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 韓 “戰後 과거사는 덮고 현대사는 疏略”

2005.03.02 13:30:00

한・중・일의 과거사 인식과 국가 청사진

日 전후배상 문제 흐지부지된 국내·외적 원인 서술 中 중화인민공화국사, 근·현대사의 절반 이상 차지
일본의 패졀?한국전쟁을 거치면서 동아시아 사회는 ‘식민체제’에서 ‘냉전체제’로 바뀌게 되었다. 그 결과 전후(戰後)처리 문제는 복잡해지기 시작했다. 상식적인 의미에서의 전후처리 문제는 식민모국(母國)이었던 일본이 패전과 더불어 피식민지 국가들에게 가한 고통과 피해에 대해 응분의 배상과 보상을 하는 것이다. 그러나 냉전체제가 등장하면서 두 주역인 미국과 소련은 전후배상 문제보다는 각자의 진영을 굳건히 해서 체제를 유지・확산하는데 중점을 두었다. 동아시아의 각국도 자본주의 진영과 사회주의 진영으로 귀속되었다.
냉전체제의 등장과 미・소의 동아시아 냉전정책은 분명 일본으로 하여금 전후배상의 멍에를 벗어버릴 수 있게 해주었고, 일본인으로 하여금 침략전쟁에 대한 뼈아픈 반성으로부터 자유롭게 만들어주었다. 유럽에서의 독일과 달리, 일본은 배상 대상국인 중국과 한국이 아니라 제3자인 미국과 소련에 의해 직접적으로 패망한 결과, 배상 대상국에 대한 종래의 경멸적 인식을 바꾸려고 하지 않았고 배상과 보상 문제도 외면해왔다. 상술한 이유로 동아시아의 전후처리 문제는 흐지부지되고 말았다. 그 결과 ‘과거’문제로 발목이 잡혀있는 동아시아 사회의 ‘미래’는 밝지 못하다.


<わたしたちの中學社會> 東京: 日本書籍, 平成 14년(2002) 205쪽
일본 정부에 사죄와 보상을 요구하고 재판을 열게 만든, 정신대 출신 한국인 김학순 할머니.


과거청산 문제와 관련하여, 일본의 중학교 역사 교과서에서는 ‘일본의 전후처리’라는 칼럼을 따로 설정해서 ㉠1951년 ‘샌프란시스코 강화회의’에서 미국이 일본에게 배상을 요구하지 않기로 결정하고 다른 나라들을 설득했기 때문에 많은 나라들이 미국의 방침을 따랐다는 점, ㉡ 아시아 여러 나라에서 이 방침에 반발하자, 배상을 요구하는 나라들은 일본과 교섭을 통해 배상협정을 체결하도록 했고, 이에 따라 일본정부는 미얀마・필리핀・베트남・인도네시아에게 배상을 했다는 점, ㉢소련은 1956년의 ‘일・소 공동선언’에서, 중국은 1972년의 ‘일・중 공동선언’에서 각각 배상을 요구하지 않기로 했다는 점, ㉣한국도 1965년의 ‘일・한 기본조약’에서 배상을 요구하지 않는 대신 일본정부가 경제 원조를 하기로 했다는 점 등을 열거함으로써, “일본정부는 배상 등의 전후처리 문제가 기본적으로 끝났다는 입장에 서 있다”는 점도 분명히 밝히고 있다.

그러면서도 다음과 같은 이유로 과거사 문제가 여전히 ‘진행형’임을 솔직하게 밝히고 있다. 즉 ㉠일본에는 “일본한테 피해를 입은 개인이 보상을 요구하는 권리까지 빼앗을 수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다”는 점, ㉡실제로 강제 연행된 사람들, 위안부 여성, 남경대학살 희생자들이 일본정부의 사죄와 보상을 요구하고 잇따라 재판을 열고 있다는 점, ㉢이 문제 때문에 일본과 아시아 각국 사이에서는 ‘역사인식’이 커다란 외교문제로 되고 있다는 점, ㉣전후 일본정부는 만주사변 이후 일련의 전쟁이 ‘침략전쟁’이었다는 것을 명확한 형태로 인정해오지 않았기 때문에, 아시아 여러 나라에서는 일본에 대한 뿌리 깊은 불신감이 남아있다는 점, 그래서 ㉤1995년 무라야마 일본수상이 전후 50주년 담화에서 “‘침략’에 의해 아시아 여러 나라가 많은 손해와 고통을 당했다”는 점을 밝혔지만, 일본 국내에는 과거의 전쟁을 ‘침략전쟁’이라고 생각하지 않는 사람들도 존재하고 있다는 점, 그 결과 ㉧‘역사인식’의 문제는 지금까지도 커다란 논쟁거리로 될 만큼 중요한 문제라는 점을 밝히고 있다.
다른 교과서에서는 ‘미래를 함께 만들어가자’라는 칼럼을 따로 만들어 과거사 문제를 다루고 있다. 즉 “일본은 21세기에 들어서 과거를 반성하고 동시에 함께 미래를 만들어가자는 생각도 강해지고 있다”는 점을 밝히면서 그러한 예로 2002년의 한・일 월드컵 공동 개최 사실과 1998년 일본을 방문한 김대중 대통령의 연설내용(“과거의 역사인식 문제를 일단락 짓고 교류와 협력의 역사를 열어나가자!”)을 소개하고 있다. 또 다른 교과서에서도 일본의 전쟁책임 문제 등을 비교적 상세하게 다루고 있다. 결국 일본의 중학교 교과서에서는 일본의 전후배상 문제가 흐지부지된 국내외적 원인을 차분하게 서술함으로써, 왜 과거사 문제가 여전히 동아시아의 ‘화두’가 되고 있는지를 학생들에게 이해시키고 있는 셈이다.

중국의 고등학교 근현대사 교과서에서는 일본 교과서처럼 직접적으로 과거사 문제를 거론하지는 않고 있다. 그 대신 별도의 문답 형식을 통해 ‘일본의 패전과 중국의 항전(抗戰)승리에 대한 역사적 의의’에 관한 ‘해방일보’의 사설을 소개함으로써 학생들이 그 문제에 대해 사고하도록 유도하고 있다. 즉 “반세기 이래 우리 중국인민은 일본 제국주의의 침략과 억압을 받을 대로 받아왔다… 일본 침략자는 대규모로 중국에 대한 침략전쟁을 벌여 우리 국토를 유린하였고 우리 동포를 학살하였다…지금 악으로 가득 찬 적들이 중국・소련・미국・영국의 연합세력에 의해 타도되었다… 반세기 이래 우리 중화민족이 받아오던 크나큰 치욕을 씻고 피맺힌 원한을 갚게 되었다.”라는 사설을 제시한 뒤, “무엇 때문에 항일전쟁의 승리를 백년 이래 중화민족에게 있어본 적이 없던 큰 일”이라고 하는지에 대해 생각해보자고 제안한다. 중국 교과서에서는 일본이 중국민족에게 끼친 손실과 치욕을 상기시키는 동시에 일본의 패망으로 치욕을 씻고 원한을 갚았다는 점을 역설함으로써 일본의 중국침략으로 야기된 과거사 문제를 간접적으로 언급하고 있는 셈이다. 이는 1972년의 “중・일 공동선언”에서 일본의 배상을 요구하지 않기로 한 것과 관련이 있는지도 모른다.
중국 교과서에서는 사회주의 건설과정과 개혁 개방 이후의 급속한 발전모습을 보여주는데 많은 지면을 할애하고 있다. 이러한 서술방식은 자연스럽게 사회주의 체제의 업적과 당위성, 국가발전방향의 타당성을 학생들에게 홍보하는 작용을 하고 있다. 체제 이완현상이 심화되고 있는 중국에서는 과거사 문제보다도 사회주의 체제의 우월성을 홍보하고 정당화시키는 문제가 더 중요한지도 모른다. 이는 중화인민공화국사 서술 부분이 근현대사 교과서 지면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고 있다는 점에서도 짐작할 수 있다.

한국의 중학교 역사 교과서에서는 중국 교과서와 마찬가지로 과거사 문제를 직접적으로 거론하지 않고 있다. 이것 역시 1965년의 ‘한・일 기본조약’에서 한국이 일본에 배상을 요구하지 않기로 한 점과 관련이 있는 것 같다. 아니면 과거문제에 매달리기보다는 현재의 당면과제인 남북통일과 경제발전 문제에서 일본의 협조가 필요하고 한・일 공동의 번영이 더 중요하다는 판단에서 비롯되었는지도 모른다. 또한 그것은 “경제재건 비용이 필요했던 한국정부가 일본으로부터 받아내는 청구권 자금을 늘리기 위해 피해 보상액을 제시했을 뿐, 실제로는 국민 개개인이 가진 민간 청구권을 국가가 대행해 행사하고 사실상 포기했다”(문화일보 2005. 1. 17, 6면)는 한일협정 외교문서 관련 신문기사가 보여주듯이, 과거사 문제를 잘못 처리해왔던 우리정부의 원초적 잘못과 비뚤어진 인식에서 기인하는지도 모른다.

과거사 문제는 무조건 덮어두기보다는, 과거사 문제가 우리 사회의 당면문제들과 어떤 관련성을 맺고 있는지, 과거사 문제를 거론할 때 초래될 수 있는 득실(得失)이 무엇인지, 한・일 양국과 동아시아의 공동번영을 추구하기 위해서도 이 문제의 올바른 해결이 얼마나 중요한지 등을 냉철하게 분석하고 소개함으로써, 학생들이 이 문제에 대해 차분하게 생각하도록 유도했어야 하지 않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한국 역사 교과서의 또 다른 특징은, 현대사를 중시하는 중국 교과서와는 대조적으로, 근현대사 부분을 지나치게 소략하고 있다는 점이다. 즉 우리의 처지와 직결된 ‘현대사’를 ‘과거 역사를 위한 장식물’처럼 취급하고 있다. 과거는 현재와 미래를 연결시켜주는 통로이다. 또한 과거를 뛰어넘어 미래로 갈 수는 없다. 그렇다고 현재를 도외시하고 과거에만 매달릴 수는 없다. 우리의 미래는 현재의 모습을 직시하고 당면문제를 슬기롭게 해결하도록 지혜를 짜낼 수 있느냐에 달려있다. 미래의 청사진을 제시하고 실천하는 것이 과거에 안주하는 것보다 더 중요하다!
한국 교과서에서는 현대사를 등한시해서인지 국가의 청사진 역시 명확하게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 국가의 청사진과 관련해서는 정권의 슬로건을 간략하게 소개했을 뿐이다. 한국의 중학교 학생들이 역사 교과서를 통해 ‘대한민국의 목표가 무엇인지’를 파악하는 것은 쉽지 않다. 다만 그들은 노무현 정부가 표방한 “국민과 함께하는 민주주의, 더불어 사는 균형 발전사회, 평화와 번영의 동북아시아 시대”라는, 추상적인 슬로건을 통해 청사진을 엿볼 수밖에 없다. 한국 교과서에는 한국의 당면과제가 무엇이고 그 해법이 무엇이며 어떤 고민을 해야 하는지에 대한 설명이 없다.

이에 비해 일본 교과서에서는 ‘세계 속의 일본’이라는 장을 따로 설정해서 전쟁포기와 군사력의 미(未)보유를 특징으로 한 일본헌법의 개정 움직임과 자위대의 해외파병 등 일본의 ‘우경화’를 둘러싼 국내외의 논쟁을 소개하면서, 일본이 세계평화에 어떤 형태로 기여해야 할 것인지를 고민하도록 유도하고 있다. 게다가 국가의 목표로 여성의 지위향상, 자연환경과 자원의 보존, 인권과 민주주의의 추구, 전쟁포기를 선언한 일본헌법 9조와 핵3원칙의 준수, 세계평화와 세계 모든 국가와의 평등한 관계의 추구, 세계화 등을 제시하고 있다. 일본학생들은 역사 교과서를 보면 일본의 당면문제가 무엇인지, 일본인이 앞으로 어떻게 행동하고 고민해야 할지를 쉽게 알 수 있다.
중국의 역사 교과서에서는 국가의 근본목표로 ‘사회주의 현대화 건설’을, 이를 위한 실천방향으로 ‘중국적 특색을 지닌 사회주의의 길’을 제시하고 있다. 또한 ‘중국의 외교’라는 독립된 장을 설정해서 중국이 앞으로 어떤 방향으로 나아갈 것인지를 상세하게 소개하고 있다. 즉 개혁 개방 이후 중국의 외교방침으로 패권주의와 강권(强權)정치의 반대, 세계평화의 수호, 독립 자주적 외교, 제3세계 국가들과의 관계 중시, 주변국가와의 친선관계 강화와 평화적인 주변 환경의 건설, 대외 개방정책의 견지 등을 제시하고 있다. 중국이나 일본 교과서는 국가의 당면과제와 목표를 학생들에게 분명히 보여주고 있는 셈이다. 일국사(一國史)적이고 과거 지향적인 역사 서술방식은 학생들의 세계인식을 우물 안에 가두어버리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 지금은 ‘과거’보다도 ‘현재’와 ‘미래’를 더 고민해야 할 때다! /윤휘탁 고구려 연구재단 연구위원

* 다음 회는 ‘한·중·일 3국 교과서 비교’의 필자 이찬휘, 윤휘탁, 임상선 3인의 좌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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