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가르치는 것’과 ‘가르치지 않는 것’ 

2023.06.08 10:30:00

지난봄 딸아이가 시집을 갔다. 결혼식장에서 나에게 인사를 올리며, 눈물을 비쳤다. 어릴 때 큰 시련을 겪으며, 나에게 인생에 대한 감사를 일깨웠던 아이다. 자라서는 내게 늘 따뜻한 대화 친구였다. 그 순간 나도 간신히 눈물을 참아내었다. 딸아이와 아프게 정들었던 세월은 이렇게 응축되어 ‘보석 같은 눈물’이 되나 보다. 마음에 오래 새겨지는 장면이었다.


그날 내 마음에 새겨진 장면은 ‘딸아이의 눈물’ 말고도 또 있었다. 그것은 주례를 맡으신 김기석 목사님의 주례사 말씀이었다. 딸아이의 눈물이 ‘감정의 울림’으로 새겨졌다면, 목사님의 주례사 말씀은 성숙한 인간과 삶의 태도를 불러오는 ‘이성의 울림’으로 새겨졌다. 명색이 교육학자인 나에게는 ‘교육적 성찰’의 한 부분으로 다가왔다.

 
주례 목사님은 신랑 신부가 살면서 두 개의 동사를 실천하며 살기를 주문했다. 그중 하나는 ‘우러러보다’이고, 다른 하나는 ‘바라보다’였다. 서로 우러러보고 바라봄으로써, 부부관계는 물론이고, 모든 관계를 복되게 이끌어 가라 하신다. ‘우러러보다’와 ‘바라보다’는 단순한 ‘보다’가 아니다. 거기에는 ‘어떤 마음’이 담겨 있다. 그 마음은 자못 진실하고 간곡하다.

 
나는 이 두 동사를 사전에서 찾아본다. ‘우러러보다’에는 ‘마음속으로 받들어 공경하다’라는 뜻이 있다. 우러러보려면 나를 낮추어야 한다. 몸의 위치도, 마음의 자리도 낮추어야 한다. 나를 낮추지 않음을 주체의 당당함으로 아는 세태에서 ‘우러러보다’는 사전에서 잠자는 말이 되어간다. 
 

‘바라보다’에는 가능성을 믿고 기다린다는 뜻이 있다. ‘바라보다’의 ‘바라’는 ‘바라다’와 상통한다. ‘바라보다’에는 상대를 향한 신뢰, 그리고 상대를 위한 인내가 아름답게 숨어 있다. 오늘날 일부 학부모들이 자녀의 성취를 재촉하면서 ‘바라보다’의 자세를 놓치고 있는 건 아닐까.

 

고백하건대 그때까지 나 또한 ‘바라보다’를 깊이 있게 생각해 보지 못했다. 맥없이 대상을 시선 안에 두는 행위 정도로 생각했다. 상대에 대한 신뢰와 인내로 그에 대한 기대를 조용히 기다리는 마음이 있어서, 마침내 ‘바라보다’에 이르는 것임을 몰랐다. 이렇듯 속 깊고 지긋한 ‘의미의 향기’가 ‘바라보다’에 있음을 미처 몰랐다. 나는 ‘바라보다’를 재발견한 것이다.

 

부부가 서로 우러러보는 시선을 눈으로도 향하고, 마음으로도 가진다면, 그 복은 고스란히 부부의 복이 될 것이다. 부부는 각기 발전하고, 또 함께 발전할 것이기 때문이다. 부부가 ‘눈의 시선과 마음의 시선’으로 서로 바라보기를 한다면, 그로 인한 복은 그 가정의 자녀들이 누릴 것이다. 영성 깊게 누릴 것이다. 그런데 그날 내게 꽂힌 것이 하나 더 있다. 

 

주례 목사님이 우러러보기와 바라보기를 말씀하시면서, 지나가는 말인 양, 한 문장을 덧붙였다. 그 한 문장이 오래도록 나를 건드렸다. 주례 목사님은 이렇게 말씀하셨다. 
“부부의 관계를 아름답게 발전시켜 나가려면 서로 우러러보기와 바라보기를 하십시오.” 이렇게 말씀하고서 한마디를 덧붙였다. 바로 이 문장이다. “아무 데서도 가르치지 않습니다.” 


상당히 중요한 것인데, 아무 데서도 가르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러고 보니 학교나 가정에서 힘주어 가르치지 않는다. 나도 이를 특별히 강조하여 가르친 것 같지는 않다. 목사님은 ‘우러러보다’와 ‘바라보다’, 이 동사 자체를 가르치지 않는다는 걸 말하려는 건 물론 아니었다. 이들 두 동사가 안으로 품고 있는 덕성의 자질과 인성의 요소를, 우리 사회가 너무도 소홀히 하고 있음을 말하려는 것으로 짐작된다.

 

실제로 권한과 권리, 저항과 분노, 비판과 개혁, 평등과 공정, 참여와 연대, 환경과 공동체 등의 가치들이 교육내용의 지도를 채우는 동안 정직·인내·존중·겸손·용서·양보·공경·헌신 등의 교육내용이 상대적으로 잘 보이지 않게 된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이들 내용은 서로 대체재가 아니라 보완재로 보아야 할 것 아니겠는가. 

 

근대 이후의 교육은 ‘가르칠 내용’을 어느 정도 명료화한다. ‘가르칠 내용’을 국가수준에서 기획하고 운영하기 위해서, 국가수준의 교육과정을 개발하고, 선포하고, 실현한다. 이렇게 정해진 ‘가르칠 내용’은 정당성을 부여받는다.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을 다 가르칠 수는 없기에 가르칠 내용을 선정하고 체계화하는 일은 불가피할지도 모른다. 

 

가르칠 내용이 명시적으로 확정되면, 여기에 들지 않는 내용은 자연스럽게 배제된다. 물론 인류가 전통적으로 중시해 온 보편의 지식과 문화는 쉽게 배제되지 않는다. 그렇게 해서 국가·사회가 추구하고자 하는 교육의 방향과 내용을 전략적으로 가다듬어 나갈 수 있을 것이다. 국가수준 교육과정의 역할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가르치는 내용’과 ‘가르치지 않는 내용’은 반드시 대립적으로 존재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서로 허용적일 수 있다. 유연하고 창의적인 교육의 형질은 이런 접근으로 확보되어야 한다. 한때 국어교육에서 표준말을 가르치는 데에 중점을 두고 방언은 가르치지 않았던 때가 있었다. 그러나 표준말과 방언은 깊은 상관성과 더불어 각각의 고유 가치가 있다.

 

지금은 이 둘을 모두 의미 있게 가르친다. 표준말만을 가르치던 때도, ‘가르치지 않는 방언’에 대해서 허용적 태도를 가진 선생님이 있을 수 있다. 음악과목을 양악(洋樂) 중심으로만 가르치던 때에, ‘가르치지 않는 국악(國樂)’에 대해서 고민하는 것은 필요하다. 가르치지 않는 것에 대한 고민이 식지 않는 교육과 사려 깊은 교육의 길이다.

 

그런 점에서 기획된 교육과정(planned curriculum)의 성패는 그것을 최종적으로 실천하는 교사의 ‘실행된 교육과정(realized curriculum)’에 달려 있다. 또 그런 점에서 ‘지금 가르치는 교육내용’과 ‘지금 가르치지 않는 교육내용’, 이 양자 사이의 상호성과 거리를 늘 냉정하게 견주어 보는 통찰이 우리에게 필요하다. 교육이 길러 주어야 할 능력 핵심이 기능(skill)에서 역량(competence)으로 넘어가는 대목에서야말로 더더욱 필요하다. 

 

일찍이 아이즈너(Eisner) 교수가 <교육적 상상력(Educational Imagination, 1979)>에서 말했던 영(零)교육과정(null-curriculum/공식 교육과정이 가르치지 않는 교육내용을 커리큘럼 총체의 차원에서 보려 했던 개념)은 산업분화 시대에만 유효한 것이 아니다. 선택과 배제가 더욱 긴밀하게 연결되고, 융합되고, 전략화되는, 4차 산업혁명 시대인 오늘날에는 더 유효한 개념이 되고 있다. 교육의 전체성 또는 교육의 조화 균형성에 대한 위기가 그만큼 더 증대되고 있음을 주목해야 할 것이다. 

 

‘가르치지 않는 것’에 대한 칼럼 원고를 쓰는 중, 마침 다가온 부모님의 기일(忌日) 준비를 하다가, 내 어머니의 6.25 체험 기록(1999년 작성) 하나를 대면한다. 읽어 보니, 1950년 8월경, 스물한 살 나이에 나를 태중에 가지고, 대구 남방 경산 어느 지역으로 피난 가셨을 때의 체험이다. 이런 기록에 담긴 6.25의 역사는 이제 잊어도 되는 걸까. 

 

이걸 여기 소개하면 칼럼의 사족(蛇足)이 될까 염려하다가, 마침 이달이 호국의 달 6월이라, 이런 내용을 ‘가르치지 않는 것’에 묶어두지 말고, ‘가르치는 것’과 상호성을 발휘하면, 유효한 교육내용이 될 수 있다는 판단이 생긴다. 긴 글 중에서 한 문단만 가져와 본다.

 

내가 피난 와서 임시로 사는 동네 뒷산에는 수십여 명쯤 되는 소년병들이 1~2주일가량 훈련을 받고 간다. 하루 내내 어딘가에서 훈련을 하고, 초저녁이면 모닥불을 피워 놓고 군가를 부르면서 젖은 옷을 말린다. 멀찌감치 보노라면, 우는 군인도 있다. 피난처에서 징집되어 총만 쏠 줄 알면, 일선 전선으로 간다고 한다. 얼마나 살아 돌아올까. 원을 둥그렇게 그리고, 어깨동무하고 빙빙 돌면서 부르는 노래, 나는 지금도 그 모습 그 노래를 잊지 못한다.  “이 몸이 죽어서~ 나라가 산다면~, 아아~, 이슬같이~ 죽겠노라.”

 

6.25를 ‘가르치지 않는 내용’으로 밀쳐 두지 않았으면 좋겠다. 새삼 무슨 적개심을 가르치자는 것이 아니라, 만약 6.25가 없었다면, 북의 침략전쟁이 없었다면, 그래서 한반도에 전쟁이 없었다면, 우리는 진작에 통일이 되고도 남았다. 동족상잔의 시퍼런 상처를 유족들이 가족사로 생생하게 지니는 동안 통일은 성큼 다가오기 어렵다. 그러니 이제는, 앞으로는, 그 어느 편도 다시 전쟁을 일으키면 안 된다. 민족과 역사에 죄를 짓는 일이다. 이런 정도로 가르칠 수는 없겠는가.
 

박인기 경인교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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