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명’ 없는 교육정책은 ‘도박’이다

2026.09.08 11:22:41

최근 경기도의 대표적 다문화 도시인 안산을 비롯해 전국 도로 위에 중국산 전기차와 이륜차가 급격히 늘어나고 있다는 보도다. 이는 저렴한 가격과 화려한 디자인, 첨단 제어를 내세운 마케팅으로 인해 소비자의 눈길을 사로잡은 것으로 판단된다. 그러나 우리는 이 상황에서 무언가 서늘한 기시감을 느낀다. 불과 수년 전 몽골과 중앙아시아, 동남아시아 도로를 가득 채웠던 중국산 버스와 자동차들의 운명을 기억하기 때문이다.

 

​초기 가성비로 큰 인기를 끌었던 중국산 차량들은 험준한 지형과 극심한 기온 변화라는 현장의 조건을 견디지 못했다. 부품 수급 불능, 조기 부식, 엔진 결함이 잇따랐고, 결국 수많은 차량이 폐차장으로 직행하며 해당 국가들의 대중교통 정책을 대혼란에 빠뜨렸다. 화려한 스펙만을 믿고 ‘현장 검증’ 없이 속전속결로 도입한 정책이 가져온 예산 낭비이자 참혹한 ‘정책적 도박’의 결과였던 것이다.

 

​오늘날 대한민국 교육 현장이 딱 이 모습이다. 다양한 교육정책들이 ‘증명(검증)’이 안 된 채 도입됨으로써 마치 ‘도박’에 가깝기 때문이다. 이는 일종의 탁상공론과 유사한 것으로 현장의 적합성과 실효성에 대한 엄밀한 검증 없이, 정권의 국정 홍보와 치적 쌓기를 위해 성급히 던져지는 교육정책들이 결국 아이들의 교실을 위험한 실험실로 내몰고 있는 것이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거창한 구호와 함께 새로운 교육정책이 쏟아져 나온다. 하지만 현장 적합성 검증을 거치지 않은 정책들은 화려한 겉모습과 달리 교실에 도달하자마자 동력을 잃고 탁상공론으로 탈바꿈한다. ​가장 대표적인 사례가 충분한 교사 연수와 디바이스 인프라, 독서력·문해력 영향 평가 없이 추진된 디지털 교과서 및 기기 보급 사업이다.

 

​실제로 2010년대 초반 ‘1인 1디지털 기기 보급’ 및 전면 디지털 교과서 도입을 세계 최초로 선언하고 공격적으로 추진했던 스웨덴 교육청은 2023년 공식 정책을 전면 수정했다. 디지털 기기 과다 사용으로 인해 학생들의 문해력과 학력이 눈에 띄게 저하되고 집중력이 산만해졌다는 연구 결과가 쏟아졌기 때문이다. 스웨덴 정부는 유치원 및 초등학교의 디지털 도구 의무화 방침을 철회하고, 다시 종이책과 손글씨 교육으로 돌아가는 예산을 편성했다. 이는 ​한마디로 말해 현장의 상황과 학생들의 발달 단계라는 ‘조건’을 검증하지 않은 채 기술적 화려함만 보고 정책을 밀어붙였다가, 국가 전체 학생들의 기초 학력을 후퇴시킨 명백한 ‘정책 실패’의 사례라 할 것이다.

 

​국내 현장도 예외는 아니다. 돌봄의 국가 책임 강화를 명분으로 추진된 늘봄학교나 AI 디지털교과서(AIDT) 도입 과정에서 나타난 파행은, ‘준비 안 된 정책’이 어떻게 현장을 교란하는지 보여주고 있다. ​초등 돌봄의 양적 확대를 추진하는 과정에서 전담 인력 확보, 전용 공간 확보, 안전 대책에 대한 구체적 ‘증명’ 없이 일정이 하향식(Top-down)으로 전개되었다. 그 결과 정규 수업을 진행해야 할 교사들이 업무 과중과 공간 부족을 호소했고, 돌봄의 질적 담보는커녕 교실 환경의 파행이라는 나비효과를 자초했다. 현장의 적합성을 외면한 치적 위주의 조급증이 낳은 비극이다.

 

​자동차는 고장 나면 부품을 바꾸거나 폐차하면 그만이다. 그러나 교육정책은 실패하면 손상된 한 세대의 인지적·정서적 발달은 어떤 돈으로도 배상할 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한민국 교육이 계속해서 ‘증명 없는 도박’을 반복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크게 세 가지다.

 

첫째, ​정권 임기에 맞춘 ‘실적 조급증’이다. 교육은 ‘백년지대계(百年之大計)’라고 말하지만, 실제 정책 수명은 단체장이나 정권의 임기인 4~5년에 맞춰진다. 정권이 바뀌면 이전 정책은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검증되지 않은 새로운 구호가 다시 현장을 덮친다. 둘째, ​현장 연구의 부재이다. 정책 입안자들은 학술적 이론과 해외 성공 사례 몇 경우를 근거로 정책을 기획한다. 정작 한국 교실의 학급당 학생 수, 교사의 행정 부담, 지역 간 학력 격차라는 ‘실제 상황’은 크게 고려하지 않는다. 셋째, ​환류(Feedback) 시스템의 도태다. 시범 학교 운영이나 연구 학교 단계에서 나오는 교사들의 절박한 경고음은 ‘개혁 저항’이라는 프레임으로 폄하된다. 증거를 바탕으로 정책을 수정하는 정교한 과학적 평가 프로세스가 크게 결여되어 있다.

 

​그렇다면 이 치명적인 도박을 끊어내기 위해 우리는 어떤 입장을 취해야 하는가? 교육정책의 패러다임을 ‘선(先) 도입 후(後) 수습’에서 ‘선(先) 증명 후(後) 확대’로 완전히 바꿔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다음과 같은 과정이나 조건이 필요하다.

 

첫째, ‘교육정책 증명제의 법제화’가 요구된다. ​신약 하나가 시중에 나오기 위해 임상 1, 2, 3상을 거쳐 부작용을 철저히 검증하듯, 대규모 교육정책 역시 단계별 증명 절차를 의무화해야 한다. ​1단계로 일부 지역, 다양한 조건의 학교에서 최소 2~3년간 시범 운영해 보는 것이다. ​2단계로 단순 만족도 조사가 아닌, 학생의 학력·문해력·정서발달 및 교사의 피로도에 미치는 영향을 종단 연구로 데이터화한다. ​3단계로는 교육부가 아닌 현장 교사, 학부모, 데이터 과학자로 구성된 독립 기구가 실효성을 입증할 때만 전국으로 확대하는 것이다. 이처럼 시간이 걸려도 부작용 없이 널리 현장에 적용할 수 있는 준비와 충분한 검증이 필요하다.

 

​둘째, ‘정책 일식제’를 도입하는 것이다. ​검증 없이 도입되었거나, 정권이 바뀌어 동력을 잃은 정책들이 현장에 쓰레기처럼 쌓여 교사를 괴롭히는 구조를 끊어야 한다. 도입된 모든 교육 사업은 3년 후 엄격한 현장 적합성 평가를 받아 ‘증명’에 실패할 경우 자동으로 폐지되는 ‘정책 일식제’를 도입해야 한다.

 

​셋째, 교사를 ‘정책의 대상’이 아닌 ‘입증자’로 세우는 구조를 구축해야 한다. ​중국산 차가 몽골의 추위와 지형을 견디지 못했듯, 정책의 성패를 가장 먼저 알아보는 이는 교실 바닥을 발로 딛고 있는 교사들이다. 관료와 학자의 머릿속에서 나온 정책을 교사에게 이행하라고 강요할 것이 아니라, 교사가 현장 연구를 통해 그 정책의 실효성을 직접 검증하고 수정안을 제출하는 하의상달식(Bottom-up) 거버넌스를 구축해야 한다.

 

​몽골의 혹한과 눈 덮인 도로 위에서 멈춰 선 화려한 중국산 버스들은 겉모습과 가성비만 믿고 현장을 무시한 정책이 치러야 하는 혹독한 대가를 온몸으로 증언하고 있다. ​지금 우리 교실에서 벌어지는 수많은 ‘혁신’과 ‘전환’의 구호들을 직시하라. 그것이 과연 교실의 온도와 아이들의 눈높이라는 현장 적합성을 견뎌낸 ‘증명된 정책’인가, 아니면 국정 치적 쌓기라는 화려한 껍데기만 둘러쓴 ‘위험한 도박’인가?

 

우리 ​아이들의 미래는 정책 입안자의 실험실이 아니다. 단 하나의 정책을 도입하더라도 현장에서 입증된 따뜻한 온기, 검증된 실효성이 담겨 있어야 한다. ‘증명 없는 도입’이라는 도박판을 접고, ‘현장에서 검증된 진실’ 위에 교육을 확고하게 세울 때, 비로소 우리 아이들은 흔들림 없는 배움의 길을 달릴 수 있을 것이라 믿는다.

전재학 교육칼럼니스트, 전 인천 산곡남중 교장 hak0316@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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