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정’ 추구했지만 ‘혼란’만 남겼다

2021.12.06 10:30:00

 

2022년은 많은 변화가 예상되는 해다. 3월 대통령 선거와 6월 지방선거가 있는 전환기로, 교육 분야에 있어서도 큰 변화가 예측되고 있다. 위드 코로나와 함께 이전의 학교 모습을 찾아갈 것으로 기대하지만, 많은 전문가는 분명히 다른 형태로 뉴노멀의 시대를 맞이할 것이라는 전망을 내놓고 있다. 2022 개정교육과정과 고교학점제, 특목고 폐지 등 교육정책의 변화와 함께 새로운 시대적 가치가 요구되고 있다. 이러한 변화 과정에 맞춰 교원단체 및 전문가 집단에서는 학제 개편, 9월 학기제로의 전환, 입시 방식의 개선 등의 요구를 대선 공약에 요구하고 있다. 

 

어떤 정책이든 갑작스럽게 생겨나지는 않는다. 이전의 정책들이 갖고 있는 문제를 지적하고 좀 더 나은 방향으로 변화하기 위한 목적으로 제안된다. 미래를 이야기하기 위해서는 현재와 과거에 대한 반성과 부정에서 출발하는 것이다. 문재인 정부는 전 정권의 실정을 강하게 부정하면서 출발했다. 소수에게 독점되는 권력과 비리, 공정치 못함을 비난하며 반대의 가치를 기치로 내세웠다. 하지만 교육계의 반응은 싸늘하다. 현 정권과 같은 색채의 진보 성향을 갖고 있는 교육감의 강도 높은 비난의 인터뷰 내용을 보며 처음에는 의아하다는 생각을 했다. 어딘가 문제가 있다는 점은 분명해 보인다. 

 

정권이 마무리되는 시점에서 과연 이러한 가치들이 제대로 이루어졌는가에 대한 냉정한 점검이 필요하다. 교육정책의 공과를 따져보고 우리가 함께 지향해야 할 바에 대한 생각을 모아야 한다. 특히 중등교육에 있어서는 처음의 기대와 달리 이렇다 할 성과를 내지 못했고, 오히려 많은 혼란을 초래했다는 평이 지배적인 만큼 잘못된 지점들을 찾아보는 것은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다음에 언급할 정책들은 이미 이전 정권부터 추진해오고 있던 것들도 있지만 현장에서 어려움을 초래하고 있는 것들에 대해서는 현 정부의 책임이라는 점을 지적하고 싶다. 정책의 실행과 수정 및 보완이 이루어지지 못한 것 역시 실책이기 때문이다.

 

어설픈 합의 과정

여러 갈등이 있는 문제를 국민이 함께 머리를 맞대고 고민하고 대안을 찾겠다는 취지로 출발한 ‘국민참여 정책숙려제’는 문재인 정권 초기를 대표하는 상징적인 정책이었다. 국민과 소통하고 정책을 국민의 눈높이에서 수립하겠다는 목표로, 시민정책 참여단을 구성하여 각계 전문가들과 함께 2018년 여름부터 현안을 대상으로 정책숙려제를 시행하였다. 

 

교육부에서는 ‘학교생활기록부 기재에 관한 사항’을 첫 안건으로 정하고 숙의를 진행하였다. 필자는 최종 숙의 단계에서 전문가 자격으로 참여하여 교육부에서 설정한 최초의 방향에 대한 입장이 갖고 있는 문제를 지적하고 대안을 제시한 바 있다. 현장의 요구와 학교생활기록부가 갖고 있는 본질적 측면을 중심으로 참여단에 설명하였고, 최초안과는 다른 쪽으로 현실을 반영한 결정이 이루어졌다. 이러한 정책숙려제는 민주적이고 선진적인 소통의 방식으로 보일 수도 있지만 큰 문제가 있었다. 갈등이 있는 대상은 각각의 입장 차이가 존재하고 해당 주체들이 충분한 숙고와 논의를 진행해야 한다.

 

그러나 특정 단체나 모임에서 인원을 과도하게 편성하고, 나머지 일반 국민들의 경우 관심의 여부만 중심으로 추첨 선발하였고, 내용에 대한 이해를 하는 데만도 많은 시간이 소요되었다. 소수의 인원으로 전문성 없이 결정된 내용을 일반 국민들이 납득하고 수용할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지나친 욕심 아니었을까? 물론 온라인 공간을 열어 놓고 충분한 의견 수렴의 절차를 거쳤다고는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공감을 얻었다고 하기는 어렵다. 정보에 대한 접근성과 관심 여부에 따라 의사 표현이 제한적이고 이러한 결과가 전체의 의사라는 결론은 왜곡일 수 있다.  

 

이러한 문제는 입시제도 개편에 대한 정책숙려 단계에서 극명하게 나타났다. 입시 문제는 사회 체제가 바뀌지 않는 한 결국 누군가는 유리하고 다른 누군가는 불리해지는 구조이기 때문에 첨예할 수밖에 없다. 그런데 이러한 문제를 소수의 정책참여단에 맡긴다는 것은 무리수였다. 결국 입시 문제에 대한 정책숙려제는 모든 과정을 중단시키게 만들었다. 민감한 정책일수록 섬세하고 전문적으로 고민하고, 구체화되었어야 하는데 원탁에 몇몇이 모여 앉아 뜬구름 잡는 식의 이야기로 해결이 될 문제가 아니었다. 전문적이지 못하고 지극히 아마추어적인 모습으로 아쉬움만을 남겼다.

 

그런데 문제는 이러한 패턴을 개선하지 못하고 2022 개정교육과정의 추진에서 국민 의견을 수렴한다며 유사한 방식을 그대로 쓰고 있다는 점이다. 참여한 위원들의 폭을 넓혔다고는 하지만 여전히 편향되어 있고, 실제 숙의 과정에서 심도 있는 논의가 이루어지기보다는 자기 소개하기와 몇 마디 교육 현실에 대한 생각을 밝히는 데 머물렀고, 이렇게 만들어진 의견은 결국 ‘합의문’도 아닌 ‘제안’에 머무르고 말았다. 정책숙려제에서 목표로 했던 소통과 합의는 사라지고 혼란만 남았다. 

 

 ‘공정’에 대한 의문

앞선 내용에서도 잠시 언급했지만 입시 문제는 가장 첨예하고 풀기 어려운 문제다. 문재인 정부는 복잡한 전형의 문제를 지적하면서 학생들의 부담을 줄여주고, 누구에게나 공정함을 주겠다는 지향점을 교육정책의 핵심 가치로 두었다. 이러한 입장은 대입뿐 아니라 고입에도 반영되어 2025년 자사고와 특목고(영재고와 과학고 제외)를 일반고로 전환하겠다는 정책으로 구체화되었다. 학생의 선택권을 제한한다는 입장, 수월성 교육에 대한 기회 박탈 등의 수많은 이유로 강한 반발을 불러왔지만 이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특히 자사고는 폐지에 앞서 시도 교육감들이 재지정 취소라는 무리수를 두어 빈축을 사고 있다. 서울시의 경우 행정소송에서 모두 학교 측의 손을 들어주었음에도 소송을 진행하며 혈세를 낭비하고 있다. 멀쩡히 운영되고 있는 학교를 짓밟는 것을 넘어 위법까지 저지르고 있는 행태는 납득이 어렵다. 이런 것이 과연 공정함인지에 대해 의문을 가질 수밖에 없다. 자사고와 특목고에 들어가기 위해 많은 아이들이 너무 일찍부터 고통을 받고 있다면, 입학의 방법을 달리한다든지 제도를 개선하며 단계적으로 고쳐나가야 하는 것인데 이처럼 폭력적인 방법을 쓰는 것이 옳은가?

 

현 정부에 대한 가장 큰 실망은 고위 관료의 자녀가 대입과 그 이후 졸업의 과정에서 과도한 특혜를 받았다는 사건으로부터 시작되었다. 깨끗하고 공정한 이미지를 강조했던 인사이기에 실망은 더 클 수밖에 없었다. 수많은 것을 포기하며 살아가야 하는 젊은 세대들에게 공정의 가면을 쓰고 부정을 저지른, 그리고 잘못을 인정하고 처벌하기보다는 두둔하며 감싸고 정치적 쟁점으로 삼는 모습은 공분을 사기에 충분했다. 수시와 정시의 확대 사이에서 오락가락하는 동안 학부모와 학생들은 갈피를 잡기 어려웠다. 결국 입시에 대한 부담을 줄여주지는 못했고 상대적인 박탈감과 혼란만 주었다는 부정적 평가를 내릴 수밖에 없다.   

 

코로나 상황에 대한 효과적인 대응? 

문재인 정부의 정책은 코로나라는 엄청난 상황에 직면하며 제대로 펼칠 수 없었던 것이 사실이다. 지금도 학교는 살얼음판을 걷고 있는 심정이다. 위드 코로나로 일상으로의 회복이 이루어지고 있지만 학생들의 백신 접종이 저조하고, 밀집도가 높은 과밀 학교들이 많이 있는 상황에서 학교가 겪고 있는 어려움은 매우 크다. 코로나 초기에는 더 심각한 상황이었다. 열악한 상황 속에서도 온라인 수업으로의 안정적인 전환이 이루어질 수 있도록 현장에서 최선을 다했다. 방역과 안전, 기타 행정처리를 하는 과정에서 기초학력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동분서주했다. 학교에서의 확진은 최대한 억제되었고, 큰 불상사 없이 위드 코로나를 맞이하고 있다. 그런데 이러한 결과는 어디까지나 현장에서의 헌신적인 노력과 많은 불편을 감내한 가정에서의 적극적인 협조가 있었기 때문이다. 교육 당국이 자화자찬을 할 일은 아니라는 것이다. 

 

많은 언론에서 보도된 바와 같이 코로나로 인한 비대면 교육이 늘면서 학력격차가 발생했다. 교육부에서는 막대한 예산을 추경으로 편성하여 교육회복을 위해 집중적으로 재원을 투입하고 있다. 그러나 학력 격차의 요인을 코로나에서만 찾아서는 곤란하다. 2017년 이후 학력 격차는 지속적으로 커지고 있다. 코로나로 인한 변인만으로 접근하지 말고 다양한 차원에서 다가가야 한다. 학력 격차 문제 이외에도 심각한 문제들이 있다. 사회적 관계성, 영양 불균형, 신종 학교폭력 등에 대한 종합적이고 체계적인 연구와 대응이 필요하다. 현재 교육부와 유관 기관에서 준비를 하고 있지만 시급한 문제인 만큼 정부 차원에서 역량을 집중시켜야 한다. 

 

 

기존 정책의 발전? 퇴보?

정책은 정권에 따라 바뀌지만 아이들의 교육은 연속적으로 이어진다. 갑작스러운 변화는 혼란을 줄 수 있기 때문에 긴 시간을 두고 안정적으로 이어가고, 필요에 따라 문제점을 보완하고 발전시켜나가는 방향이 되어야 한다. 2015년부터 본격적으로 도입되기 시작한 중학교의 자유학기제는 현 정부 들어 두 개 학기 규모로 확대되었다. 그러나 자유학기가 이루어지고 있는 현장의 상황을 보면 잘 되고 있는 점보다는 그렇지 못한 부분들이 더 많다. 특히 학부모들 사이에서 자유학기에 대한 불만이 많으며, 지역 간의 사교육 격차가 발생하는 시점이 중학교 1학년 자유학기 때라는 지적은 간과하기 어려운 부분이다. 자유학기를 실행하는 학교 입장에서도 예산의 감소와 지역별 인프라의 차이로 어려움을 겪고 있다. 자유학기에 대한 전면 개편과 실제 유의미한 활동으로의 전환 등을 현 정부에서 추진하지 못했던 것도 아쉬운 점이다. 

 

고교 학점제 역시 마찬가지다. 고교 학점제의 아이디어는 이전 정권부터 논의되었다. 고교 학점제의 취지와 지향하는 바에는 동의하지만 현실적인 준비가 부족한 상태에서 학교 현장의 혼란은 너무도 크다. 입시 제도와 연동하여 순차적으로 적용한다고는 하지만 이렇게 무리해서 적용할 경우 많은 부작용이 생길 것이다. 냉정하게 판단하고 현명한 판단을 내려야 함에도 이러한 부분이 아쉽다. 교육은 정권의 변화에 따라 함부로 바뀌어서는 곤란하다. 임기 내에 치적을 남기려 하면 정책이 충분한 공감대 없이 적용되고 탈이 나게 마련이다.

 

문재인 정권의 교육정책은 ‘공정을 내세웠지만 공정치 못하게 혼란만 가중시켰다.’라는 부정적 평가를 내릴 수밖에 없다. 물론 코로나의 상황 속에서 예기치 못한 혼란과 걸림돌이 있었지만 기존 정권과 차별성을 강조하였고 분명 유리한 위치에 있었다. 과반 이상의 의석을 갖고 있는 국회, 대다수가 진보 성향인 교육감들이 있는 상황에서도 적극적인 교육 변화를 이끌지 못했다. 이렇게 큰 실망은 기대가 컸을 때 더한 것은 아닐까?  

박정현 한국교육정책연구소 부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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