을 오고 있다.

 

 

가장 잊을 수 없었던 승객은 모스크바 건설현장으로 가는 북한사람들이었다. 몇 날 며칠 말을 섞지 않을 수 없을 만큼 가까운 곳에 있었던 그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음식을 나누었다. 중간에 우리가 먼저 내렸을 때 좁은 창틈으로 그들은 ‘다시 만나요’를 불러주었다. 땅거미가 내린 시간이라 자세히 볼 수 없었지만, 서로의 뺨에는 눈물이 주르륵 흘러내렸다.

 

마냥 기차가 좋아서 타기 시작한 시베리아 횡단열차. 어쩌다 보니 그곳에서 나는 단순한 기차여행보다 더 큰 여행을 했던 것 같다. 그들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사진을 찍어주고 그들이 잘 되길 빌어주었다. 다소 차가워 보이는 러시아 사람들도 대화를 하다 보니 가슴 속에는 후끈한 것 하나쯤 품고 사는 사람들이었다.

강석환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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