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촌 사람들] 당신이 몰랐던 이탈리아, 우리가 진정으로 즐겨야 할  마르케(Marche)

2023.09.05 10:30:00

 

이탈리아 중북부에 자리한 마르케. 부드러운 곡선의 언덕과 찬란한 햇살이 쏟아지는 아드리아해를 만날 수 있는 곳. 맛있는 음식과 향기로운 와인을 즐기며 라파엘로와 로시니를 탐했다. 

 

마르케(Marche)는 이탈리아 중·북부 동해안에 자리한 주다. 우리나라로 치면 강원도쯤 된다. 아드리아해와 마주하고 있는 이곳은 이탈리아 사람들이 길고 긴 여름휴가를 즐기는 곳으로 잘 알려져 있다. 마르케에 별장을 두고 있는 이탈리아인들도 많다. 몇 시간을 달려도 끝없이 이어지는 온화한 곡선의 구릉지대. 그 위를 느릿느릿 흘러가는 구름그림자. 이 풍경을 따라가다 보면 마음이 절로 순해지고 느긋해진다.
 
맛있는 음식과 향긋한 와인
푸른 하늘에 양떼모양의 흰 구름이 느릿하게 흘러간다. 어디선가 바람은 불어와 깃털처럼 생긴 미루나무를 흔들어 댄다. 이런 날씨에 ‘완벽하다’는 찬사를 붙여주지 않는 것은 불경이다. 사람들은 저마다 완벽한 날씨를 즐기기 위해 최선을 다하는데, 짙은 그늘에 앉아 와인을 마시는 일 역시 최선의 방법 가운데 하나일 것이다. 


이탈리아 여느 지역이 자랑할 만한 와인을 가지고 있듯 마르케 역시 마찬가지다. 우르비노(Urbino)·안코나(Ancona)·페르모(Fermo)·페사로(Pesaro)·아스콜리 피체노(Ascoli Piceno) 등 마르케주의 여러 도시를 여행하며 다양한 와인을 맛보았지만, 예시(Jesi)라는 중세 도시에서 맛본 베르디키오(Verdicchio) 와인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 베르디키오는 ‘푸르다’는 뜻의 ‘베르데’에서 비롯됐다. 이 말에서 알 수 있듯 포도에는 푸른빛이 돈다. 와인잔을 코끝에 대고 깊은숨을 들이켰다. 상쾌하면서도 분명한 신맛을 가진 향이 파고들어 미간을 살짝 찡그리게 만들었다. 


“베르디키오는 숙성력이 탁월합니다. 빈티지가 좋기만 하면 10년은 너끈하게 묵힐 수 있죠. 잘 숙성된 베르디키오에서는 농익은 사과 향이 난답니다. 양조장에 따라서는 포도를 늦게 수확하기도 하는데 이는 산도를 낮추고 당도를 높이기 위해서죠.”


가이드의 설명을 들으며 시음해 본 베르디키오는 정말 맛있는 포도주였다. 깊은 맛은 없었지만 아주 상큼하고 향기로웠다. 금방 빚어 내놓은 것 같았는데, 아몬드 향이 나는 것도 같았고 여름의 쌉싸름한 풀 향도 섞여 있는 것 같았다.  


이탈리아를 여행하다 보면 이탈리아인들은 다들 별로 일을 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된다. 몇 번 이탈리아 여행을 하며 깨닫게 된 것인데, 그들은 정말 쉬는 틈틈이 아주 잠깐씩 일을 한다.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아침이면 점심에 먹을 음식에 대해 이야기하고 점심을 먹을 때는 저녁에 나올 요리에 대해 이야기한다. 그렇다면 저녁 식사 시간에는 어떤 이야기를 나눌까. 맞다. 내일 먹을 요리와 축구 그리고 휴가에 대해 이야기를 나눈다. 그러다 보면 어느덧 밤  11시가 되고 볼에 키스를 나누며 각자의 집으로 돌아가는 것이다.


 

안코나에서 맛본 탈리아텔레(Tagliatelle), 우르비노에서 맛본 알리오 올리오와 치즈 그리고 송아지 스테이크, 아스콜리 피체노에서 먹었던 아스콜라나 올리브(Olive Ascolana) 튀김도 잊을 수 없다. 이 음식들만 생각하면 아직도 입 속에 침이 가득 고인다.


특히 아스콜라나 올리브. 이 음식은 올리브를 튀겨낸 단순한 요리로 마르케의 대표 음식이다. 올리브 씨를 빼고 그 안에 소고기·돼지고기·닭가슴살·채소·토마토·육두구 같은 것을 버무린 소를 채우고 얇은 튀김옷을 입혀 튀긴다. 고대 로마 시대부터 병사들이 즐겨 먹은 음식인데, 짭조름함 맛과 고소한 기름 맛이 어울려 중독성을 불러일으킨다. 물론 맥주나 와인과 함께 먹어야 풍미를 제대로 느낄 수 있다. 마르케를 여행하는 동안 허리띠가 한 칸은 늘어났는데, 주범은 아마도 시도 때도 없이 먹어댄 아스콜라나 올리브 때문일 것이다.
 
르네상스 미술의 걸작과 만나다
마르케에 우르비노라는 도시가 있다. 주도인 안코나보다 더 유명하다. 우르비노가 유명한 이유는 화가 라파엘로 때문이다. 레오나르도 다 빈치, 미켈란젤로와 함께 르네상스 시대의 3대 거장으로 꼽히는 그는 19세기 초 신고전주의 양식이 유행하기까지 3세기 이상 서구 회화의 지존 자리를 지킨 인물. 1483년 이곳에서 태어났다.


우르비노에서 미술수업을 받던 라파엘로는 궁정화가였던 아버지가 세상을 등지자 1504년, 피렌체에 입성한다. 괴팍하고 과격한 미켈란젤로에게 염증을 느끼던 사람들은 사근사근한 성격의 라파엘로에게 마음을 빼앗기기 시작한다. 초상화를 그려달라는 주문이 쇄도했고, 심지어는 그를 추기경으로 선출하자는 의견까지 나왔다고 하니 그의 인기가 어느 정도였는지 짐작할 수 있다.  


 

게다가 그는 미남이었다. 라파엘로의 자화상을 보면 그가 얼마나 여리고 섬세한 외모의 소유자였는지 단박에 알 수 있다. 길고 섬세한 콧날, 부드러운 곡선으로 흘러내리는 턱, 그리고 순하고 맑은 눈. 하지만 운명의 여신에게 질투를 샀던 것일까. 그는 한창나이인 38세에 요절했다.

 

라파엘로는 많은 여인을 사랑했는데 바사리에 따르면, 연애가 그를 죽음에 이르게 했다고 말해도 될 정도로 절제하지 않고 연애에 몰두했다고 전했다. 그리고 그 중심에 마르게리타 루티(Margherita Luti)가 있었다. 그는 이 여인의 모습을 ‘라 포르나리나’, 그러니까 ‘빵집 딸’이라는 제목의 그림으로 그리는데 이 여인이 500여 년이 지난 후에야 라파엘로의 연인이었다는 사실이 밝혀져 미술계가 발칵 뒤집히기도 했다.


우르비노 시내에는 14세기에 지어진 라파엘로 생가(Casa di Raffaello)도 있다. 중정을 품은 3층짜리 저택에는 생전에 그가 사용하던 가구들이 그대로 놓여 있고, 화구를 놓곤 했던 자리들이 고스란히 남아있다. 


 

우르비노는 르네상스 시대의 전성기를 이룩한 도시기도 하다. 유네스코는 1998년 우르비노를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했는데 아마도 중세의 모습을 잘 간직하고 있다는 점을 높이 평가했을 것이다. 우르비노의 전성기를 이룩한 주인공은 페데리코 다 몬테펠트로(Federico da Montefeltro)다. 이탈리아 최고의 용병으로 활약하던 그는 엄청난 부를 축적했고 그 돈으로 르네상스 초기에 지어진 궁전 중 가장 아름다운 모습을 자랑하는 두칼레 궁전(Palazzo Ducale)을 지었다. 


페데리코는 무식한 용병 군주가 아니었다. 그는 전형적인 르네상스 시대의 군주였다. 이탈리아 역사는 그를 ‘성공한 용병 장군’이 아닌 ‘The Light of Italy’로 기억한다. 그는 궁을 장식하기 위해 당대 최고의 미술가들을 초청했고 수많은 화가와 건축가·공예가·조각가들이 이곳에서 자신들의 재능을 발휘했다. 라파엘로를 비롯해  ‘회화의 군주’로 불리는 티치아노의 작품들, 피에로 델라 프란체스카의 걸작 ‘세니갈리아의 성모’ 등 눈부신 ‘르네상스 컬렉션’을 만날 수 있다.  


오페라로 풍성한 마르케
우르비노에서 자동차로 1시간 떨어진 페사로(Pesaro)는 인구가 10만도 채 되지 않는 작은 도시. 지중해의 바다를 옆에 앉힌 이 다정한 도시는 ‘세비야의 이발사’를 작곡한 남자 로시니가 태어난 곳이다. 시내 한편에는 1882년 로시니의 유산으로 세운 로시니 음악학교(Conservatorio di Musica)가 있다. 학교를 기웃거리다 어느 피아노실을 엿보게 되었는데, 호기심 어린 낯선 여행자를 발견한 학생은 ‘세비야의 이발사’의 한 대목을 신나게 연주해 주기도 했다.


로시니만 보고 페사로를 나오기가 아깝다면 페사로 해변을 찾아 뜨거운 마르케를 만나보자. 유럽에서도 인기 있는 해변이다. 각양각색의 파라솔이 빼곡하게 늘어선 해변은 마치 해운대에 온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해안을 따라서는 화려한 클럽과 부티크 호텔들이 늘어서 있다.
 

최갑수 시인·여행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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