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마다 6월 초순이 되면 아파트 화단에 피는 꽃들 중에 가장 기다리는 꽃이 있다. 벚꽃과 철쭉꽃이 지고 모란꽃이 지기를 기다린 듯 꽃내음을 풍기는 치자나무꽃이다.
내가 사는 동이 아니라 어쩌다 꽃이 피는 시기를 놓치면 몇 송이 남지 않아 아쉬워하는 때도 있다. 순백이던 꽃은 시들어가며 누렇게 변하지만 향기는 더 진하다. 마음 같아선 꽃 한 송이 얻어가고 싶지만 꾹 참는다. 저 한 송이를 피우려고 얼마나 오랜 시간을 버티고 참아낸 시간들이 있었으리니!
꺾어가는 손을 뿌리질 수도 없으니 항변할 리 없는 치자나무이지만 그에게도 꽃송이는 귀한 분신임을 생각하며 늘 참는다. 그러고선 그래도 아쉬워 땅에 떨어진 꽃잎을 줍곤 한다. 바싹 마를 때까지 두어도 그 향기만은 살아서 곱다. 명을 다해 땅에 떨어진 꽃잎에서도 그 향기는 여전하다. 꽃망울 열던 그 처음의 향기를 머금고서 마지막 까지 오래 가는 향기라니!
사람도 늙어갈수록 더 지혜로운 내면의 향기를 지닐 수 있다면 소원이 없겠다는 생각을 하게 하는 꽃이다. 해마다 꽃 피우는 그 날을 기다리게 하는 꽃이다. 아파트 정원에 다른 나무들은 그 숫자가 아주 많은데 치자나무는 딱 한 그루라서 아쉽다. 키우기 어렵거나 빨리 자라지 않아서일까? 살아서도 죽어서도 그 향기가 한결같은 삶이란 어떤 것일까? 자연은 아무런 대가 없이 선물을 준다.
삶은 사람과 앎이 보태진 말이라던가. 사람으로 태어나는 건 기적 같은 축복이라는 말이 불가에 전해온다. 태평양처럼 드넓은 바다에 사는 거북이가 자신의 목이 들어갈만한 구멍이 뚫린 나무 판자를 만나서 목을 끼울 수 있는 확률이라고 했다. 그러니 사람으로 태어난다는 것은 어머어마한 확률로도 설명이 되지 않을 만큼 기적이라는 뜻이다. 대양에 사는 거북이가 나무 판자를 만나는 일도 기적인데, 그 판자에 자신의 목이 들어갈만한 구멍이 있을까. 파도에 밀리는 그 판자에 거북이가 목을 들이밀 확률이라니!
그렇게 태어난 사람이 앎을 향해 구도자처럼 살아갈 때 비로소 '삶'을 얻는 거라는 해석을 하고 보니 숙연해진다. 날마다 살아 있음이 삶이 아니란 것이니. 삶이라 일컬을 수 있는 시간을 얼마나 쌓으며 살고 있는지 자문하게 하는 단어가 '삶'이라고 생각하니 글자에 의미를 부여한 누군가의 정의에 고개가 숙여진다.
치지꽃 향을 맡을 때마다 생각하는 건 '향기 나는 사람'이다. 그런 사람은 시간의 더께를 충실히 이겨낸 사람이다. 땅에 떨어져 말라가면서도 결코 그 향기를 잃지 않는 치자꽃처럼 시간이 흘러도 내면의 향기로 마음을 데우며 조용히 음미하며 남은 시간을 사랑할 줄 안다. 그런 이는 멀리 있어도, 몇 년 동안 얼굴을 볼 수 없어도 늘 그 자리에서 변함없는 향을 내뿜고 있음을 믿는다.
사람들은 인위적으로 향기를 몸에 뿌리고 씻는다. 나이가 들수록 사람의 몸에서는 좋은 냄새보다 역겨운 냄새를 풍긴다. 곁을 지나칠 때 인위적인 향을 풍기는 사람들이 많다. 나는 본디부터 세숫비누 외에는 어떤 것으로도 씻거나 바르지 않고 살아 왔다. 가장 큰 이유는 6학년 과학 교과를 가르칠 때부터였다. 나부터 실천하지 않으며 가르치면 안 된다고 생각했다. '환경오염' 단원을 가르치며 세제가 주는 폐해를 강조하면서부터였다. 수행평가 항목으로 목욕을 하거나 머리를 감을 때 샴프나 합성세제로 만든 바디 샴프 대신 세숫비누를 사용하는 학생에게는 최상위 점수를 주기도 했다.
"선생님 말씀대로 세숫비누로 머리를 감았더니 너무 뻑뻑해요. 빗질하는 게 불편해요. 린스라도 쓰면 안 될까요?" "처음엔 다 그래요. 그런데 한 달만 참고 세숫비누를 써보세요. 나중에는 머릿결이 부드러워져요. 우리 몸에서 머리카락을 보호하는 천연물질이 나오기 때문입니다. 합성세제 대신 천연비누인 세숫비누를 사용하면 탈모도 예방된답니다. 선생님 머리카락을 만져볼래요? 아주 부드럽죠? 머리카락도 덜 빠지는 편이라서 나이보다 젊어보이는 효과도 있답니다. 세숫비누를 쓰면 물도 1/10이면 되고 수건으로 말리면 5분이면 돼요. 나의 조그만 행동 하나가 환경을 살립니다."
가르치는 것은 배우는 것이 분명하다. 환경오염을 가르치며 합성세제의 위험성을 지식으로만 배우게 하는 건 의미가 없다고 생각했다. 적어도 내가 가르치는 동안만이라도 습관이 될 수 있도록 주기적으로 머리 검사를 하곤 했다. 한 해도 거르지 않고 친환경 세제를 쓰며 물도 절약하고 물의 오염도 막자고 가르쳤는데 천 명이 넘는 그 많은 제자들 중 몇 명이나 실천하고 있을까? 세숫비누 덕분인지 내 머릿결은 여전히 부드럽고 탈모도 없으며 건강한 두피를 자랑하고 있다.
요즈음은 도서관 열람실에서 책을 읽는 일이 거의 없다. 첫째 이유는 마스크를 쓴 채 답답한 독서를 하는 게 힘들어서다. 둘째 이유는 고약한 냄새를 풍기는 사람들 때문이다. 오죽하면 직원에게 부탁할 정도다. 열람실에 들어올 때는 최소한 머리라도 감고 입실해달라고 쪽지라도 좀 붙여달라고. 땀냄새와 찌든 머리털 냄새까지 뒤엉킨 열람실 공기는 에어컨 바람을 타고 냄새지옥을 방불케하니, 아무래도 도서관 이용수칙에 목욕하고 입실하기를 추가했으면 좋을 듯하다. 특히 여름철에는.
향기 중에 최고의 향은 내면에서 풍기는 향이리라. 어쩌면 그 향기를 위해 일생을 다듬으며 사는 게 아닐까? 우리 집에서 함께 사는 고양이는 4년 째 살고 있지만 나처럼 물로 목욕하는 일이 없다. 물 한 방울 쓰지 않지만 몸에서는 언제나 냄새조차 나지 않는다. 고양이들만의 생존 비법이 있겠지만. 부럽다. 아니, 몸을 닦는 데 여러 시간을 공들여 닦는지. 얼마나 처절하게 닦는지! 살아 남기 위해 물려받은 그들만의 비법이 존경스럽다. 그러니 미래의 인간형은 고양이라고 했나 보다.
흔히 첫눈에 반했다는 말로 사랑에 눈이 머는 순간을 표현한다. 그런데 놀랍게도 첫눈보다 먼저 반응하는 것이 바로 그 사람에게서 풍기는 향기라고 한다. 사람마다 다른 향이 있어서 눈으로 보기 전에 이미 그 사람의 향기에 취한다는 것. 마치 나비가 꽃 향기를 찾아 날아가듯. 첫눈에 반하기 3초 전에 이미 자신이 의식하기 전에 냄새가 먼저 가닿는다고 과학자들은 말한다. 그러니 취향이 첫눈보다 먼저인 셈이다.
자기 자신만의 향기가 있는가? 나는 어떤 향기를 가진 사람인가? 지천으로 피어난 이 여름 꽃들이 내게 쏟아내는 질문이다. 그대의 향기는 무엇인가? 너의 향기는 무엇인가? 이제는 목욕을 해도 어쩔 수 없이 노인 냄새 풀풀 풍기는 나이가 되었으니 세숫비누만으로 괜찮을지 걱정이다. 그렇다고 평생 사용하지 않은 화학제품을 몸에 바르고 싶은 생각은 없다. 요즘 나의 소망은 치자꽃 향기를 품는 것이다. 바르지 않아도 뿌리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풍겨나오는 멀리 가는 그 향기를! 최소한 우리 집 고양이처럼 아무 냄새가 없거나 세숫비누 향이라도 지닐 수 있기를!
아주 오래 전에 찍어둔 저 사진 속 풍경처럼, 여름 아침 풀잎에 맺힌 고운 이슬 방울처럼 지상에 머무는 순간을 사랑하며 맑은 시간을 보내고 싶다. 본디 아무 것도 없음에서 존재함으로 이 세상이라는 풀잎에 찾아온 이슬 방울과 나는 닮았다. 추한 냄새 풍기지 않으며 이슬 방울이 하늘로 돌아가듯, 귀향의 날을 기다리며 순종하고 싶다. 땅에 떨어진 후에도 그 향기를 잃지 않는 치자꽃처럼 향기 나는 사람으로 기억되고 싶은 것은 허망한 욕심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