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민정 열린민주당 의원이 지난 8월, 초·중·고 학생회가 학교장과 ‘교섭·협의’할 수 있도록 하고, 학교장에게는 성실이행 의무를 지우는 내용의 초·중등교육법 개정안을 대표발의했다. 노동 법리를 그대로 차용해 학생과 학교장의 관계를 일반 노사관계로 설정한 것이다. 몰상식하고, 비교육적인 법안에 학교 현장이 분노한 것은 당연하다.
자주적인 학생자치활동을 폭넓게 보장하기 위해 학교구성원이 적극적인 소통과정을 거쳐야 한다는 것은 마땅하다. 때문에, 현행 법령과 학생규칙에서도 학생들의 적극적인 참여와 요구를 담도록 소상히 정하고 있다. 더 필요하다면 교육적 법리에 입각해 보완하면 된다. 그럼에도 사제(師弟) 관계를 노사관계로 규정하고, 교섭·협의 개념을 들이댄 것 자체가 몰(沒)법리한 것이자 이를 격하하려는 의도라고밖에 볼 수 없다.
세계 유례없는 몰상식·몰법리
‘교섭·협의’는 과거 교원의 노동3권이 불허된 시기에 노동법의 ‘교섭’에 상응하는 대상조치(代償措置)로 1991년 ‘교원지위향상을위한특별법’을 통해 전문직 교원단체에게 주어진 단체교섭 권한이다. 전교조 지부장 출신으로 이를 모를 리 없는 강 의원이 교섭·협의권을 학생에게 부여한 자체가 몰상식을 넘어 교원단체의 법적 권한을 의도적으로 격하하고 조롱하려는 저의가 있다고밖에 볼 수 없다.
그렇다면 심각한 입법권 남용이 아닐 수 없다. 법리적으로도 자가당착이다. 만 6세부터 17세에 이르는 초·중·고 학생들은 미성년으로 법적 권리능력을 제한받는다. 권리능력을 제한받는 학생들을 피고용자로 설정해 교원지위법상의 교섭·협의 권한을 부여하는 것 자체가 법리적 모순이기 때문이다.
또 국가 의무교육체계 속에서 마땅히 배움의 과정에 있는 학생들에게 교원과 동등한 협상 파트너로서의 지위를 설정하는 것 역시 지극히 비교육적이다. 존경과 사랑이라는 교육적 사제관계를 사용자-노동자라는 대립적 노사관계로 변질시킨 것이다.
더욱이 학생과 관련한 제반 규정과 내용은 가르치고 생활지도를 하는 교사와 친권자인 학부모 등 교육주체의 이해와 공감을 전제로 한 것이다. 단순히 학생이 학교장과 대립적 교섭·협의를 통해 결정할 사안도 결코 아니다. 한국교총이 최근 교원 1442명을 대상으로한 설문조사에서도 84%가 학생에게 교장과 교섭·협의권을 부여하는 것은 부적절하다고 답했다. 의무교육 제도를 택하고 있는 기본 교육질서에 반하고, 사제관계를 사용자-피고용자로 보는 것은 몰법리, 비교육적이라는 것이다.
입법권 남용 말아야
독립된 헌법기관인 국회의원으로서 법안을 제안할 때는 공교육 전반에 미칠 영향과 부작용을 고려해 사회적 합의와 공감을 이끌어낼 수 있는 내용을 담아야 한다. 더욱이, 국민을 대표하는 입법권자로서 치우친 개인적 신념을 법률로 강제하거나 제3자의 고유 권한을 침해하려 해서는 결코 안 된다.
때문에 본인의 교원노조 활동 경험에서 비롯된 편견으로 엄연한 전문직 교원단체의 오래된 교섭·협의권한을 비아냥하려는 듯한 법안을 내놓은 것은 입법권을 사유화하는 것이자 남용하는 것이다. 법률 용어 하나하나에도 신중에 신중을 기해야 하는 입법권자의 기본적인 책무를 망각하지 말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