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화와 대화하는 아이들… “수업시간 기다려져요!”

2020.11.19 15:40:21

대통령상
박현아 경기 파주와동초 병설유치원 교사
‘친.구.YA. 하브루타 명화놀이로 행복하자’

 

올해 전국현장교육연구 발표대회의 대통령상은 박현아 경기 파주와동초 병설유치원 교사가 차지했다. 박 교사가 출품한 ‘친.구.YA. 하브루타 명화놀이로 행복하자’는 명화감상에 하브루타를 접목한 프로그램이다. 하브루타는 유대인들이 탈무드를 공부하는 방법의 하나를 가리킨다. ‘짝을 지어 질문하고 대화하며 논쟁하는 것’을 말한다. 
 

박 교사는 2016년부터 유치원 특색활동으로 명화감상 프로그램을 진행했다. 명화를 보여주고 후속 활동으로 마무리하는 방식이었다. 하지만 놀이 중심으로 교육과정이 바뀌면서 명화감상 프로그램에도 변화를 주고 싶었다. 그때 하브루타를 접했다. 박 교사는 “문해력이 부족한 유아기 아이들에게 명화는 다양한 이야기와 가치를 시각적으로 전달한다”면서 “정답이 없는 명화와 하브루타를 결합해 생각하는 힘을 길러주고 싶었다”고 설명했다. 
 

“아이들은 그림 자체를 좋아해요. 그림을 보고 상상력을 발휘해 그 속에 숨겨진 이야기를 찾아 나가더라고요. 아이마다 경험치가 달라서 각기 다른 이야기를 풀어내는 모습이 흥미로웠어요. 하브루타는 주로 초등학교 독서 교육에 적용해요. 하지만 유치원생들은 독서로 연계하기에 어려움이 있었죠. 그러다 명화가 떠올랐어요. 글도 없고 정답도 없고, 직관적으로 판단할 수 있으니까요.”
 

수업은 세 단계로 진행했다. 하브루타에 익숙하지 않은 유아들을 위해 대집단(전체)-소집단(모둠)-일대일(짝꿍)로 단계를 나눴다. 대집단 단계에서는 질문과 대답하기를 어려워하는 유아도 친구들과 교사가 이야기 나누는 모습을 보고 자신의 생각을 정리할 수 있게 격려했다. 소집단 단계에선 모둠을 구성해 각자 질문을 만들게 하고, 대표 질문을 선정해 깊이 있게 생각하는 방법과 친구가 만든 질문에 모두 답해보는 방법으로 활동했다. 이 과정을 통해 질문과 답하기에 익숙해진 후 일대일 하브루타를 진행했다. 
 

박 교사는 에곤 실레의 작품 ‘가을나무’로 했던 수업이 기억에 남는다고 했다. 명화 ‘가을나무’는 야트막한 언덕에 가지가 앙상한 나무 세 그루가 지지대에 기대 서 있는 모습이 인상적이다. 그는 먼저 ‘얘들아, 아침에 선생님이 유치원에 오는데, 나무가 너무 예뻐서 나뭇잎을 주워왔어. 이런 예쁜 나뭇잎이 떨어질 것만 같은 그림을 함께 감상해볼까’라며 흥미를 불러일으켰다. 박 교사는 “무엇이 보이는지 물었는데, 파생되는 생각이 무척 재미있었다”면서 “숨은 이야기 찾기가 수업의 묘미”라고 귀띔했다. 
 

“아이들은 나무 옆에 있던 기둥을 궁금해했어요. 기둥의 색깔이 왜 다른지도요. 한 친구는 ‘전쟁이 나서 나무가 잘린 거야. 잘려서 새로 심었는데, 잘 자라라고 기둥을 같이 심어준 거 같다’고 말했습니다. 왜 가운데 기둥만 푸른 빛인지에 대해서도 ‘대나무로 기둥을 만들어서 그렇다’고 설명했어요. 나무 뒤 선을 보고서도 ‘종이가 오래돼서 그렇다’ ‘멀리에 바다가 있는 걸 그린 거다’ 하면서 생각을 표현했죠. 하브루타 후에는 공원으로 나가 나뭇잎을 활용한 놀이로 활동을 이어갔습니다.”
 

수업 효과는 가정에서 먼저 알아챘다. 큰 기대 없이 병설 유치원에 보냈다던 학부모들은 명화에 대한 생각을 술술 이야기하는 자녀의 모습에 깜짝 놀랐다. 이중섭의 그림 ‘아이들과 끈’을 보고 “화가가 가족이 너무 보고 싶은 마음에 그린 그림”이라며 “나는 엄마랑 같이 살아서 너무 행복하다”는 말을 건넸다는 이야기도 전해 들었다. 박 교사는 “한글을 알고 글씨를 잘 쓰게 된 건 아니지만, 아이들의 마음이 성장한 느낌이 들어서 뿌듯했다”고 했다. 
 

“‘명화를 잘 모르는데, 어떻게 수업을 하지?’ 생각할 수도 있어요. 하지만 하브루타 수업은 정답이 없어요. 잘 알지 못하기 때문에 아이들의 의견을 전적으로 수용할 수 있는 장점도 있고요. 일단 시작하면, 명화에 대한 지식이 중요하지 않다는 걸 느낄 겁니다. 아이들과 함께 저도 성장한 느낌이에요. 이 모든 과정이 행복했습니다. 올해는 6세 반을 맡아 수업하고 있어요. 낮은 연령에도 적용 가능하게 프로그램을 수정, 보완할 계획이에요.” 

김명교 기자 kmg8585@kfta.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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