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중해성 기후를 만끽할 수 있는 산토리니, 고대 문명의 정수인 아테네, 자연경관과 신비로운 종교적 성지가 조화를 이룬 메테오라까지 그리스는 지리교사와 역사교사의 니즈를 충분히 충족시켜 줄 수 있는 최고의 신혼여행지였다. 푸르렀던 에게해와 푸른 돔과 하얀 외벽, 단순히 돌덩이들이 아니었던 세계문화유산 1호, 그저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경이로웠던 수도원 여행 속으로 초대합니다.
푸른 돔과 하얀 외벽, 로맨틱한 분위기 그 자체 … 산토리니 이아 마을.
경유시간까지 포함하여 30시간에 걸친 장기간 비행 끝에 도착한 곳은 그리스의 산토리니였다. 교과서 속 지중해성 기후와 관련된 사진은 항상 그리스의 산토리니였기에 지리교사인 내가 죽기 전에 꼭 가보고 싶은 곳은 항상 이곳이었다.
산토리니의 관광지는 크게 피라(Pira) 마을과 이아(Oia) 마을로 나뉜다. 이아 마을은 청량하고 건강한 이미지를 강조하는 일본 음료 브랜드 포카리스웨트의 촬영지. 이아 마을의 하얀 벽과 파란 지붕 그리고 에게해를 배경으로 한 맑은 하늘이 머릿속에 그려지면서 도착과 동시에 ‘라라라라라라라~’ 콧노래가 절로 흘러나오는 곳이다. 이아 마을의 상징적인 하얀 벽은 지중해성 기후의 특징인 여름철 강한 햇빛을 반사하여 실내를 시원하게 유지하기 위해서이며, 파란 지붕은 전통적인 그리스 정교회 건축양식에서 비롯되었다. 실제로 파란 돔 부분을 자세히 살펴보면 윗부분에 십자가가 존재해 예배당이나 교회의 지붕임을 알 수 있다.
이아 마을은 공항으로부터 안쪽에 위치해 접근성이 좋지 않은 환경임에도 불구하고 숙소 값이 피라 마을에 비해 2배 이상이다. 하지만 전 세계 여행객들은 ‘이아 마을에서의 1박’을 꿈꾼다. 그 이유는 이아 마을 숙소들은 대부분 동굴 호텔로 산토리니를 찾는 관광객들에게 특별한 숙박 경험을 제공하기 때문이다. 이아 마을은 화산 폭발로 형성된 산토리니섬의 칼데라 경사지에 위치한 독특한 마을인데, 마을의 기반암이 화산재가 굳어진 암석으로 이루어져 있어 자연적으로 동굴 형태의 공간을 만들기에 적합했고, 여름에는 시원하고 겨울에는 따뜻하고 아늑한 환경을 제공해 지중해성 기후조건에 적합한 주거형태였기 때문이다. 동굴 호텔의 뷰는 100% 에게해 뷰로 로맨틱한 산토리니를 만끽할 수 있는 최고의 경험을 제공한다.
우리도 1년 전에 겨우 예약한 파란 지붕 아래 하얀 외벽의 동굴 호텔 숙소에 체크인을 하고, 근처 식당으로 이동해 산토리니 야경을 만끽하며, 그리스 전통음식인 무사카와 그릭샐러드 그리고 로컬 와인인 아틀란티스를 시켰다. 무사카는 고기와 감자 그리고 가지를 층층이 쌓고 페타치즈를 얹은 후 베사멜소스를 뿌려 굽는 그리스 전통음식이었는데, 한국에서 맛보지 못한 그리스의 맛은 색달랐다. 로컬 와인 한잔에 산토리니 야경을 눈에 담는 그 순간은 평생 잊지 못할 한 장면일 것이다.
매일 아침 이아 마을의 일출과 매일 저녁 이아 마을의 일몰은 윈도우 배경화면에 나올법한 모습들이 펼쳐졌고, 작은 골목길 곳곳의 기념품 상점들과 당일치기로 다녀오기 좋았던 피라 마을까지 여유롭게 마을과 그 속의 풍경을 만끽하며, 지리교사로서의 존재 이유를 찾는 일정이었다. 이아 마을로 가는 택시에서 택시기사의 “이아는 유니크한 곳이에요”라는 말처럼, 만약 어디에서도 볼 수 없는 ‘장소성’을 느끼고 싶다면 단연코 이아 마을로 떠나야 한다!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1호가 있는 곳, 아테네
어렸을 적부터 역사를 좋아했던 나는 그리스·로마신화를 읽으며 ‘도시 자체가 역사박물관인 아테네를 언제 가볼 수 있을까? 교과서 속 아고라는 언제 볼 수 있을까?’ 기대하며 살았던 것 같다. 역사교사인 남편도 마찬가지란다.
산토리니에서 아테네까지는 비행기로 40분 거리. 작은 비행기를 타고 잠깐 눈만 감았다 뜨면 아테네에 도착한다.
페리를 타고 이동하기도 하지만, 우리는 짧은 신혼여행 일정상 비행기를 선택했다. 아테네를 조금 더 편하고 저렴하게 둘러보는 방법은 ‘아테네 통합권’이다. 통합권을 구매하면 7가지 유적지(아크로폴리스·제우스신전·고대 아고라·로만 아고라·아리스토텔레스 학교·하드리아누스 도서관·케라메이코스)를 성수기에 줄을 기다리지 않고 통합권의 혜택을 톡톡히 누릴 수 있다.
도시 한복판에 이렇게 소중한 유적지가 있을 수 있는 것일까? 하며 한참을 ‘대박! 대박! 대박!’을 외치며 나를 서 있게 만들었던 하드리아누스 도서관은 돌덩어리라고 하기에는 너무 웅장하고 멋있었다. 그리스 일부 유적들은 복원하지 않고 그대로 두기 때문에 예전의 도서관 모습을 혼자 상상하는 재미가 컸다.
고대 로마시대 시민들의 생활 중심지였던 곳으로 카이사르와 아우구스투스가 세운 ‘로만 아고라’, 1896년에 세운 최초의 현대적인 올림픽 경기장인 ‘파나티나이코 올림픽 경기장’, 고대 그리스인들이 실제로 생활했던 공간이었던 ‘고대 아고라’ 등 너무나도 볼거리가 가득해 종합선물세트를 받은 느낌이었다.
그리고 대망의, 아테네 핵심인 아크로폴리스에 첫발을 내디뎠을 때의 그 설렘은 평생 잊지 못할 것 같다. 유네스코 세계유산 엠블럼에도 파르테논 신전이 있다는 사실! 그 장소에 내가 오다니! 아크로폴리스는 ‘높은 도시’라는 의미의 그리스어로 고대 그리스 도시국가에서 방어와 종교적 중심지 역할을 했던 고지대 지역이다. 도시의 정치·종교·문화적 중심지로 기능했기에 상징적인 건축물들이 많이 남아 있다.
161년에 세운 극장이자 공연장인 ‘헤로데스 아티쿠스 극장’은 현재도 공연장으로 사용됨에 있어 손색이 없는 극장이기에 어떻게 그 시대에 만들 수 있었을까 상상하며 역사 앞에 겸손해지는 현장이었다.
최초의 석조극장으로 반원형 형태를 띠는 ‘디오니소스 극장’, 나이키의 상징이 되었던 ‘아테네 니케 신전’, 이오니아 양식의 작은 신전이지만 6명 소녀상의 정교함을 엿볼 수 있는 ‘에렉테이온 신전’, 아테네의 강대함을 그리스 전역에 알리기 위해 만들어진 황금비율 그 자체 ‘파르테논 신전’까지 아크로폴리스는 단순히 유적지를 넘어서 고대 문명의 정수로, 다층적인 의미를 갖는 공간으로, 현대인들을 만나가고 있었다. 타임캡슐을 타고 역사여행을 떠나고 싶다면 바로 아테네로 떠나야 한다! 아테네에서는 그 니즈가 충족될 테니까!
그리스의 하이라이트 메테오라
메테오라는 ‘공중에 떠 있다’라는 그리스어이다. 자연의 경이로움과 인류의 종교적 헌신이 어우러진 독특한 장소로 그리스 중부 테살리아 평원 위로 솟아오른 거대한 암석들과 그 위에 세워진 수도원들로 유명한 지역이다. 메테오라를 처음 만난 느낌은 중국의 계림을 떠올리게도 하고, 스페인의 몬세라트 수도원을 연상하게 하는 곳이었다.
메테오라를 만나기 위해서는 아테네 라리사역에서 기차로 왕복 8시간의 대여정이지만, 어디에서도 볼 수 없는 경관을 보여주는 곳이다. 메테오라에는 한때 24개의 수도원이 있었으며, 현재는 6개의 수도원이 남아 있고, 이들은 모두 암벽 위에 세워져 있다. 수도승들이 세속적 유혹에서 벗어나 고요한 종교생활을 추구하기 위해 암석 위에 수도원을 건립했다고 한다.
지금은 계단과 다리를 통해 쉽게 접근할 수 있지만, 과거에는 암벽 위에 수도원을 세우는 것은 물론 수도승들의 이동에도 로프·사다리·바구니 등을 사용했다고 한다. 수도원마다 휴무일이 있어서 휴무가 아닌 수도원을 들러야 하는 것이 포인트이다. 우리는 총 3개의 수도원을 다녀왔다. 수도원마다 개성이 있다고 가이드분께서 설명해 주셨는데 수도원마다 뚜렷한 개성이 드러났다.
수도원 중 가장 낮은 곳에 있어서 큰 힘을 들이지 않고 둘러볼 수 있는 수도원인 ‘성 니콜라스 아나파프사스 수도원’은 가장 낮은 곳이라고 하지만 계단은 상당히 가팔랐다. 수도승들의 짐을 옮길 때 사용했던 도르래가 곳곳에 보였고, 수도원 내부에는 프레스코화와 그리스 정교의 모습이 가득한 ‘찐하고 쨍한’ 예수상들이 많이 보였다. 메테오라 지역에서 가장 유명한 수도원인 ‘대 메테오라 수도원’도 가볼 수 있었다.
14세기에 성 아타나시우스 수도사가 세운 이 수도원을 보며 종교가 없는 나에게 ‘종교의 힘은 무엇일까’라는 생각에 잠기게 하였다. 가장 접근하기 힘든 ‘트리니티 수도원’은 영화 <007>의 배경으로 등장하여 더 유명해졌다고 한다. 높은 위치에 있어 접근하기 힘든 것은 물론 130여 개의 계단을 올라가야 입장 자체가 가능하다. 그 말은 트리니티 수도원에서 바라보는 풍경은 어떤 풍경과도 비교 불가라는 말이다.
메테오라는 단순히 자연의 경이로운 풍경이 아니라, 인간의 종교적 신념과 자연과의 공존을 보여주는 정말 독특한 장소였던 것 같다. 메테오라는 수도승의 생활방식과 신앙의 지속성을 보여주고 현대에 이르기까지 그리스 정교회의 정체성과 전통을 이어 나가는 잊지 못할 장소였다.
5박 7일 동안의 그리스 여행은 지리교사와 역사교사의 니즈를 충분히 만족시키는 여행이었다. 교사들의 여행은 단순히 나만을 위한 여행이 아니라, 학생들에게 간접 체험을 할 수 있게 하는 소중한 수업자료 수집의 장이기도 하다. 우리 역시 신혼여행을 알차게 즐기면서 동시에 각자 휴대폰으로 수업자료를 담기에 전념이 없었던 여행이었던 것 같다. 그리스에서는 지리와 역사적으로 많은 수업자료를 담아올 수 있었다. 그리고 이 소중한 경험을 우리 학생들에게 나눠줄 생각에 설레었던 여행이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