낯선 골목길에 끌리는 이유

2021.05.06 10:30:00

 

골목길 사진 한 장에 끌려 페스에 가고 싶어졌다. 사람이 살 것 같지 않은 낡고 오래된 풍경. 사람이 산다면 어떤 사람들이 살고 있을지 걸어보며 만나고 싶었다. 카사블랑카에서 버스를 타고 페스에 도착했다. 숙소로 가려면 캐리어를 끌고 시장을 지나쳐야 했다. 길은 울퉁불퉁했고 음식물 쓰레기를 피하다 물웅덩이를 지나기도 했다. 첫인상이 썩 좋지는 않다.

 

숙소에 도착했는데 입구가 보이지 않는다. 똑 부러지게 생긴 남자에게 숙소 이름을 보여주니 반대편 좁은 길로 나를 안내했다. 이미 등엔 땀이 흥건했다. 좁은 골목을 지나 좁은 문을 통과하니 넓고 높은 공간이 나타났다. 어둡고 좁은 골목과 사뭇 다른 풍경에 입이 다물어지지 않았다. 럭셔리한 소파에 앉아 직원이 준비해준 민트 차를 마셨다. 방에 짐을 두려고 올라가 보니 골목 넓이보다 더 큰 가구들이 방을 채웠다. 좁디좁은 페스 골목길에 어떤 풍경이 펼쳐질지 마음이 급해졌다.

 

페스 골목은 좁고 벽이 높아서 스마트폰의 지도 어플이 제대로 작동 하지 않았다. 오히려 오작동으로 발품을 더 팔게 될까 싶어 안 보기로 했다. 터미널에서 걸어온 길은 외곽으로 나가는 길이라 반대편으로 걸었다. 다양한 냄새가 다가왔고 다양한 상점들을 지나쳤다. 아무 생각 없이 계속 걸었다. 골목에 익숙해지는 시간이 필요했다. 방향을 잃지 않으려고 직진을 했는데 양옆으로 매력적인 길들이 마구 유혹해왔다. 잠깐 시선을 던지고 고개를 돌렸다. ‘지금 유혹에 빠지면 나는 영영 길을 잃을지도 몰라.’

 

가장 번화한 길을 따라 계속 걸어 내려오니 광장이 나왔다. 좁은 골목과 대조적인 아주 넓은 광장이었다. 좁은 길뿐인 마을에서 광장은 주민들에게 많은 것을 할 수 있는 기회의 공간이었다. 아이들은 공놀이를 하고 바퀴 달린 것을 타느라 정신이 없었다. 길거리 공연을 하는 사람들, 약 파는 사람들 주변으로 구경꾼들이 둥글게 모여 있었다. 도시에서 자주 들었던 소음도 광장 주변에 얼씬거리고 있었다. 광장에서 지도 앱을 열었다. 미로 같은 지도를 확대해서 보고 돌려 보고 숙소까지 가는 길을 머릿속에 그려 넣었다. 그리고 다시 골목으로 걸어 들어갔다.

 

숙소로 가는 길은 오르막길이다. 내려올 때 봐두었던 샛길로 들어섰다. 발은 땅을 밟고 있고 손은 벽에 닿았다. 마주 오는 사람이 보였다. 걸음을 늦추고 눈인사를 나누고 몸을 옆으로 틀었다. 간혹 내 팔을 툭툭 치며 지나가는 어르신도 있었다. 좁은 길도 있지만, 몸을 낮추거나 고개를 숙이고 걸어야 하는 길도 나왔다. 매일 이런 길을 걷는 주민들은 다소 피곤하겠지만 여행자에게 한 번 걷는 일은 유쾌했다. 어쩌다 페스에는 이런 길이 생기게 되었을까? 질문을 던지며 걷다 보니 땀이 별로 나지 않는 걸 알아차렸다. 골목 바깥은 영상 35도를 넘는 무더위인데 좁고 빽빽한 골목은 햇볕이 드는 걸 막았다. 심지어 인공위성에서 쏘는 신호마저 막아버린 골목이다.

 

걷는 일이야 어깨를 좁히고 머리를 숙이면 되지만 이곳 사람들은 이사를 어떻게 하는지 궁금해졌다. 보려고 애쓰지 않아도 창 너머로 집 안쪽이 보였다. 햇살도 닿지 않은 방안에 보이는 거라곤 암흑뿐이었다. 제법 커다란 가구가 보였는데 모조리 해체하지 않았을까. 이사하는 일이야 서두르지 않아도 될 일이지만, 만약에 이곳에 불이라도 나면 이 깊은 골목길에서의 탈출이 쉬워 보이지 않았다.

 

무더위와 적을 피하기는 좋겠지만 정작 삶과 연결시켜 보면 많이 불편해 보이는 페스의 골목. 그동안 걸었던 다른 나라들 골목하고 비교가 되지 않을 만큼 특이했다. 개인적으로 살짝 경사진 굽은 길을 좋아하는데 페스에 그런 길이 곳곳에 있었다.

 

 

페스에는 올드타운이 있고 그 안에는 다양한 시장들이 무리를 이루고 있다. 페스에만 있는 무두질 골목은 악취가 나기로 유명하다. 페스 아랫마을에 있는 무두질 골목을 향했다. 도시 가장 낮은 곳에 가죽 손질하는 공방들이 자리했다. 도시 지도를 펼쳤을 때 무두질 하는 곳 아래로는 집이 없어 보였다. 가죽 썩는 냄새가 솔솔 나는 것으로 보아 근방에 왔나 보다. 향수의 향기라고 우스갯소리로 말하는 그 냄새가 코를 찌른다. 지도를 보지 않고 냄새를 따라가니 가죽 공방이 나타났다. 상점 주인은 모로코 민트 잎을 건네며 콧구멍을 막으라고 했다. 옥상을 보고 내려오면서 제품 구매를 하라는 친절한 설명이 이어졌다.

 

옥상에 올랐다. 빽빽한 골목과 달리 무두질하는 공간은 꽤 넓었다. 둥그런 욕조가 바둑판처럼 다닥다닥 붙어 있고 앙상한 체구의 남자들이 가죽 덩어리와 씨름 중이었다. 본인 몸보다 무거워 보이는 가죽 덩어리를 연신 데치고 씻어내고 물들이고 있었다. 콧구멍에 꽂아 둔 민트 잎이 우스워 잠시 뺐다. 갑자기 코 안으로 훅 들어오는 가죽 썩는 냄새는 세상 어느 악취와도 비교가 되지 않았다. 아무런 보호 장비 없이 일하는 작업자 심정은 어떨까. 냄새에 괴로워하는 내 표정을 혹여나 그들이 볼까 얼른 옥상에서 내려왔다. 그들의 근무 환경을 보고 내려오니 가죽 상점을 그냥 지나칠 수가 없었다. 다른 상점보다 비싸다는 걸 알았지만 가죽 실내화를 두 켤레 구입했다.

 

입소문에 이끌려 이리저리 다녔다. 숙소 주인은 올드타운 안에 있는 가장 큰 모스크에 가봤냐고 물었다. 대답도 하기 전에 그는 그곳에 꼭 가봐야 한다며 지도를 펼쳤다. 이름만 적어 들고 모스크에 간다고 나와서 정처 없이 걸었다. 보이지 않는 실타래가 풀리면서 나를 숙소와 이어주었다. 맘 편하게 반대편 마을까지 걸었다. 여행자보다 마을주민이 대부분이었다. 간혹 주민들이 다가와 길을 잃었냐고 묻기도 했고, 숙소 주인이 말하던 그 모스크를 찾는지 묻기도 했다. 관광객이 없는 지역이라 그런 반응이 재미있었다.

 

다리가 막 아파올 즈음, 불이 환하게 켜진 이발소가 눈에 들어왔다. 안을 슬쩍 들여다보니 사진 소재가 될 만한 공간은 아니었다. 순간 눈이 마주친 청년 하나가 상점 문을 열고 내 팔을 잡았다. 외국인이 왔다고 소문이라도 났는지 좁은 이발소는 청년들로 꽉 찼다. 청년들은 일자리가 없어서 걱정이고, 그나마 이발소 하는 청년 사장도 벌이가 변변치 않은지 이발소 문을 닫을 생각이라고 했다. 한국도 청년들이 취업에, 결혼에 힘들어하는데 지구 반대편 모로코 페스 청년들하고 고민거리가 이렇게 비슷할까. 이발소를 나와 터벅터벅 걸어가는데 모로코 청년들의 미래와 불혹 넘긴 여행자의 미래가 어쩌면 닮은 것도 같았다.

 

숙소로 가는 길목에 사우나가 눈에 들어왔다. 이곳이 초행길인 여행자라면 그냥 지나쳤을 성의 없는 간판이었다. 숙소에 가서 샤워해도 되지만 페스 함맘(목욕탕)에서는 어떤 인연과 어떤 이야기를 나눌지. 함맘 문턱을 넘었다. 자욱한 안개가 얼굴을 감싼다. 모로코 사우나 사용 방법에 대해 간단한 소개를 받고 옷을 갈아입고 사우나 안으로 들어섰다. 김이 가득해 앞이 잘 보이지 않았다. 하얀색 천으로 하의를 만들어 다니는 사람들 사이에서 여행자는 존재감이 없었다. 현지인들 사이에 스며드는 기분이 좋았다.

 

 

사우나는 온도에 따라 방이 세 개 있었다. 중간 방 적당한 자리를 잡고 앉았다. 한국 목욕탕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플라스틱 의자가 없다. 돌바닥에 앉아 바가지에 따스한 물을 담아 정수리부터 부었다. 페스 골목에서 쌓인 먼지가 씻겨 내려갔다. 탕이 없어서 열기로 몸이 달구어졌다. 저온 방으로 옮겨 갔다. 김이 많이 빠져 있어 사람들 얼굴이 잘 보였다. 문득 눈이 마주친 남자가 인사를 건넸다. “알라이쿰 살람”이라고 대꾸를 하니 그가 “아랍어 할 줄 아세요?”라며 한국어로 물어왔다. “내가 한국인인 줄 어떻게 알았어요?” 머리스타일도 방금 이발하고 와서 모로코 스타일이고, 옷이라고는 천 하나 두르고 있는 게 전부인데 신기했다.

 

“저는 아시아 관광객을 상대로 일하고 있는 가이드입니다.” 그는 한국어 말고도 일본어를 잘했다. “아저씨는 왜 함맘에 왔어요? 오래되고 냄새나는 이런 곳에…. 이 함맘에 다닌 지 오래됐는데 외국인을 만나기는 당신이 처음입니다.” “여기 오면 모로코 사람들을 볼 수 있고 무슨 이야기가 오고 가지 않을까 싶어 왔어요. 누군가 만날 거라 예상했는데 당신을 만났네요.”

 

이제는 더 이상 볼 수 없는 그때의 사람들과 풍경들이 나의 시선으로 카메라에 남겨져 있는 것은 얼마나 다행인가. 그 잔상을 바라보다 그리움이 너무 커지는 날이면, 혹시 비슷한 모습을 다시 만날 수 있을까 하는 마음에 오늘도 짐을 꾸려 골목길을 걸어갈 준비를 하는 지도 모른다.

 

강석환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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