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잘 읽게 만들고 싶나요? 읽어주세요”

2023.02.09 16:01:28

심영면 서울아현초 교장

17년 동안 책 읽어주기 운동
초등 시기, 학습만 몰입하면
얻는 것보다 잃는 게 더 많아
최근 ‘초등 독서의 힘’ 등 펴내

“고학년 아이들이 해당 학년이 읽어야 할 수준의 책을 읽지 않는다면, 이것은 안 읽는 걸까요? 아니면 못 읽는 걸까요? 답은 못 읽는 겁니다. 그런데 안 읽는 거로 생각하는 분이 많아요. 착각하는 겁니다. 나이가 많아지고 학년이 올라가면 책 읽는 수준도 높아진다고 생각하는 거예요. 하지만 독서 능력은 저절로 향상되지 않습니다.”

 

심영면 서울아현초 교장은 ‘등산’을 예로 들었다. 초등 저학년이 읽을 수 있는 수준을 남산이라고 하면, 고학년은 북한산 정도라고. 남산 정도야 마음먹으면 오르내릴 수 있지만, 북한산을 오르려면 주변의 응원과 보살핌, 훈련이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심 교장은 “고학년 수준이 안되는 아이에게 알아서 읽으라는 건, 혼자 북한산을 등산하라는 것과 다르지 않다”면서 “스스로 원하는 책을 찾아서 읽을 수 있는 시기까지는 함께 읽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교사, 학부모, 지역사회 인사 등이 학생들에게 책을 읽어주는 ‘얘들아, 함께 읽자! 책 읽어주기 운동’을 2006년부터 지금까지 펼치고 있다. 17년 동안 독서 운동을 통해 축적한 경험과 지식, 노하우를 최근 <초등 독서의 힘>과 <초등 독서 질문 사전>에 담아냈다.

 

심 교장은 아이들이 책을 잘 읽고, 좋아하게 만드는 일을 ‘소리 없는 전쟁’이라고 말한다. 치밀한 전략을 바탕으로 온 힘을 다해 곁에서 응원하고 기다려주는 게 핵심이다. 그 중심에 함께 읽기, 바로 책 읽어주기가 있다.

 

“아이들은 태어나면서부터 소리 듣기를 통해 단어를 습득해 나가는데, 12세 무렵까지 지속됩니다. 학교에 입학하고 12세 무렵부터는 소리보다 글자를 통해 단어를 습득하기 시작하고, 글자를 통해 단어를 가장 많이 습득하는 시기는 12~17세입니다. 책을 가장 많이 읽어야 할 시기에 우리나라 학생들은 학습에 집중하느라 읽지 못합니다. 읽지 않고, 읽지 못하기 때문에 이해력과 독해력이 낮아지고, 결국 사교육에 의지하게 되는 겁니다. 늦기 전에 책을 읽어줘야 하는 이유입니다.”

 

책 읽어주기는 학습에 필요한 능력을 기르는데도 효과가 크다. △청각 집중력 △시각 주의력 △행동 억제력이 그것이다. 청각 집중력은 의미 있는 소리에 집중하는 능력, 시각 주의력은 보이는 것 중에서 필요한 것에만 집중하는 능력을 말한다. 행동 억제력은 주변의 불필요한 자극을 이겨내는 힘으로, 세 가지 모두 학습과 깊은 연관성이 있다.

 

심 교장은 “아이를 무릎에 앉히고 책을 읽어주면, 아이는 부모의 목소리, 시선을 따라가며 이야기에 빠져든다”면서 “이야기가 궁금해서 끝날 때까지 앉아서 기다릴 줄도 안다”고 했다.

 

최근 교육부는 2022 개정 교육과정을 발표했다. 문해력 부족이 사회적인 문제로 떠오르자, 초등 저학년의 기초 문해력을 강화하기 위해 국어 수업 시수를 34시간 늘리기로 했다. 심 교장은 이번 변화가 반갑다고 했다. 다만, 변화가 유의미해지려면, 교육 활동의 중심에 ‘읽기’를 둬야 한다고 말했다.

 

“초등 저학년 때 소리 듣기가 중요하다는 것은 교육 현장에서 잘 알고 있을 겁니다. 선생님이 먼저 읽으면 아이들이 따라 읽고 했던 기억이 있을 거예요. 요즘은 찾아보기 힘든 풍경입니다. 지금도 그 방식이 통하냐고요? 소리 듣기는 예나 지금이나 중요합니다. 하지만 학교 교육을 신뢰하지 않는 시선 때문에 점점 위축됐다고 봅니다. 다시 책 읽어주기의 힘을 믿어야 합니다. 초등학교는 공부에만 매달릴 때가 아닙니다. 학습량을 늘리고 선행만 집중하면 얻는 것보다 잃는 게 많습니다. 차근히 읽기 수준을 높여주면 본격적으로 공부할 시기가 됐을 때, 급하게 많은 것을 시키지 않아도 얼마든지 따라잡습니다.”

 

심 교장은 책 읽는 아이로 키울 전략도 소개했다. △책에 흥미를 갖게 한다 △책을 읽어 준다 △TV, 컴퓨터, 스마트폰 등 독서를 방해하는 매체를 통제한다 △아이 주변에 책이 차고 넘치게 한다 △책을 읽고 나서 잘 읽었는지 확인하지 않는다 △책 읽을 시간을 확보해 준다 △독서 수준을 높여준다 △책을 꾸준히 읽고 있는지 살핀다 등 8가지다.

 

그는 “가정에서 책을 많이 읽어주지 못했다 하더라도 초등학교에 입학해 3년 동안 읽어주고 읽을 환경을 만들어주면 책 읽는 아이로 키울 수 있다”며 “이 시간을 기다려주지 못하면 아이의 능력은 영영 발휘할 기회를 잃게 된다”고 전했다.

김명교 기자 kmg8585@kfta.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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