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하다 방탄소년단

2020.12.17 15:17:50

고교 교사일 때는 아이돌이나 걸그룹의 댄스 음악 히트곡들을 곧잘 들었다. ‘SBS인기가요’나 MBC ‘쇼! 음악중심’ 등 10대 청소년들이 즐기는 TV프로들을 애써 챙겨보곤 했는데, 좋아해서라기보다는 학생들과의 소통을 염두에 둔 이유가 더 크다. 나는 내 차로 백일장이나 취재차 가는 현장 르포때 아이돌이나 걸그룹 노래가 녹음된 CD를 학생들 들으라고 틀어주곤 했다.

 

운전하면서 막내딸이 녹음해준 댄스음악 CD를 틀면 제자들은 기함할 정도였다. 가령 티아라의 ‘롤리 폴리’와 ‘크라이 크라이’, 시크릿의 ‘사랑은 Move’ 등이 이어지는 걸 들은 어느 제자는 “어머, 선생님 신세대시네요. 와! 짝짝짝-” 박수까지 쳐대며 신기해 했다. 또 어느 제자는 “헐, 선생님 짱이신대요!” 엄지 척을 해보이며 날 추켜 세웠다.

 

나는 괜히 우쭐해지곤 했는데, 내가 사제동행으로 백일장이며 현장 취재를 풀방구리에 쥐 드나들 듯 다녔던 이유중 하나라 해도 무방하다. 내가 막내딸을 시켜 녹음한 CD에는 2013년 데뷔한 방탄소년단 노래들도 여러 곡 들어 있다. ‘불타오르네’ㆍ‘Run’ㆍ‘쩔어’ㆍ‘Danger’ㆍ‘상남자’ㆍ‘진격의 방탄’ 등인데, 이때까지만 해도 방탄소년단은 그냥 일개 아이돌 그룹일 뿐이었다.

 

퇴직과 함께 아이돌이나 걸그룹의 댄스 음악 녹음 및 보기가 시들해졌음은 물론이다. 그러는 사이 ‘지금까지 이런 그룹은 없었다’는 제목의 기사를 접하게 되었다. 바로 방탄소년단 이야기다. 방탄소년단이 신곡 ‘라이프 고즈 온’으로 또다시 미국 빌보드 싱글차트 1위에 올랐다는 내용이다. ‘또다시’란 수식어 사용은 이전에도 빌보드 싱글차트 1위에 오른 적이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 방탄소년단은 9월 5일자 빌보드 ‘핫100’ 차트에서 디지털 싱글 ‘Dynamite’로 처음 1위를 거머쥐었다. ‘다이나마이트’는 2주 연속 1위를 차지하며 ‘한국 가수 최초’라는 새로운 역사를 썼다. 이어 방탄소년단은 피처링에 참여한 ‘Savage Love’ 리믹스 버전으로 10월 17일자 ‘핫100’ 차트 1위를 또 차지했다.

 

그런데 ‘라이프 고즈 온’의 빌보드 싱글차트 1위는 이전에 이룬 것과 의미가 남다르다. 11월 20일 발표한 새 앨범 ‘비(BE)’의 타이틀곡으로 후렴을 뺀 대부분의 노랫말이 한국어로 된 ‘라이프 고즈 온’이어서다. 미국에서 가장 인기 있는 노래를 보여주는 ‘핫100’ 차트에서 한국어 가사의 곡이 1위를 차지한 것은 빌보드 차트 62년 역사상 처음이라고 한다.

 

앞서 한국어 노래가 이룬 최고 기록은 싸이의 ‘강남스타일’이다. 이 곡은 2012년 7주 연속 ‘핫100’ 2위에 올랐다. 그런 덕분인지 애나 어른 할 것 없이 ‘강남스타일’에 열광했던 그 시절 이런저런 모습들이 선명하게 떠오른다. 아무튼 ‘라이프 고즈 온’에 대해 “언어의 장벽도 방탄소년단의 인기를 막지는 못했다”는 평가가 나오는 것은 그래서다.

 

한겨레(2020.12.12.)에 따르면 방탄소년단은 새 앨범과 수록곡으로 각각 빌보드 양대 메인 차트를 동시에 석권하는 진기록도 세웠다. ‘라이프 고즈 온’이 타이틀곡으로 담긴 ‘비(BE)’는 앨범 차트인 ‘빌보드200’에 데뷔와 동시 1위곡이 되었다. 지금까지 ‘핫100’과 ‘빌보드200’에서 진입과 동시에 모두 1위를 한 가수는 미국 팝스타 테일러 스위프트와 방탄소년단뿐이다.

 

김영대 대중음악평론가는 “‘다이너마이트’로 핫100 1위에 올랐을 땐 영어로 된 노래 힘이 컸다는 등의 분석이 있었지만, 지금 상황을 보면 방탄소년단은 언어나 노래 장르, 스타일을 떠나 그들의 이름만으로 ‘넘버원’에 오를 정도로 절대적이고 독보적인 힘을 갖고 있다”며 “미국 팝 역사상 외국 그룹 가운데 이런 그룹은 없었다”(한겨레, 2020.12.2.)고 말했다.

 

김경욱 기자는 “‘다이너마이트’가 밝고 경쾌한 톤의 ‘힐링송’이라면, ‘라이프 고즈 온’은 서정적인 분위기로 ‘그럼에도 삶은 계속된다’는 메시지를 전”하는 곡이라며 방탄소년단의 진짜 성공 비결로 “독보적 음악과 퍼포먼스, 팬덤 ‘아미’의 힘 등 다양한 요인이 있겠지만, 세상에 전한 ‘위로’와 ‘희망’을 꼽고 싶”(한겨레,20201.12)다고 말하기도 한다.

 

아무튼 미국 나아가 세계 가요계를 정복했다는 점에서 방탄소년단은 봉준호 감독이 ‘기생충’으로 일군 것과 같은 세계 제패의 자랑스러운 대한민국 청년들이다. 얼마나 대단하면 병역법 개정이 이루어지고 그들의 왕성한 활동 시한을 만 30세까지로 늘려 주었을까. 개인적으론 이제 더 이상 제자들에게 녹음 CD를 틀어줄 수 없음이 쓸쓸하지만, 장하다 방탄소년단.

장세진 전 교사, 문학⋅방송⋅영화평론가 yeon590@dreamwiz.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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