늘그막에 이혼하려는 사람들이 점차로 늘고 있다고 한다. 좀 지난 시일에 황혼이혼 합의 판결을 앞둔 어느 부장판사가 일행들에게 가볍게 물었다.
“황혼이혼을 신청하는 사람이 누구일까요? 여자일까요?? 남자일까요?”
참석했던 일행들이 별로 힘들이지 않고 여자일 것이라고 했다. 뉴스를 보거나 떠도는 말들을 들어보면 젊어서 참고 살던 여자들이 남자들의 횡포를 더 이상 참지 않고 이혼을 신청한다고 했다.
지금 젊은 세대들은 공감하기 어려울 수도 있지만, 60년 이전 태생인 사람들은 기구(崎嶇)하게 살아온 여인네들의 삶을 안다. 별 볼 일 없는 남정네들의 허세와 구박을 참고 살아야 했다. 술주정은 물론이고 손찌검까지도 견디며 살아야 했던 한이 응어리로 남은 여인네다. 그렇게 살아온 세월을 뒤돌아보니 분하고 또 분한 것이 치밀어온 것이다.
더구나 세월이 변하며 자신이 누릴 수 있는 권리가 상당하다는 것을 알아버렸다. 늙어서 이혼한다고 두려울 게 없어진 것이다. 특히 남자들이 정년퇴직하고 함께 하는 시간이 늘면서 이혼을 신청하는 경우가 많다고 했다.
“그럼 황혼이혼의 조건이 무엇인지 아세요?”
이번에도 일행들은 먹고 살아갈 수 있는 돈이 있을 것이라거나 경제적으로 자립할 수 있는 사람이라고 가볍게 대답했다.
“보통은 그럴 것이라고 생각을 하는데 그것보다 더 중요한 조건이 있어요. 중년의 딸이 있는 노인들입니다.”
황혼이혼의 조건이 중년의 딸이라는 말이 나오자 배석했던 여성분들이 대번에 공감하는 분위기다. 같은 여자라도 젊은 여성들이 이해하는 어머니와 중년의 여성들이 이해하는 어머니는 다르다. 중년이 되어 돌아보니 비로소 자신의 가슴속에서 어머니가 이해되고 애틋해졌다.
어려서는 어머니의 잔소리가 싫었고, 젊어서는 궁색하게 사는 어머니가 추레하게 보였다. 부모님이 부부싸움으로 어머니가 궁지에 몰리면 그렇게 사는 것조차 미웠다. 그러다 문득 중년이 되어 돌아보니 자신에게 어머니가 들어앉은 것을 알게 되고, 그렇게 어머니가 사무치게 이해가 되었다.
그때부터 어머니를 스스럼없이 찾게 되고, 그러다 보니 어머니도 무슨 일이 생기게 될 때마다 딸에게 하소연하게 되었다.
남편의 못된 버릇으로 노부부가 작은 싸움이라도 하게 되면 딸에게 전화해서 시시콜콜 하소연을 하게 되고, 그 말을 들은 딸은 맞장구를 쳐댔다.
전화를 받다 분을 삭이지 못한 딸이 “엄마! 우리 집으로 와.”
딸네 집으로 간 어머니는 다시는 돌아오지 않았고, 대신 이혼청구소장이 집으로 갔다.
이 황혼이혼의 조건이 중년의 딸을 둔 어머니라는 사실이 의미하는 것은 무엇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