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명연 한국교육환경보호원 원장은 교육부에서 입지전적 인물로 꼽힌다. 30년 이상을 ‘학교방역과 학생건강’을 책임지는 ‘보건직’에서 근무하면서, 홍역·사스·신종플루·메르스에 이어 코로나까지 감염병이 우리 사회를 덮칠 때마다 최일선에서 학생들을 지켜냈다. 특히 2020년 코로나 발병 이후, 하루 통화량이 150통에 이를 정도로 교육부에서 가장 중요한 존재이면서 가장 바쁜 사람이 됐다. KTX에서 소보로빵 두 개와 우유 한 팩으로 아침을 때우며, 200여 개의 코로나 학교방역 대책을 만들 냈던 조 원장은 지난해 12월 정년 1년을 남겨놓고 교육부를 떠났다. 교육환경평가와 급식, 학생건강정책의 싱크탱크 역할을 하는 한국교육환경보호원에서 제2의 인생을 시작하기 위해서였다. 누구에게든 큰소리 한번 낸 적 없는 부드러운 성품이지만, 자신의 책임을 피하지 않는 소신파로 유명한 조 원장은 코로나19 상황이 엄중한 시기에 후배들에게 일거리를 물려주고 나온 것 같아 미안하다는 말로 인터뷰를 시작했다.
33년 공직생활을 마치고 원장으로 취임했다. 소회가 남다를 것 같다.
누구나 그렇겠지만, 공직생활을 마감한다는 것은 공직자로서 갖고 있던 무거운 책임감을 내려놓는다는 홀가분함과 더 이상 정부정책에 직접 참여하지 못한다는 아쉬움이 교차하는 것 같다. 특히 코로나19 상황이 개선되기보다는 더 엄중한 시기에 후배들에게 물려주고 나온 것 같아서 미안한 마음이 더 크다.
한국교육환경보호원이 좀 생소하게 여겨진다. 뭘 하는 곳인지 간단히 설명해 달라.
한국교육환경보호원은 2018년 2월에 특별법인 「교육환경보호에 관한 법률」에 따라 설립된 특수법인기관이다. 현재 우리나라는 택지를 개발해서 학교용지를 선정하거나 이미 운영 중인 학교주변을 일정규모 이상 개발(건축포함)하고자 하는 자(사업자·정부기관 모두 해당)는 이 같은 시설이 학생들의 학습환경에 지장을 초래하는지 여부를 평가 받아야 한다. 이때 사업자가 제출하는 교육환경평가서를 관련 분야 전문가들이 검토해서 교육감이 승인 여부를 판단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전문기관이 ‘한국교육환경보호원’이다. 아울러 교육환경평가 외에도 학생들의 신체건강과 정신건강, 학교급식과 같은 학생들의 건강증진과 관련된 실태조사와 정책연구 등도 같이 실시하고 있다.
학교를 둘러싼 교육환경 역시 학생들의 건강과 안전을 위협하고 있다. 교육환경보호원의 역할이 매우 중요하다고 여겨지는데.
그렇다. 현재 세계적 추세는 교육환경을 물리적 환경은 물론 심리·사회적인 환경까지 포함해 관리하고 있다. 반면 우리는 아직 물리적 환경 위주로 관리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최근 들어서는 학교주변 건물들이 초고층화 되면서 일조권과 조망권에서 많은 다툼이 발생하고 있다. 따라서 우선은 물리적 환경이 개선될 수 있도록 노력하고, 나아가 정서·심리적 환경까지 고려한 학습환경 개선을 위해 전문적인 기관으로의 역할을 다 할 생각이다.
코로나 이후 학생들의 정신적·신체적 건강이 취약하다. 앞으로 어떤 대책이 필요하다고 보는가?
우리는 그 누구도, 평생 경험해 보지 못했던 감염병 시대를 살아가고 있다. 2020년 1월 시작된 코로나19 상황이 2년 넘게 장기화되면서 기본적인 모임이 제한되고, 항상 마스크를 착용하며 살고 있다. 학교도 예외가 아니라서 학생과 선생님, 학생과 학생들이 마스크로 얼굴을 가린 채 만나거나 화면에서 만나고 있다. 우리 원에서는 교육부와 함께 코로나19가 학생건강에 어떤 영향을 미치고 있는지 파악하는 ‘코로나19 학생건강 실태조사’를 실시하고 있다. 그 결과가 나오면 이를 토대로 코로나 이후 학생건강증진 방안을 마련할 계획이다. 이후 관련 정책에 활용할 수 있도록 교육부에 제안할 예정이다.
코로나19가 공직생활 중 가장 힘들었을 것 같은데, 지난 2년 어떻게 보냈나?
솔직히 어떻게 2년을 버텼는지 내가 생각해도 잘 모르겠다. 처음에는 사전정보가 전혀 없는 적(코로나19)과 싸우는 게 가장 힘들었고, 이후에는 국내의 발생상황과 국내외 확산추세 등에 따른 방역당국의 대응방침에 맞춰 학교방역 성공을 위해 대응하는 것이 힘들었다. 학교현장의 혼란과 부담을 최소화한다는 목표로 매일매일 고민하고, 뛰어다니며, 대응하다가 마지막 2년을 보내고 퇴임을 맞이한 것 같다.
가장 기억에 남았던 순간은 언제인가?
2020년 1월 20일, 국내에서 코로나19가 처음 발생했을 때만 해도 사스·신종플루·메르스처럼 5~6개월만 고생하면 되겠지 생각했다. 그런데 사상 초유의 사태로 개학이 연기된데 이어 온라인개학과 원격수업이 등장했고, 5월 20일이 되어서야 단계적 등교 개학을 한 것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 단계적 등교 개학이 시작되고 며칠이 지난 어느 날, 퇴근길에 개구리 우는 소리를 듣고서야 ‘벌써 여름이 됐나?’ 할 정도로 몸과 마음이 많이 지쳤던 시기였다. 2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상황이 호전되지 못할 줄은 상상조차 못했다.
홍역·신종플루·메르스에 이어 코로나까지 감염병에서 학생들을 보호하기 위해 애써 왔는데 각각의 감염병마다 대응하는데 특징이 있었을 것 같다.
2000년 초반, 소아·청소년 사이에서 크게 유행했던 홍역은 영·유아기 때 접종했던 백신 효능이 떨어지면서 국내에서 갑작스럽게 유행했던 감염병이었고, 추가예방접종이라는 해결방법이 있었다. 2009년 5월에 나타난 신종인플루엔자(H1N1)는 그동안 발생한 적 없는 인플루엔자였지만, 이미 구강으로 복용할 수 있는 치료제와 백신이 있는 상태였다. 그 당시 학교별 부분 휴업을 했던 이유는 백신이 국민들이 접종하기에 충분한 양이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최대한 확산을 막기 위해서는 백신을 대량생산·확보할 시간이 필요했고, 얼마 쯤 뒤 수능 감독관을 필두로 그해 겨울까지 모든 학생·교직원이 예방접종한 후 유행이 마무리되었다. 2015년 5월 국내에 들어온 메르스는 일부 의료기관 내에서만 감염되고 학교까지 확산되지는 않았다. 다만 메르스를 계기로 학교 감염병 대응체계가 어느 정도 준비되면서, 이번 코로나19를 초기에 대응하는데 많은 도움이 되었다.
코로나 대응에는 그동안 겪었던 감염병이 도움을 준 것 같다.
사실이다. 미세먼지로 사회적 관심과 우려가 커지면서 마스크 대량 생산 기틀이 마련됐다. 또 메르스 등은 학교방역체계를 만드는 데 결정적 기여를 했다. 지금 학교나 교육청이 사용하고 있는 매뉴얼도 다 그때 만들어진 것이다. 이번 코로나 대응도 잘 이겨내면 다음에 또 어떤 위기가 닥쳤을 때 도움을 줄 것으로 믿는다.
3월 본격적으로 새 학기가 시작되면 학교급식 방역이 가장 큰 문제로 다가온다. 보건분야 전문가로서 조언을 해 준다면.
오미크론 변이확산에 따른 학교방역전략을 어떻게 결정할 지에 따라 대응방안이 조금 다를 수 있다. 하지만 특별한 비책이 있는 것은 아니다. 학교급식은 현실적으로 할 수밖에 없다. 따라서 지금처럼 개인위생을 철저하게 준수하며 거리두기·칸막이 설치·지정좌석제 등과 함께 3월 초 좀 춥기는 해도 식사시간만큼은 창문을 상시 개방하는 방법 외에는 별다른 대안이 없다. 한 가지 제안하자면, 학기 초 학생들이 학교생활에 적응할 때까지 급식시간을 최소화할 수 있는 식단으로 구성하면 좋을 것 같다.
백신접종 이상반응 청소년들에게 치료비 지원을 한국교육환경보호원이 담당하고 있다. 백신접종 후 모든 이상반응에 치료비가 지원되는 것인가? 학생과 교사들이 꼭 알아둬야 할 내용이 있다면?
질병관리청에서는 당사자의 신청이 있는 경우 관련 전문위원회의 심사를 거쳐 제1호~제3호까지와 제4-1호까지는 보상을 하고, 제4-2호(백신보다는 다른 이유에 의한 가능성이 더 높은 경우)이거나 제5호와 같이 ‘명확히 인과성이 없는 경우’는 기각하게 된다. 이때 교육부는 백신접종 당시 18세 이하의 청소년인 경우 제4-2호로 기각된 경우에도 치료비를 지급(30만 원 이상)하기로 결정하였고, 한국교육환경보호원에 집행기능을 위탁했다. 학생·학부모는 가까운 시·군·구 보건소를 통해 질병관리청에 피해보상을 신청할 수 있다. 혹시 질병관리청에서 기각되더라도 본인이 부담한 금액 기준으로 30만 원 이상인 경우 교육부(교육환경보호원)에서 보다 폭넓게 지원되고 있으니 관련 보상제도를 이용하여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다.
최대 500만 원까지 치료비가 지원된다고 하는데 구체적 기준이 궁금하다.
그렇다. 코로나19 백신을 접종한 이후 치료를 받은 경우에는 최대 500만 원까지 지급된다. 다만 백신접종 이상반응에 의한 치료비는 모두 지급되지만, 보약처럼 본래 치료목적이 명백하지 않은 경우는 치료비 지원항목에서 제외된다.
9급 공무원으로 출발해 교육부 보건분야에서만 26년을 근무하며 부이사관까지 오른 입지전적 인물로 불린다. 인생의 버팀목이 된 철학이나 좌우명이 있으면 소개해 달라.
1988년에 서울시교육청에서 보건직으로 공직생활을 시작했고, 1995년에 교육부로 전입한 이후에도 보건분야를 담당했다. 30년 이상을 한 우물만 파다 보니 자연스럽게 관련 분야에 대해 여러 가지 고민을 하게 되었다. 아마 이런 모습을 보고 ‘전문성이 높다’고 평가하는 것 같은데, 과찬이다. 한 분야에서 꾸준히 일한다는 것은 분명히 많은 장점이 있는 반면 단점도 있다. 나는 단점으로 지적되는 매너리즘에 빠져들지 않도록 꾸준히 현장 의견을 수렴하고 관련 전문가들의 조언을 구하려고 노력했다. 인생 좌우명이라고까지 할 것은 아니지만 ‘주신 것에 감사하고 항상 최선을 다하자’는 생각으로 근무해왔다.
제2의 인생을 시작했는데 앞으로 바람이 있다면?
‘한국교육환경보호원’이 학생건강과 안전을 책임지는 전문기관으로 성장할 수 있도록 직원들과 함께 노력하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제가 취임하면서 약속한 것이 첫째, ‘전문기관’으로써의 기능과 역량을 신장시키고, 둘째, ‘소통과 협력’을 지향하며, 셋째, ‘사랑과 믿음’이 있는 직장을 만들고, 넷째, ‘투명경영·책임경영’을 실시하며, 마지막으로 재정과 청사 확보에 최선을 다하겠다고 약속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