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챙김 상담소]학교와 가정이 정서적 완충제가 돼 주세요

2022.04.25 09:21:10

[교단치유프로젝트-마음챙김상담소]
정서 조절이 필요한 아이들

 

#. “돌연 분노를 터트리고 괴성을 지르며 책상과 의자를 발로 차는 아이를 어떻게 다뤄야 할지 모르겠어요. 그걸 지켜보는 다른 아이들은 어쩌고요. 수업을 진행할 수도 없고 너무 난감해요.”(교사)
#. “선생님이 30분씩 아이를 달래느라 수업을 할 수 없으니 부모 중 누구라도 와서 아이를 달래서 들여보내 달라고 전화를 하세요. 너무 반복되다 보니 제가 아예 학교에서 대기를 하고 있어요. 저도 생활이 안되는 거죠.”(학부모)
#. “그냥 참을 수가 없어요. 너무 화가 나고 기분이 안 좋아요. 뭐라도 해야 할 거 같은데, 그럴 때 다들 나를 이상하게만 보는 거 같고, 아무도 도와주지 않아요.”(학생)

 

 

[김민녀 임상심리전문가·교권침해 교사상담, 반디상담센터 부소장] 아동 및 청소년기는 새로운 사람과 환경에 놓여 두려움과 힘듦을 경험하면서 발달단계 상, 어느 정도 정서 및 행동 문제를 나타낼 수 있다. 하지만 정서 조절의 어려움과 행동 문제들이 얼마나 자주 일어나고 지속되는지, 얼마나 다양한 상황에서 나타나며, 삶의 어려움이 어느 정도인지에 따라 정신과적 진단과 치료의 대상이 될 수 있다. 정서 조절의 문제는 정신 건강의 유무와 그 심각성에 상당한 관련이 있다.
 

정신과적 질환을 진단하는 지침이 되는 ‘정신질환의 진단 및 통계 편람 제5판(DSM-5)’에서 정서 및 행동에 대한 자기조절과 관련되는 정신과적 질환으로 ‘적대적 반항장애’, ‘파괴적 기분조절장애’, ‘품행장애’를 분류‧기술하고 있다. 이들 장애는 모두 다른 사람의 권리를 침해하고, 사회적 규준 및 권위자나 성인과 현저한 갈등을 유발하는 행동을 나타내는 특징을 지닌다. 품행장애의 행동 증상은 분노와 같은 정서 조절 어려움과 관련되고, 적대적 반항장애는 정서 통제와 행동 통제가 동시에 문제되며, 파괴적 기분조절장애는 정서 조절의 어려움과 주로 관련된다.
 

갑작스러운 감정 폭발과 공격적인 행동은 우울 및 불안장애에 동반되는 분노와 공격 증상으로 볼 수도 있다. 따라서 정확한 감별 진단과 그에 따른 치료적 접근이 필요하다. 특히 파괴적 기분조절장애의 분노 표출은 뚜렷한 대인관계를 비롯한 어떤 스트레스나 촉발하는 자극이 없이도 나타나기 때문에 부모나 교사, 또래를 비롯한 주변 사람들을 힘들게 한다.
 

정서 및 행동 문제로 전문기관을 찾는 사례는 꾸준히 있다. 하지만 필자의 임상 경험에 의하면, 최근 몇 해 전부터 초등 4~5학년 아동들의 방문이 빈번하다. 더 이전부터 조절 문제로 어려움을 겪어 왔겠지만, 결국 학교에서까지 문제가 되면서 전문기관을 찾는 것이다. 이들은 대기실에서부터 사소한 일로 소리를 고래고래 지르고, 떼를 쓰며, 분노발작을 나타낸다. 동행한 부모뿐만 아니라 치료진들에게도 자신의 정서를 조절하지 못하고 거침없이 감정 폭발을 드러낸다. 어떤 아이들은 학교에서는 눈에 띄는 분노발작을 보이지 않으면서 집이나 또래관계에서만 두드러지게 표출하는 경우도 종종 있다.
 

정서 조절 및 행동 문제와 관련된 자기조절의 어려움을 보이는 아이들은 부모로부터 적절하고 지속적인 지도 감독을 받지 못하였거나 거부당하고, 강압적이며 학대적인 양육을 받은 경우가 많다. 사실 요즘 부모들은 강압적이고 학대적인 양육을 피하고자 여러 채널로 부모교육과 관련한 강좌를 듣고, 관련 서적을 통해 스스로 배우는 경우가 많다. 때문에 임상 현장에서는 강압적이고 학대적인 부모보다는 적절하고 일관성 있는 양육을 하지 못해 어려움을 겪는 부모를 더 빈번히 만날 수 있다. 적절하면서도 일관성 있는 부모의 양육은 아이로 하여금 심리적 안정감 속에서 적절한 자기조절능력을 기르도록 돕는다.

 

자기조절(self-regulation)은 외부의 명령이나 지시 없이도 스스로 생각하고 계획하고 실행하며 평가하는 능력을 말한다. 이는 문제 상황 전체에 고르게 주의 집중하고, 문제해결을 위해 종합적으로 생각하며, 사회적으로 바람직한 행동을 계획하고 실행하도록 하며, 부정적인 정서를 조절하여 표현할 수 있는 능력과 관련된다. 즉 자기조절의 실패는 정서 폭발뿐만 아니라 또래 적응 및 사회 문제해결, 학습 등 주요 생활 영역 전반에서 문제를 야기한다.
 

정서를 적절히 조절하지 못하는 아이들은 두 가지 형태의 모습을 보인다. 하나는 정서를 과도하게 억압하고 통제하는 것이 습관이 돼 충격적인 일에도 별다른 정서적 반응을 보이지 않으며 무덤덤하고 무감각한 모습을 보이는 경우이고, 또 다른 하나는 사소한 자극에도 쉽사리 짜증을 내거나 신경질을 부리는 경우이다. 전자는 내면화 행동문제를 지닌 아이로 분류되고 불안, 우울 등의 정서 문제를 겪고 사회적으로 철회돼 있다. 후자는 외현화 행동문제를 지닌 아이로 비행이나 폭행 등 밖으로 드러나는 공격적 행동을 보인다. 이들의 표면적 모습은 극명히 다른 것으로 여겨지지만, 자신의 정서를 적절히 조절하지 못한 것에서 비롯된 문제를 겪고 있다는 점에서 동일하므로, 정서를 효과적으로 조절하고 문제를 적절히 해결할 수 있도록 도와야 한다.
 

정서를 조절하는 데는 부적절한(부적응적) 방법과 적절한(적응적) 방법이 있다. 정서 조절을 어려워하는 아이들은 대체로 부정적 정서를 경험하면, ‘아주 끔찍한 일’, ‘최악의 상황’이라는 식의 지나치게 극단적이고 부정적인 방식으로 생각한다. 또 엉뚱한 대상에 분풀이를 하거나, 물건을 던지고 부수며, 옆에 있는 사람과 말싸움을 하는 등 다른 사람에게 즉각적으로 감정을 표출해버리거나, 타인을 비난하며 탓하기도 한다. 나아가 폭식하거나 음주 및 흡연 등 물질을 사용하고, 컴퓨터 게임이나 유해한 영상 등 자극 추구적 활동을 탐닉하는 경향을 보인다. 
 

이러한 방법들은 일시적으로 기분 변화에 도움이 될 수 있을지 모르나, 결국 스스로 자신의 감정을 조절하고 통제하며, 감정을 직접적으로 해결하는 데는 도움이 되지 못한다. 근본적으로 해결되지 못한 감정들은 언젠가 차고 흘러 넘쳐 문제가 되기 마련이다. 정서 조절에 도움이 되는 적절한 방법에는 타인에게 도움이나 지지 청하기, 즐거운 상상을 하는 것 같이 기분전환 활동하기, 주의를 분산시키기, 문제 해결적 사고와 행동하기, 자신의 감정을 수용하고 표현하기 등이 있다. 이러한 방법들은 결국 부정적인 정서를 해소시키고 가볍게 해줄 뿐만 아니라 스스로 자신의 정서를 잘 조절할 수 있다는 통제감과 효능감을 갖도록 돕는다.
 

*파괴적 기분조절장애(disruptive mood dysregulation disorder)
 

- 상황에 매우 부적절하며 심각하고 반복적인 언어적/행동적 감정 폭발을 보인다.
- 감정의 폭발과 폭발 사이에 불안정하거나 화난 기분이 지속된다.

*적대적 반항장애(oppositional defiant disorder)
 

- 논쟁적이고 반항하며 타인을 화나게 하고, 화를 많이 내며 불안정하다.
- 종종 증오심 및 적개심을 드러내고, 반복적으로 성인과 논쟁하며 규율을 무시한다.

*품행장애(conduct disorder)
 

- 반복적, 지속적으로 다른 사람의 기본 권리나 사회 규범이나 규칙을 위반한다.
- 타인을 자주 괴롭히거나 위협하고, 신체적 싸움을 자주 일으킨다.
- 동물이나 사람에게 신체적으로 잔혹하게 한다.
- 도둑질, 기물 파손, 불 지름 등의 범죄를 저지른다.
- 13세 이전에 잦은 무단결석과 가출을 한다.

 

구체적인 코칭 방법을 소개하자면 첫째, 감정이 매우 격양된 상태라면 주의를 분산시켜 일단 감정을 가라앉히고 차분해지도록 한다. 격양된 상태에서는 충동적인 행동 표출 등 예상치 못한 일이 일어날 수 있으므로, 일단 일시적인 감정 완화가 중요하다. 감정이 격양된 상태에서는 이성적으로 상황에 접근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주의를 다른 데로 돌리거나, 즐거운 상상이나 좋아하는 활동들을 떠올려보고, 평소 좋아하는 글귀나 위로가 되는 말들을 되뇌어 보도록 지도한다. 또 다른 방법으로는 호흡법이나 근육이완법을 적용해 긴장을 완화할 수 있다. 천천히 10을 세면서 숨을 들이쉬고 내쉬기를 여러 차례 반복하면서 가빴던 숨이 길어지고 편안해지는 것을 느껴보고,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신체의 여러 부위가 이완되고 긴장이 풀어지는 경험을 시도해볼 수도 있다.
 

둘째, 어떤 감정을 느끼고 있는지 알아차리도록 한다. 자신의 감정이 무엇인지, 신체적으로 느껴지는 감각은 무엇인지, 주의를 기울여 보고 감정에 이름을 붙여 본다. 사람이 느낄 수 있는 감정의 종류와 강도는 다양하다. 하지만 정서 조절의 문제를 가진 아이들은 주로 한 두가지의 반복적인 정서만을 경험하는 경향이 있다. 분노를 느끼는 아이들은 무슨 일에든 분노하고 분노하면 늘 최대의 분노를 느낀다. 상황에 따라 우울, 불안, 분노, 수치심, 혐오, 슬픔, 행복 등 다양한 감정을 느끼고 인식하며 명명해보고, 또 그 감정의 강도가 어느 정도인지 0-10점 척도로 수치를 매겨보면서 감정과 그 정도를 정확하게 인지할 수 있도록 돕는다.

 

감정을 알아차리고 명명하는 것이 어려운 아이에게는 생리적‧신체적 감각을 자각하도록 해 감정을 유추해볼 수 있다. 가령, 얼굴이 붉어지고 손과 발이 떨리거나 심장이 뛴다면, 분노를 느끼고 있다는 신호일 수 있고, 눈물이 나고 어깨가 위축되며 가습이 답답하다면 우울을 느끼는 신호일 수 있다. 이렇게 감정을 경험하는 순간의 신체 감각을 자각해봄으로써 자신의 감정을 인식하고 명명해보도록 돕는 것이 좋다.
 

셋째, 감정의 원인을 찾아본다. 정서 이론가인 샥터와 싱어는 외부 자극은 생리적 각성을 유발시키고, 동시에 뇌는 그 원인을 해석하는데, 이 해석은 곧 정서 경험을 이끈다고 했다. 즉, 인간의 정서 경험은 신체 각성에 대한 인지적 해석에서 유래된다는 것이다. 가령, 우리가 복도를 걷다가 마주 오는 친구에게 손을 흔들며 인사를 했는데 친구가 인사를 받지 않고 갑자기 방향을 꺾어 교실로 들어갔다고 해보자. 친구의 행동을 보고 ‘나를 무시하는 거야’라고 생각하면, 화가 치밀 것이고, ‘그냥 못 봤을 수 있지’라고 생각하면, 평소처럼 편안히 가던 길을 가게 될 것이다. 이처럼 일의 원인, 혹은 상대 행동의 이유를 어떻게 해석하느냐는 우리의 기분에 영향을 준다. 따라서 감정의 원인을 무엇으로 보고, 어떻게 해석하는가 하는 인지적 과정은 정서 조절에 매우 중요한 과정이다.
 

우리는 사건과 대상, 상황에 대한 인지(해석‧생각)를 바꿈으로써 감정과 행동의 변화를 가져올 수 있다. 위의 예로 돌아가 보자. 복도에서 마주친 친구가 인사를 받지 않고 간 이유를 ‘급한 일이 생겼을지도 모른다’, 혹은 ‘딴 생각을 하느라 나를 못 본 것일지도 모른다’, 혹은 ‘설사 인사를 받아주지 않았다 하더라도 나를 무시하는 것이라고는 볼 수 없다’고 생각해볼 수 있다면 감정은 어떻게 될까? 종전처럼 분노가 치밀어 오를까? 최소한 분노가 치밀어 오르지는 않을 것이다.
 

이렇게 정서 조절 및 행동 문제를 보이는 아이들이 격양된 감정을 보인다면, 진정시킨 뒤 느껴지는 감정이 무엇이며 그 강도는 어느 정도인지 알아차리고, 감정을 촉발한 인지를 찾도록 한다. 그리고 객관적이고 현실적이며 대안적인 생각으로 바꿔 편안한 감정으로 변화시킬 수 있도록 도울 수 있다. 이런 과정으로 아이들에게 적절한 감정코칭을 할 수 있다면, 자신의 진짜 감정과 본심을 꽁꽁 숨기고 사는 불편한 아이들에게 학교와 가정이 세상에 둘도 없는 정서적 완충제(buffer)가 될 수 있을 것이다. 

김민녀 임상심리전문가·교권침해 교사상담, 반디상담센터 부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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