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일 제43회 스승의 날. 스승과 제자들은 올해도 변함없이 만난다. 제자들이 스승을 모시는 것이다. 혹여나 스승의 날, 다른 제자들에게 스승을 뺏기면 아니되기에 만남 약속을 한 달 전에 해놓았고 초교 동기들에게 공표하였다. 바로 윤영섭(77) 스승과 구성초교 34회 제자(66)들을 두고 하는 말이다. 교육자 출신인 필자는 이들의 만남을 동행 취재하였다.
주인공은 인천교대(지금의 경인교대)를 졸업하고 1968년 3월 1일 구성초교에 부임하여 4학년 1반을 담임하였다. 이후 5학년과 6학년을 연이어 맡았다. 21살 총각교사가 첫부임지에서 3년간 담임을 한 것. 그는 아이들에게 온갖 정성을 다했다. 1971학년도는 생애 최초로 가르친 아이들을 중학교에 입학하는 해였다. 중학교 입학한 제자들이 타 초교 출신과 비교되기에 보다 많은 것을 안겨주고 싶은 넘치는 교육애다. 당시 학부모들은 농촌 일에 자녀를 돌볼 여력이 없었다. 그는 학업 시간 종료 후 저녁 늦게까지 학생들을 가르쳐 제자들의 교과실력을 쌓아주었다.
교사의 마음이 학생들에게 통했을까? 가르친 제자들은 자기 절차탁마를 꾸준히 하여 대학교 교수를 비롯하여 항공사 기장 등 사회의 중요 역할을 담당하는 역군이 되었다. 지금 제자들은 66∼67세 노인이 되어 인생의 길을 같이 걸어가고 있다. 졸업 후 무려 50여 년이 지난 현재에도 매년 스승의 날에는 동창 임원들과 함께 인생을 논하면서 옛 스승을 잊지 않는 제자들의 마음 씀씀이에 교직의 보람을 느끼고 있다.
비 오는 오후, 수원시 조원동 벽산아파트에 최재영 동창회장이 자가용으로 스승을 모시러 왔다. 최 회장은 지인들에게 “스승을 만난다”하면 “아직도 초교 선생님이 살아 계시냐?”고 되묻는다고 한다. 스승이 살아계시기에 행복하고 같이 늙어가는데 스승님이 젊게 보여 동창회에서는 누가 스승이고 제자인지 구분이 안 간다고 한다. 오랜만에 나온 어떤 친구는 스승님을 보고 어깨를 툭 치면서 “야, 오랜만이다. 너 이름이 뭐지?”하여 좌중을 웃음바다로 만들었다.
40여 분 후 차량이 도착한 곳은 ○○정원. 잠시 후 여섯 명의 제자들이 스승과 반갑게 재회했다. 수원, 용인, 남양주 등지에서 찾아온 것. 면면을 보니 동창회 임원과 스승을 존경하는 제자들이다. 식사를 하면서 담소를 주고 받는다. “선생님은 굉장히 엄하셨다. 우리는 하루에 한 두 차례 혼나는 것이 일상이었다. 한겨울에 운동장 돌기를 한 것이 기억에 남는다. 우리는 선생님이 밉기도 했지만 교육 열정을 고맙게 받아들였다. 멍이 든 종아리를 본 부모님도 오히려 훌륭한 선생님 만났다고 좋아하셨다.” 지금과는 시대상황이 다르지만 최충식 제자가 기억하는 당시 상황이다.
카이스트를 졸업하고 아주대학교에서 33.6년 근무하다 지난 2월 정년퇴직한 김상배 교수는 “여름방학 중 선생님의 지도로 과학실험실기대회에 나갔는데 용인 대표로 선발되어 인천대회에 출전할 때 숙식을 제공해 주시고 식물도감을 챙겨주셨다. 선생님 영향으로 과학에 뜻을 두게 되어 공학교수가 된 것 같다”고 선생님께 고마움을 표시했다. 주인공은 김 교수가 광전자공학 전공으로 퇴직 후에도 국가인재로 활동하고 있다고 전한다.
주인공 교직생활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일은 30대 후반 나이에 20대 제자들의 주례를 선 것. 초교 담임시절 반장 학부모로부터 아들 결혼 주례 제안을 받고 너무 당황했다. 선생님 덕분으로 아들이 잘 자라 결혼하게 되었으니 요청을 들어 달라는 것이다. 주례는 첫 경험으로 무척 설레고 망설였으나 어쩔 수 없이 받아들여 그 후 같은 반 친구 4명을 차례로 주례를 섰다. 초교 담임으로서 제자 5명의 주례를 선 것은 흔치 않은 일이다.
주인공에게 교직생활 중 제자들에게 강조한 사항, 교직관, 인생관 등을 여쭈었다. 그는 “인간의 능력은 개인마다 상당한 차이가 있음을 알고 자신만이 지니고 있는 장점은 무엇이며 특성을 발굴하여 최선의 노력을 다할 때 희구하는 성취감을 얻게 된다”고 제자들에게 강조했다. 교직관은 “교육을 통하여 더불어 살아가는 사회에서 타인에 대한 배려심을 생활화할 수 있는 마음의 여유를 지니도록 하자”이다. 인생관은 “가화만사성(家和萬事成)의 의미를 익히고 알찬 가훈 속에 가족간의 애정을 우선으로 하는 행복한 가정”이라고 말한다.
이날 제자들은 스승의 은혜에 감사하는 의미로 호접란 화분과 선물, 촌지를 드렸다. 여기서 급반전이 일어났다. 주인공이 작은 편지봉투를 준비해 전달한 것. 봉투 겉면에는 “34회 동창회의 무궁한 발전을 기원합니다” 우리가 알고 있는 금일봉이다. 스승의 날에 스승은 선물 받는 것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제자들에게 사랑을 베푼다. 세상을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행동으로 보여주는 장면이다.
윤영섭 선생님은 경기도내에서 42년간 봉직, 안산 상록초교, 수원 조원초교에서 교장을 역임했으며 경기도과학교육원에서 교육연구관으로 정년퇴직했다. 이후 제2인생으로 한빛사랑복지센터를 운영하면서 매주 금요일 독거노인에 대한 도시락 반찬 나눠주기 등 20여 년간 사회 봉사활동을 전개하고 있다. 거동 불편 어르신의 삶의 질을 향상을 위한 장기요양보험제도의 방문요양 재가복지센터를 운영, 전국 재가복지센터 평가에서 연속 3회 최우수기관으로 선정되어 타기관의 모범이 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