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만 개의 푸른 점 우주에서 춤추네 환기미술관 

2023.03.06 10:30:30

별의 영향이라는 ‘influence’에서 유행성 감기 ‘influenza’가 탄생했다. 건배라는 뜻의 ‘mazeltov’는 ‘좋은 별자리’라는 히브리어에서, 고려하다라는 ‘consider’는 ‘행성과 함께’라는 뜻이란다. 옛사람들은 별에서 무수한 영감을 얻었나 보다.

 

머리 위의 은하수를 ‘밤의 등뼈’라고 멋지게 이름 붙인 !쿵족(!Kung San people: 느낌표를 앞에 붙이는 감성적 민족)도, ‘하늘을 덮은 가죽의 무수히 많은 구멍을 통해 쏟아지는 불꽃이 별’이라고 상상한 칼 세이건도 밤하늘 애호가 반열에서 빠질 수 없다. 

 

그리움으로 우주를 만든 남자


우리에게도 세계에서 둘째가라면 서러워할 별을 사랑한 남자가 있다. 그는 키가 크다. 190cm가 넘는다. 부인과 함께 찍은 사진은 그들의 트레이드마크이다. 부인이 가슴팍 정도에서 팔짱을 끼고 파리를 걷는 사진이다.

 

전남 신안군에서 지주의 아들로 태어났다. 늘 육지가 그리워, 하도 목을 빼고 육지를 바라봐서 키가 커졌단다. 그가 니혼대학 예술학부에 입학한 것은 1933년이었다. 부친의 반대가 심해 ‘수영을 해 부친 몰래 목포 가는 배를 타고 밀항’을 했단다.

 

예술에 목말라 바다를 건넌 것이다. 사실 처음에는 그림보다 문학에 이끌려 입학을 결심했다. 후일 문학과 미술을 아우르는 전천후 예술인으로서의 조짐은 이미 그때부터였다. 당대 한국문학을 들었다 놨다 하던 문학인들과는 니혼대 시절부터 절친이다. 작품에 내재한 서정성과 예술적 깊이는 그의 DNA와 친우들이 이루어낸 합작품이었다. 

 

수화(樹話) 김환기. 그는 일명 ‘버리는 자(者)’, ‘떠돌이’였으며, ‘끝없는 창조자’였다. 부와 명성을 버리고 오직 그리기 위해 일본으로, 파리로, 뉴욕으로 떠돌았다. 추상적 표현과 재료에 대한 탐구를 거듭하였다. 파피에마셰·발묵기법·전면점묘 등으로 특유의 예술세계를 쌓아나갔다.

 

그는 ‘향수병’을 앓았다. “나는 외롭지 않다. 나는 별들과 함께 있기에”라는 자조는 “나는 너무나 외롭다. 너무 멀리 있다”라는 절규처럼 다가온다. 화폭을 채워간 그리움이 천개·만개·십만 개, 우주의 탄생이었다. 그는 이토록 아름다운 ‘Universe, 우주(1971)’가 세계인이 사랑하는 우주로 탄생할 줄 미리 알았을까?

 

세상 떠나기 한 달 전 일기에는 ‘일하다가 내가 종신수임을 깨닫곤 한다. 늦기는 했지만, 자신은 만만’이라 쓰여 있다. 기꺼이 예술의 감옥에 자신을 유폐시켰던 그가 떠난 후, 부인은 상파울루에서 회고전(1975)을 열었다.

 

젊은 작가 발굴을 위한 재단도 설립했다. 1992년에는 서울 성북구 부암동에 ‘환기미술관’을 개관하여 어느덧 30여 년에 이르렀다. 

 

작대기로 땅바닥에 그린 그림이 시작이었다
‘자주 말하고 꿈꾸면 실현된다’는데. 환기와 향안이 땅바닥에 쭈그려 앉아 작대기로 그린 그림이 이곳의 시작이었다. 환기는 늘 “나는 이런 미술관을 지었으면 좋겠어”라고 이야기하였다. 향안은 잊지 않았다. 그녀는 절대로 잊지 않을 사람이다. 


환기와 향안의 삶은 전생에 자웅동체가 아니었나 싶을 만큼 전설적이다. 스물셋 어린 나이에 시인 이상과 결혼한 동림. 신혼이 끝나기도 전에 일본으로 건너간 남편은 폐결핵으로 사망하였다. 여기까지 보면 이후 펼쳐질 그녀의 삶이 매우 고단하리라 짐작된다. 홀로 지내던 동림은 1944년 아이가 셋인 환기와 결혼하려 한다.

 

친정의 거센 반대, 여기는 신파. 그러나 동림은 자신의 성을 환기와 같은 김 씨로, 환기의 호인 향안으로 개명하며 결혼에 이른다. 반전의 서막이다. 동림에게 자신의 호를 헌납한 환기는 이후 수화라는 호를 사용하였다. 


향안은 환기가 그림에만 전념하도록 모든 일을 처리하였다. 이화여대 영문과 재원이었던 그녀는 평소 파리로 가고 싶어 했던 환기를 위해 미리 프랑스어를 공부하였다. “내가 먼저 나가볼게”라며 환기보다 일 년 먼저 파리로 건너가 환기의 파리 정착을 위해 뛰어다녔다.

 

당시는 아직 6.25전쟁의 상흔이 가시지 않은 폐허뿐인, 무려 1956년이었다. “아내는 먹을 것이 있든 없든 항상 깨끗하고 명랑하다. 아내는 낙천가다. 나는 생활에 있어서나 그림에 있어서나 아내의 비판을 정직하게 듣는다.” 지독한 해피앤딩이다!


미술관 설계를 맡은 우규승은 건축의 축과 계곡의 방향을 일치시켰다. 공간의 흐름을 골짜기와 화해시킬 방법도 고민했다. 건물들 사이의 공간도 중요했다. 미술관은 건물과 공간이 함께 어우러지는 협업이므로. 산·달·구름·바위·나무는 무대배경이었다. 북한산성과 인왕산 등의 원경을 도입하면서도 벽을 동서로 배치하여 적절한 절제와 차단을 잊지 않았다.

 

미술관의 품격과 자연을 좋아하는 사람들의 발길이 잦은 이유이다. 세계적인 미술관을 소개한 저스틴 헨더슨(Justin Henderson)의 <Museum Architecture(미술관건축)>에 실리기도 하였다. 당시 한국 건축가의 작품으로는 유일하여 건축가들도 즐겨 찾는 명소가 되었다.
 
쪽마루 나무 한쪽도 그림의 결과 맞추어
건축가의 의도대로 환기미술관은 주변의 건물에 비해 돋보이려 하지 않는다. 인왕산을 바라보며 부암동 골목과 잘 어울려 예전부터 그곳이 터전인 듯 자리한다. 소박한 부암동은 미술관 품은 예술동네가 되었다. 게다가 평일에는 어찌나 고즈넉한지 마치 미술관을 통째로 빌린 듯 할 때가 자주 있다. 입구에서 정원을 지나면 본관과 별관, 수향산방(수화와 향안, 기념관) 세 채의 건물로 이루어진다. 


본관 내부에 들어서면 단조롭지 않은 변화의 느낌과 전시장의 높은 층고에서 오는 시원함이 밖에서 펼친 감탄사를 다시 터지게 한다. 오! 여기 좀 봐! ‘쪽마루의 나무 한쪽도 그림의 결과 맞추려’ 했다니, 정성의 갸륵함과 들인 공이 알게 모르게 관람객에게 전해지는 것 일게다.

 

한국의 산월 모티브에서, 1960년대 추상적 작품, 이후의 전면점화 등 환기의 작품 300여 점 앞에서 설렘과 두근거림을 누를 수 없다. 물론 ‘Universe, 우주’에 빠져 오랜 시간을 유영하다(이건 너무 고상한 단어이다, 그냥 끝없이 중심으로 빨려들어 허우적거리다, 휴우~) 문득 지구로 귀환하기도 몇 번이다. 


환기미술관에는 캔버스 위에 유화와 종이 위의 유화, 콜라주·과슈·데생·오브제 등 김환기의 뉴욕시대 대표작 1,000여 점과 생활유품·자료, 재단 작가들 작품까지 2,500여 점이 모셔져 있다. 향안은 미술관이 살아 움직이고 숨을 쉬길 바랐다.

 

특히 “시각적인 것과 음악적인 것, 시가 읊어져야 한다”며. 환기의 전 생애를 구현하려는 예술가적 풍모마저 느껴진다. 그녀의 이번 생은 다만 한 사람을 위해 불러내어진 듯하다. 진실로 추앙이란 이런 것이지 싶다.

 

예술적 감성과 지식을 아이들과 함께
환기미술관의 살아있는 활기는 아이들 교육에서 더욱 돋보인다. 환기는 평소 아이들 예술교육에 관심이 컸다. 때문인지 수향산방에서 이루어지는 교육프로그램이 끊이지 않는다. 환기의 그림 이야기를 통한 예술이해 키우기를 기조로 진행된 ‘해와 달과 별들의 이야기’전은 교과서에 소개된 환기의 작품을 전시하여 아이들에게 원작감상의 기회와 함께 그림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는 활동으로 꾸준히 진행되어왔다.

 

이 행사는 미술을 다른 교과와 확장 연계하는 진정한 융합의 모범이 되기도 하였다. 2022년에는 서울특별시 뮤지엄 페스티벌에 참여, 예술적 감성과 지식을 함께 향유할 수 있는 기회로 학부모와 아이들의 큰 호응을 받았다. 또 아트트리(ARTree) ‘사유공간 창작노트’, 어린이 아카데미 ‘아트띵크(ARThink)’ 등 미취학아동부터 초·중·고 학생들을 대상으로 한 전시해설과 ‘뮤지엄보이스’ 등 성인대상의 다양한 교육이 진행되어왔다.

 
환기미술관 30주년이었던 2022년에는 기념전 ‘미술관 일기’가 열렸다. 전시는 미술관에 방점을 찍어 지난 30년의 여정을 담아내었다. 그의 전 생애를 영상·사진 등으로 볼 수 있는 소중한 전시였다. 다국적 예술가들을 발굴하고 지원하는 사업 ‘Prix 환기’의 수상작들과 관람객이 선정한 인기 소장품들로 그간 환기를 사랑해온 관객을 향한 감사의 마음을 담아내었다. 수향산방에서 진행된 ‘우리끼리의 얘기, 환기미술관이 건립되기까지’에서는 이토록 멋진 미술관이 기나긴 사랑의 시간이 이룩한 성채임을 들려주었다. 

 

사전적 의미의 공명은 ‘물체의 고유 진동수와 일치하는 파동이 물체를 통과할 때 물체의 진동이 커지는 현상’을 말한다. 환기의 예술은 향안이라는 사랑을 통과하여 크나큰 진동으로 공명하며 세상에 퍼져 가고 있다. “지금 뉴욕은 바람이 불고 추워요. 그러나 봄이에요.” 환기는 외로움 속에서 봄을 기다렸었나 보다. 그의 목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글 양인숙 전 리라아트고등학교 교사 | 그림 박지숙 서울교육대학교 미술교육대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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