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더가 되고 싶었지만 되지 못한 사람의 자화상

2021.05.06 10:30:00

서울 시장 보궐 선거가 끝났다. 선거 다음 날, 언론은 선거 결과에 대한 분석 기사를 쏟아냈다. 20·30대의 표심이 1년 전 총선 때와는 확연히 다른 결과를 만들어 냈다고 한다. 그들은 무엇을 기준으로 사람을 뽑는 걸까. 시장 선거이니 공약도 보고 정당도 보았을 테다. 그리고 아마도 많은 사람이 이 점에 주목하지 않았을까 한다. 이 후보의 말이 거짓말이냐 아니냐, 저 후보가 하는 말의 끝에는 민주주의가 있느냐 전체주의가 있느냐. 사람보다도 정당이 더 컸던 선거였다.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은 언제 피나

과거에는 지금보다도 더 폭력과 권력이 친했다. 나라 안에서도 그랬고 교실 안에서도 그랬다. 오래된 문학작품이나 드라마를 보면, 그 안에 있는 선생님들은 대개 폭력을 권력처럼 휘두르는 학생을 알아보지 못했다. 이문열의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에는 이름처럼 단단하고 매서워 보이는 엄석대가 나온다.

 

30대 이상(소설은 1987년, 영화는 1992년에 나왔으니 엄석대를 안다면 그것도 중반 이상일 것이다)의 사람들은 급우들 위에 군림하다 몰락하는 엄석대의 모습에서 리더의 자질을 배웠다. 그러나 그 배움은 모델링의 배움이라기보다는 타산지석형 배움이었다. “저러면 안 되는구나.” 무자비하게 폭력형 권력을 휘두르는 리더는 존속하지 못한다고 배웠다. 하지만 그러면 어떻게 해야 좋은 리더인지까지는 배우지 못했다. 석대에게 대항하다 결국 석대의 권력 아래 충복이 되어버렸던 병태처럼, 범인(凡人)들 자신도 끝내 리더는 되지 못했다.

 

20·30대가 학교를 다닌 시절에는 전교 임원·학급 임원도 스펙의 하나였다. 스펙 한 줄의 가치는 알지만 리더십을 모르는 리더들이 대학에 갔다. 그들도, 그들을 뽑았던 학생들도 모두 취업을 위한 리더십을 계발했다. ‘어린 어른’이 된 사람들에게 리더십이 필요한 이유는 군계일학이 되어야 함, 그뿐이었다. ‘풍요롭고 행복한 공동체’ 같은 이상향은 자신이 태어나기 30·40년 전에 있었다는 새마을운동 같은 이야기가 되어버렸다. 소설에서 상처 입고 사라진 ‘일그러진 영웅’은 현실에서도 다시 핀 적이 없다.

 

리더의 조건

리더십에는 두 종류가 있다. 타인을 이끄는 리더십과 자신을 자신이 원하는 방향으로 만들어나갈 수 있는 리더십이다. 리더십이 있는가를 물을 때는 이 두 가지를 구별하여 생각해 보아야 한다. 한 학생이 전교 임원 선거에 나간다고 하자. 그때 이 학생이 보여주어야 하는 리더십은 전자이기는 하지만 리더로 지내는 과정에서 부딪힐 수많은 난관과 스트레스를 극복하는 것은 후자의 리더십이다. 오히려 후자에서 전자가 나온다. 자신의 마음을 관리할 수 있는 성찰 능력과 인내 등 내면의 힘이 결국 타인의 마음을 살피며 설득하고 통합시키는 외면의 힘이 된다. 즉, 타인과 자신을 모두 잘 이끌 수 있는 사람이 좋은 리더이다.

 

안타깝게도 지금 2030세대는 타인을 이끄는 리더로 본보기를 삼을 만한 사람이 거의 없었다. 현실에는 위인전에서 볼 법한 사람은 많지 않았다. 그들이 아는 영웅, 자신을 성공적으로 이끈 리더는 김연아 선수나 초·중학교 시절 열광했던 히딩크 감독 정도이다. 학교에서는 리더십 교육이라는 것을 한 지 얼마 되지 않았다.

 

내가 모델을 보지 못했고 리더가 무엇인지 몰랐으며 되어본 적이 없는데 미래세대에게 어떻게 리더가 되는 방법을 가르치는가? 때가 되면 나라에서 선거를 치르고, 신학기가 되면 임원선거를 하지만 어른이 리더십을 모르고 자랐다는 사실은 생각보다 심각한 문제다.

 

최근에 터져 나온 학교폭력 미투는 이런 고질적인 리더십 부재와 무지에 뿌리가 있다. 대부분의 학교폭력 가해자들은 폭력으로 산 권력을 다른 사람에게 휘둘렀다. 또 자신을 사랑하고 스스로 바른길로 이끄는 방법을 몰랐다. 리더십에 무지한 사회에는 자질 없는 리더가 태어나기 마련이다. 자격 없는 사람이 권력을 잘못된 방법으로 잡아 리더행세를 하고, 주변 사람들은 그 모습을 방조하기 때문이다.

 

늑대에게 배우는 리더십

EBS 지식채널e 영상 중 ‘늑대들의 합창’이라는 영상이 있다. 늑대의 지능은 매우 높고 생존을 위해 공동체생활을 한다. 영상 속에서 늑대들은 실제로 합창을 한다. 먹잇감이 부족한 겨울, 무리를 대표해 홀로 사냥감을 물색하러 나갔던 리더 늑대가 끝내 사냥감을 찾지 못했을 때 걱정과 슬픔을 담아 선창을 한다. 그러면 다른 늑대들이 격려와 위로의 의미를 담아 단체로 울음소리를 내며 응답하는 것이다. 굶은 채로 홀로 3·4일을 정탐하고 온 우두머리의 아픔을 다른 늑대들은 이해한다. 우두머리는 공동체를 걱정하고 슬퍼한다.

 

흔히들 동물의 세계에서는 가장 힘이 센 자가 리더가 된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늑대사회에서는 난폭하고 싸움에 능한 늑대는 우두머리가 될 수 없다. 다른 늑대들이 공포를 느껴 무리를 떠날 경우 공동체가 무너지고 생존이 위협받기 때문이다. 모두의 동의를 얻어 우두머리가 된 늑대는 무리에서 싸움이 일어나도 힘으로 제압하지 않는다. 싸우고 있는 늑대 중 힘이 센 늑대에게 장난을 걸어 공격성을 줄이는 지혜를 보인다. 마치 사람이 유머로 위기를 넘기는 것과 같다.

 

진지한 리더십에 부족한 것

창의력 교육의 세계적인 권위자인 김경희 교수(윌리엄메리대학교)는 저서 <틀 밖에서 놀게 하라>에서 지도자가 될 아이들의 필수요건으로 유머 감각을 꼽았다. 유머러스한 태도를 가진 아이는 누군가의 비난을 들었을 때 웃어넘길 수 있는 내면의 힘이 있다. 어려운 상황에서 그 어려움에 집착하지 않고 넓고 편안하게 바라보는 마음역량을 발휘하여 고정관념을 극복한 다양한 해결책을 생각해낼 수 있다.

 

책에서 김경희 교수는 유머러스한 태도를 어릴 때부터 길러주기 위해서는 아이가 많이 웃게 하고, 아이가 다른 사람을 웃기게 하는 여유를 주어야 한다는 팁도 준다. 다른 사람의 농담이나 비난에 화를 내거나 공격적으로 대꾸하는 대신, 웃음으로 받아치는 연습을 하게 해야 한다는데 그러기엔 우리 문화의 어른들은 꽤, 많이, 늘 진지하다. 예의와 체면을 강조하는 문화도 유머와 관대한 리더십이 발휘되기 어려운 환경이다.

 

어떤 상황에서든 의연함과 긍정적인 웃음, 유연함을 유지하게 하는 유머를 나도 갖고 싶다. 그런 염원을 마음에 간직하며 고개를 들어 세상을 본다. 네거티브 공격으로 점철된 선거판과 친구가 임원인 자신에게 ‘대들었다’고 표현하는 어린 학생이 보인다. 누구에게도 잘못은 없다. 다만 진짜 리더는 어때야 하는지, 모두가 제대로 배우지 못했을 뿐이다.

송은주 서울언주초등학교 교사/교육칼럼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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