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책과 웃음이 머무는 학교의 오후
# 부드러운 햇살이 교정을 감싸는 오후, 서울 강서초등학교 도서관은 수업을 마친 아이들로 금세 활기를 띤다. 이날은 학부모 자원봉사자들로 구성된 도서명예교사회가 운영하는 도서관 수업이 열리는 날. 아이들은 책장을 넘기며 독서에 몰입하기도 하고, 친구와 마주 앉아 이야기를 나눈다. 잠시 머무르는 것만으로도 자연스럽게 책을 펼치게 되는 공간. 강서초 도서관은 그렇게 아이들의 일상 속에 스며들어 있다. 강요 대신 편안함을 내어주는 이곳에서 아이들은 스스로 책과 가까워지고, 토론을 통해 생각을 키우며 함께하는 즐거움을 배워간다.
# 교문을 들어선 순간, 와~하는 학생들의 함성이 들려온다. 인조잔디가 산뜻하게 깔린 운동장에 아이들이 3개 권역으로 나눠 피구를 한다. 공에 맞아 상대편 선수가 아웃될 때마다 환호성과 탄식이 교차된다. 오늘은 강서초가 연례행사로 진행하는 학년별 체육대회 날. 민원 전화 한 통에 운동회는 고사하고 축구도 맘대로 못 하는 현실인데, 강서초엔 아이들의 깔깔대는 웃음소리 가득하다. 올 가을엔 전교생이 참여한 대운동회가 열릴 예정이다.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할까. 강서초는 학부모의 참여·협력·소통으로 함께 가꾸어가는 따뜻한 배움터다. 민원과 반목, 갈등 대신 신뢰와 소통, 화합의 학교다. 이곳에서 학부모는 단순한 ‘지원자’가 아니라 교육의 동반자다.
함께 만드는 학교, 학부모가 움직이다
학부모들 활동은 아침부터 시작된다. 대표적인 활동이 ‘등교 맞이’. 1년에 두 차례 진행되는 이 행사는 한 달 전부터 준비된다. 학부모들은 재능기부로 참여해 풍선을 직접 만들고, 응원 문구를 적고, 선물을 포장한다. 행사 당일이면 정문과 후문에 각각 자리를 잡고 아이들을 맞이한다. 음악을 틀어놓고 “너희가 최고야”라고 외치며 응원 도구를 흔드는 모습은 그 자체로 하나의 축제다. 아이들은 매년 반복되는 이 이벤트를 이제는 설레는 마음으로 기다린다. 약 40분간 이어지는 등교맞이는 아이들에게 ‘학교 가는 길’을 즐거운 경험으로 바꿔놓는다.
등굣길 안전을 위한 노력도 꾸준하다. 학부모들은 매일 15명에서 25명 규모로 팀을 짜 교통안전 캠페인을 벌인다. 학교 앞 불법 주정차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자발적 실천이다. 김태영 교장은 “제가 3년간 지켜본 결과, 예전에는 주정차 차량이 굉장히 많았는데, 지금은 다섯 손가락 안에 꼽힐 정도로 줄었다”고 설명했다.
무엇보다 눈길을 끄는 것은 도서관을 중심으로 한 학부모 독서교육 활동이다. ‘샘터 사랑이 들려주는 아름다운 이야기’의 줄임말인 ‘샘 아이’에는 20~30명 규모의 학부모 동아리가 자발적으로 모여 학생들에게 책을 읽어주고 간단한 만들기 활동을 하며 독서의 기쁨을 알게 해준다. 방과후 프로그램으로 운영되는데 신청은 1분 안에 마감될 정도로 인기가 높다. 김 교장은 “제가 봐도 전문성을 갖춘 교사처럼 준비하고, 학부모끼리 피드백을 주고받는 등 연구를 많이 하신다”면서 “아이들이 너무 좋아해 선착순이 금방 마감될 정도”라며 웃었다.
이러한 참여는 학교교육 전반으로 확장되고 있다. 서울시교육청 공모사업에도 연이어 선정됐다. 지난해에는 ‘생태교육’을 주제로 학부모들이 15개 체험 부스를 직접 운영해 전교생이 참여하는 프로그램을 만들었다. 초록 손 지구마켓으로 이름 지어진 학부모 중심 생태교육은 창체활동시간을 이용, 4~6학년 학생들을 대상으로 참여형 교육으로 실시됐다.

강서초는 생태교육에 이어 올해는 독서교육이 서울시교육청 학부모회 특색활동 공모사업에 선정돼 학교공동체의 핵심적인 역할을 이어간다. 학부모 연수도 활발하다. 소규모로 진행되는 연수는 나만의 향수 만들기, 부모 마음코칭, 아이를 지키는 공감과 경청의 기술 등 다양하다. 특히 이 학교 문수정 생활교육부장이 진행하는 학부모 교육은 큰 호응을 얻고 있다. 가정에서 자녀와의 대화법부터 학교폭력예방, 사고 발생 시 절차, 자녀 문제행동의 효과적 대처 방안 등 꼭 필요한 팁을 알려줘 큰 호응을 얻고 있다.
신뢰와 소통이 만든 변화
이 같은 노력은 성과로 이어졌다. 강서초는 지난해 학교폭력 ‘0건’을 기록했다. 모든 학급을 대상으로 한 예방교육과 적극적인 중재 노력이 빛을 발한 결과다. 김 교장은 “학생들 사이에 다툼이 왜 없겠습니까. 하지만 전문가가 적극적으로 중재하고, 가정과 함께 예방교육을 하다 보니 대부분 사과와 이해로 마무리된다”고 설명했다. 그는 “초등학교 갈등의 90%는 서로 감정을 이해하면 풀린다”며 “그걸 도와주는 게 학교의 역할”이라고 덧붙였다. 이러한 성과를 인정받아 강서초는 지난해 서울시교육청으로부터 학교폭력 예방 부문 교육감 표창을 받았다.
이 모든 변화의 바탕에는 ‘소통’이 있다. 김 교장은 “학교와 학부모 간 민원과 갈등이 증폭되는 이유는 결국 소통이 안 되기 때문”이라고 단언한다. 지난 2024년 교장으로 부임하자 학부모와 교직원들 사이에서 시설과 운영 등 다양한 민원이 쏟아졌다. 하지만 이를 피하지 않았다. 그는 이들의 요구사항을 가능·불가능·장기 과제로 나눠 정리하고 간담회 때마다 PPT를 활용해 직접 진행 상황을 설명했다.
“가능한 건 바로 하고, 시간이 필요한 건 계획을 말씀드리고, 안 되는 건 그 이유를 설명하고 이해를 구했습니다.” 예를 들어 45년 된 노후 건물에서 발생하는 녹물 문제에 대해서도 그는 숨기지 않고 상황을 공유했다. 직접 지역 정치인들을 설득해 6억 원의 예산을 확보했고, 곧 대대적인 공사와 함께 정수기 설치까지 약속을 받아냈다. 학부모들의 불만은 신뢰로 바뀌었고, 해가 갈수록 민원은 줄어들었다. 지금은 학부모들로부터 “학교가 너무 좋다”는 반응이 나올 정도로 달라졌다. 교직원들도 “어떻게 하면 학생들을 잘 가르칠 것인가”에만 집중하는 등 안정된 분위기가 조성됐다.

책과 사람이 중심이 되는 학교
여기에는 40대에 교장으로 부임한 김 교장의 경영 철학과 리더십이 큰 역할을 했다. 그는 “기본이 바로 서지 않는 교육은 언젠가 무너진다”며 “인성과 독서가 가장 중요한 교육의 근간”이라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교장이나 교사 혼자서는 아무것도 이룰 수 없다. 함께해야 한다”는 가치를 제시했다. 이러한 문화 속에서 학부모회의 활동은 더욱 활발해졌고, 참여 열기 또한 높아졌다.
김 교장이 학생들에게 강조하는 것은 ‘첫째, 먼저 인사해라. 둘째, 책을 많이 읽어라. 셋째, 친절해라’ 등이다. 그는 “3년째 같은 말을 하고 있는데 아이들이 이제는 다 외울 정도가 됐다”라며 웃었다. 그는 등굣길마다 아이들의 이름을 불러주며 먼저 인사하고, 아이들은 그런 교장을 보며 환한 미소로 화답한다.
앞으로의 계획 역시 도서관과 독서교육에 맞춰져 있다. 김 교장은 단순히 책을 읽는 것을 넘어 학생들이 직접 책을 만드는 프로젝트도 구상 중이다. “아이들이 자기 이름으로 된 책 한 권을 만들어 보는 경험은 평생의 자부심이 됩니다. 작가로서 한 걸음 내딛는 경험을 선물하고 싶습니다.” 책과 사람이 중심이 되는 학교. 그리고 그 중심에서 아이들이 웃고 자라는 공간. 강서초등학교는 오늘도 교직원과 학부모가 하나가 돼, 학생들이 행복한 학교를 만들어가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