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은 자신이 생각한 대로 살게 된다. 인간은 곧 생각의 산물이기 때문이다. 자기암시 결과를 실제 삶 속에서 경험하는 일이 어렵지 않다. '만 번 외우고 되뇌면 소원이 이루어진다'는 인디언 속담도 있다.
학교는 생각을 이끌어내는 곳
학교는 그 생각을 하게 하고 생각을 이끌어내는 곳이다. 학교에서 열심히 선생님 말씀 들어야 한다가 아니라, 생각을 많이 하고 그 생각을 다듬고 표현하게 하는 일이 교육이다. 20세기엔 다른 사람들에게 착하게 잘하도록 하는 인성교육이었다면, 이제는 생각을 끌어내는 감성교육이 중요하다. 감성교육의 출발점은 바로 자신과의 만남을 소중히 하는 일이다. 자신을 알고 사랑하는 사람만이 다른 사람의 소중함도 안다. 자존감의 첫 단추가 잘 끼워진 사람은 어려움을 겪으면서도 다시 일어서는 힘을 가질 수 있다.
공자는 ‘앎’과 관련해 사람을 네 수준으로 분류했다. 태어나면서 아는 자가 최상이요(生而知之), 배워서 아는 자가 그 다음이요(學而知之), 곤란을 겪으면서 배우는 자가 그 다음이다(困而知之). 곤란을 겪으면서도 배우지 않는 자를 최하위로 여긴다(困而不學).
즐겁게 배우도록 이끄는 일, 곤란을 겪으면서도 배우게 하는 일, 단 한 사람이라도 곤이불학의 제자를 만들지 않는 일이 선생의 사명임을 깊이 깨달으며 자경문으로 삼았던 글이다. 초등학교 1학년 아이들도 이를 알아듣고 열심히 책 읽던 풍경이 그립다. 절대로 곤이불학의 단계로 내려가지 않겠다고 다짐하던 아이들의 불끈 쥔 주먹손이 많이 컸겠구나 싶다.
얼마 전 초등학교 5학년 전학생이 담임 교사에게 폭언을 일삼고 같은 반 친구들에게 폭력을 행사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제지하려는 경찰관까지 아동학대로 신고하겠다고 했다는 기막힌 사연이었다. 아마 다른 학교에서도 그런 행위로 강제전학을 시켰을 것이다. 폭탄 돌리기인 셈이다. 어느 학교로 가도 피해를 줄 가능성이 다분하다. 이미 그 학생 스스로도 자신을 제어하지 못할 만큼 내면에 큰 상처가 있어 상담과 치료가 시급하다고 본다.
학부모와 학교가 적극 나서서 치유 프로그램을 바로 투입해야 한다. 그 학생 내면의 울분과 상처, 폭력으로 치닫게 된 분명한 요인을 찾아 제대로 치료해야 한다. 땜질식 처방을 넘어 적극적인 개입으로 곤이지지의 단계로 올라서도록 도와야 한다. 분명 대오각성의 순간을 맞이하리라 확신한다. 아이들은 믿어주고 지지해주는 만큼 자란다.
뒷담화와 냉소로는 바뀌지 않아
팍팍하고 우울한 소식이 넘쳐서 걱정스럽다. 그럼에도 늘 옳은 선택을 하기 위해 노력하는 현명한 국민들을 믿고 싶다. 좌절과 절망의 뿌리 위에 핀 눈물의 역사는 사람을 소중히 하는 생각하는 국민을 만들었다. 삶이란 어느 한 순간도 쉽게 넘어가지 않는다. 그것이 교육이건, 국가 정책이건, 한 개인의 삶이건 마찬가지다. 뒷담화나 냉소적 태도로는 어떤 변화도 가져올 수 없다. 대안을 위해 같이 고민하는 마음이 모이면 희망이 보이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