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0년 사이 학령인구 175만 명이 사라졌다. 그런데 이상한 일이다. 학교는 더 분주해지고 선생님들은 더 힘들어졌다. 기초학력이 무너진 아이, 마음이 아픈 아이들, 특수교육과 다문화 교육에 대한 필요성은 더 늘고 있다. 여기에 늘봄학교가 더해지고, 유보통합이 얹어지고, AI 교육이 더해졌다. 아이는 줄었지만 아이 한 명에게 국가가 약속한 것은 몇 배로 늘었다. 이것이 오늘의 학교다.
교육에 경제 논리 대입 부적절
그런데 지금 정부는 학교의 현실과 다른 계산서를 제시했다. 기획예산처는 반세기 가까이 유지된 내국세 연동 원칙, 즉 내국세의 20.79%를 교육에 배분하는 지방교육재정교부금의 근간을 없애버리는 개편안을 보고했다. 학생이 줄었으니 예산도 줄이자는 것이다. 언뜻 그럴듯하다. 그러나 이 숫자에는 치명적인 전제가 숨어 있다. 교육을 학생 수에 단가를 곱한 비용으로 본다는 전제다.
교육은 경제 논리를 따르는 사업이 아니다. 교육재정은 학생 수가 아니라 학교가 감당하는 책무의 총량에 따라 집행돼야 한다. 국가는 학교에 과업을 더할 때마다 교부금을 근거로 삼았다. 일은 늘리면서 돈은 줄이겠다는 것은 계산이 아니라 모순이다.
더 근본적인 문제는 안정성이다. 내국세 연동은 단순한 회계 기술이 아니라 하나의 사회적 약속이었다. 교육만큼은 경기변동과 정쟁의 파고에서 격리하겠다는, 어떤 정부가 들어서도 아이들의 배움만은 흔들지 않겠다는 반세기의 합의였다. 이 고리가 끊기면 교육재정은 해마다 협상 테이블에 오르는 예산 항목으로 전락한다. 불경기가 오면 가장 먼저 깎이는 것이 교육비가 될 것이다. 교원 증원도, 낡은 교실의 개축도, 위기 학생 지원도 모두 1년짜리 계획이 된다.
대다수 국민의 우려는 사실로 증명되고 있다. 전국 16개 시·도교육감이 한목소리로 반대했고, 교총 등 교원단체는 물론 학부모와 교육공무직까지 많은 단체가 긴급행동으로 결집했다. 교육을 직접 관할하지도 않는 광역의회들까지 반대 결의안을 채택했다. 진영과 이해를 넘어 이토록 모두의 공감대가 형성된 사례가 근래에 있었는가? 이 목소리들이 지키려는 것은 정부의 지갑이 아니라 교실의 내일이다.
국가는 마지막 아이까지 책임져야
재정 효율화 논의 자체를 거부하지 않는다. 인구구조 변화에 맞춘 재정 운용의 고민은 필요하다. 그러나 순서가 있다. 미래대응기금 같은 불확실한 약속으로 감소분을 메우겠다는 구상보다, 현행 수준의 교육재정을 법률로 보장하는 안전장치가 먼저다. 보호 장치 없는 개편은 개혁이 아니라 우리 교육 미래에 대한 폐교선언이다. 아이들의 미래를 담보로 잡는 나라에 미래는 없다.
교실이 비어간다고 한다. 그러나 교사들은 아이가 줄어든 교실일수록 한 아이의 무게는 더 무거워진다는 것을 알고 있다. 국가는 마지막 남은 한 명의 아이에게도 최선의 교육을 해야 할 의무가 있다. 교부금은 그 의무에 대한 최소한의 약속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