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역사에서 일제의 식민시대를 생각하면 나라 잃은 슬픔으로 고통과 방황을 했을 선인들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그중에서도 3.1 전국만세운동을 주도했던 유관순 열사를 비롯한 수많은 비폭력운동에 앞장서 행동했던 애국지사와 민중들이 있었기에 우리의 역사가 부끄럽지 않은 것이리라.
나라 밖으로는 영국의 지배를 받던 암울한 시대에 인도의 독립을 위해 비폭력운동에 헌신했던 애국지사들을 생각하게 되는 것도 우리의 역사와 무관하지 않은 까닭이기도 하지만, 지금처럼 전쟁과 평화를 위협하는 군사도발 등 풍전등화의 위기에 처한 주변의 정세를 교훈 삼아 인류가 평화와 사랑의 정신으로 무장해야 한다는 역사적 소명 의식의 발로이기도 하다.
인도를 대표하는 사상가이자 비폭력운동을 이끈 대표적인 정치인 간디는 비노바 바베를 가르켜 '인도가 독립하는 날, 인도의 국기를 맨 처음으로 계양할 사람'이라고 칭송했다. 비노바는 권력의 바깥에서 재야의 중심인물로 손꼽히며 이타적인 활동과 인격적인 삶으로 모든 인도인의 마음을 흔들어 놓았다. 그는 10살의 어린 나이에 평생을 독신으로 살면서 인류를 위해 헌신하기로 서약했다. 비노바는 폭력 없는 사랑과 감동만으로 세계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음을 깨닫고, 20년이 넘는 긴 세월을 인도 전역을 걸어 다니며 지주(地主)들을 만나 가난한 이웃들에게 땅을 내어주도록 하는 토지헌납 운동을 시작했다. 그가 8000킬로미터가 넘는 거리를 걷고 또 걸으면서 '평화의 행진'을 함으로써 지주들로부터 기부받은 땅이 광활한 인도 국토의 1주(州)의 넓이에 해당할 정도였다. 이 일은 가난과 숱한 분쟁으로 피폐해져 있는 인도를 하나로 묶어주는 소리 없는 혁명이 되었다.
"모든 인간이 공기와 물과 햇빛을 누릴 수 있는 권리를 가지고 있듯이, 땅을 누릴 수 있는 권리를 가지고 있다. 그것은 계시였다. 사랑으로 감동을 받으면 사람들은 땅까지도 나눌 수 있다. 만일 우리 마음이 순수하기만 하다면 어떤 문제라도 비폭력적인 방법으로 해결할 수 있으리라 확신한다. 땅을 못 가진 사람이 존재하는 한, 한 개인이 필요 이상으로 땅을 차지하는 것은 잘못이다."
그는 사람들에게 카스트와 언어와 종교의 벽을 허물라고 역설했고 스스로 브라만 계급을 상징하는 긴 머리카락을 잘라버리기도 했다. 사회개혁가이자 뛰어난 영성가였던 비노바는 인도의 정신문명을 탐구했고 노동을 중요하게 여겼다.
"만일 내가 빗자루 대신 염주를 들었더라면 아무도 나에게 시간을 낭비하고 있다고 말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쓰레기를 줍는 일은 나에게는 묵주를 잡은 것과 같은 일이다. 지푸라기를 하나하나 주울 때마다 신의 이름을 한 번씩 기억하는 것이다. 거기에 따르다 보면 다른 생각을 하는 일도 없으며, 그것은 순수한 묵상이다."
순수한 영혼의 그는 이처럼 작은 일 하나에도 관심과 사랑으로 실천하려는 사회운동가였던 것이다.
비노바는 독립운동으로 여러 차례 감옥에 수감되었다. 그곳에서 자기 존재의 근원에 대해 명상하는 시간을 가짐으로써 '바가바드기타'에 나오는 구절 '유위(有爲) 가운데서 무위(無爲)를 보고, 무위 가운데서 유위를 보는 자는 진정으로 깨달음을 얻은 자이다'라는 의미를 깨닫게 되었다. 그는 모든 사람은 베풀 수 있는 무언인가를 가지고 있다고 말하곤 했다. 여기엔 땅, 지식, 재산, 육체적 힘, 사랑과 애정 등 모든 것을 포함한다. 그래서 베풀고 베풀어야 한다고 그는 가르쳤다.
이러한 사상은 전적으로 어릴 적에 어머니로부터 직접 배운 가정교육의 영향이기도 했다. 동양 사회에서 중국 맹자의 어머니, 조선 한석봉 어머니, 인도 비노바의 어머니는 공통된 위대한 자녀교육의 모델이었다. 비노바의 어머니는 "우리는 먼저 베풀고 나중에 먹어야 하는 법이다"라고 가르쳤으며 또한 건장한 거지에게 적선하는 것에 대해 불만을 제기하는 아들에게 "아들아, 우리가 무엇인데 누가 받을 사람이고 그렇지 못한 사람인가를 판단한단 말이냐. 내 집 문전에 찾아오는 사람이면 그가 누구든지 다 신처럼 받들고 우리가 힘닿는 대로 베푸는 거란다. 내가 어떻게 사람을 판단할 수 있겠느냐"라고 가르쳤다.
그는 75세에는 모든 정치적, 사회적 활동을 중단하고 기도와 명상으로 삶을 채우고 87세에는 의사 진료는 물론 약과 음식과 물을 거부하고 죽을 때까지 단식을 하던 중에 단식 80일째 되던 날에 지극히 평화로운 가운데 자기의 몸을 벗어 던졌다.
'지금 내가 가지고 있는 것으로 무엇을 베풀 수 있을까?' 생각해 본다. 그런데 생각보다 꽤 많은 것 같다. 왜냐면 우리가 살아가는 환경은 서로 연결되어 무슨 일이든지 서로 유관한 관계를 맺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필자가 어떻게 행동하느냐에 따라 타인에게 이타적인 행동을 얼마든지 베풀 수 있다는 생각이다. 나눔과 베풂은 이제 우리가 살아가는 삶의 의무이기도 하다. 그것은 적선이나 기부가 아닌 의무이자 사랑의 실천이 되고 있다. 자기 사랑으로부터 시작하는 작은 실천이 타인에 대한 사랑으로 확대될 수 있으며 자식 사랑은 물론 이웃 사랑을 적극적으로 실천할 수 있으리라 본다.
호모 사피엔스라는 현생 인류가 서로 협동하고 공존함으로써 이 세상에서 유일하게 진화에 성공했듯이 우리가 살아가는 사회는 경쟁이 아닌 협동과 나눔, 베풂이 있음으로써 존재한다고 믿는다. 매일 치열하게 경쟁하며 살아가는 암담한 이 세상에서 우리가 행할 수 있는 유일한 것은 타인에게 관심을 가지고 더불어 살아가면서 서로서로 베풀고 사랑하고 행복하게 살아가는 것이라 믿는다. 이런 점에서 비노바는 인류가 간직해야 할 가치와 삶의 방향을 제시한 평화와 사랑의 전도사라 할 것이다. 특히나 각자도생의 길을 걷는 인류에게 사랑의 공동체를 운영하고 그 내면의 어둠을 희망으로 밝히는 등대와 같은 존재이기에 그에게 깊은 존경과 흠모의 마음을 전하며 작은 것이라도 우리가 가진 것을 서로 나누고 베풀며 살아가는 지혜를 통해 우리 인류가 누구나 타인에게 무언가를 베풀 수 있는 소중한 존재임을 깨닫는 것이라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