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열린 국회 교육위원회 국정감사에서 또다시 씁쓸하고도 치명적인 지적이 도마 위에 올랐다. 이는 작년에 이어 2년 연속이다. 그것은 바로 우리 사회의 ‘블라인드’ 채용에 대한 일종의 신사협정을 위반한 것으로 이 시대 청년들이 가장 민감해하는 공정성을 파괴한 것으로 평가된다.
사연인즉, 올해 서울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로스쿨) 최종 합격자 152명 중 서울대 출신이 94명으로, 전체의 61.8%에 달했다는 사실 자체보다 더 우리 사회를 씁쓸하게 만든 것은 그 과정의 공정성에 던져진 의문이다. 타 대학들은 모두 ‘세로 형식’의 성적증명서를 사용하는 반면, 오직 서울대만 ‘가로 형식’을 고수하고 있다는 점이 지적된 것이다.
신사협정(Gentlemen's Agreement)이란 국가 간 또는 개인·단체 간에 법적 구속력이나 문서화된 계약 없이, 상호 간의 신의와 명예를 바탕으로 맺는 비공식적 약속(또는 합의)을 말한다, 이는 비록 법적 구속력이 없어 한쪽이 이를 어기더라도 법적인 처벌이나 손해배상 청구를 하기 어렵다. 하지만 도덕적·정치적 구속력은 사회가 기대하는 강한 약속에 기인한다. 법 대신 ‘상호 신뢰’, ‘명예’가 이행의 원동력이 되어 위반 시에는 도덕적 비난이나 실추, 상대방의 보복 조치 등을 감수해야 한다. 이는 절차의 간소함으로 인해 정식 조약이나 계약처럼 복잡한 국회 비준, 공문서 작성, 서명 절차를 거치지 않고도 신속하게 합의에 도달할 수 있다.
신사협정의 대표적 사례를 들어보자. 외교 분야에서 볼 때, 1907년 미국과 일본 사이에 체결된 신사협정이 대표적이다. 이는 당시 미국 내 일본인 이민자 배척 움직임에 대해, 일본 정부가 자발적으로 미국행 노동자 이민 비자 발급을 제한하기로 약속했던 사례가 있다. 일상·정치 분야에서도 여야 정당 간에 신사적인 국회 운영을 위해 구두로 맺는 정책 합의나, 기업 간의 과도한 스카우트 자제 합의 등도 신사협정의 일종으로 볼 수 있다.
서두에서 언급한 공정성의 파괴는 블라인드 처리가 지원자의 이름과 출신 학교를 마스킹(검은색 칠) 처리하여 블라인드 평가를 진행한다지만, 서류 외관상의 방향 하나만으로 '이 지원자는 서울대 출신'임을 단번에 알아챌 수 있는 구조다. 더욱 비통한 것은 이 지적이 지난해 국정감사에서도 동일하게 제기되었으나, 1년이 지난 올해까지도 아무런 개선 없이 그대로 방치되었다는 점이다. “서울대는 좀 다르니까, 우리는 특별하니까 서류 형식도 튀어야 하는가?”라는 청년 수험생들의 거친 탄식은, 단순한 투정이 아니라 우리 공교육과 고등교육 입시 전반에 누적된 불공정에 대한 정당한 신음이자 경고음이라 아니할 수 없다.
입시와 채용에서 ‘블라인드 평가’를 도입한 본래 취지는 명확하다. 지원자의 출신 학교, 배경, 가문이라는 후광 효과나 편견을 배제하고, 오직 개인이 쌓아 올린 역량과 학업 성취도, 잠재력만으로 평가받게 하자는 사회적 합의였다. 그러나 종이 한 장의 ‘가로·세로 방향’ 차이가 이 거대한 사회적 약속을 무력화시켰다. 평가위원의 눈앞에 가로로 누운 성적증명서가 놓이는 순간, 굳이 학교명이 적혀 있지 않아도 심리적 무의식 속에는 이미 ‘모교 출신’이라는 선호도가 각인된다. 이는 블라인드 제도의 근간을 흔드는 명백한 ‘실질적 결격 사유’이자, 입시의 투명성을 자진해서 훼손하는 방임이라 할 것이다.
더 나아가 이러한 ‘외형적 차별화’는 공정하게 경쟁하고자 밤을 지새운 타 대학 출신 수험생들에게 깊은 패배감과 불신을 안겨줄 수 있다. “어차피 서류 형태만 보고 다 알아볼 텐데, 블라인드가 무슨 의미가 있는가”라는 허탈감은 우리 사회의 기회 균등 시스템 전체에 대한 신뢰를 무너뜨릴 것이다.
문제가 지적되었을 때 대학 당국이 보인 태도 역시 수험생들에게 더 큰 실망을 안겼다. 학칙과 대학의 자율성을 들며 서류 양식 변경의 지연을 정당화하는 태도는, 최고 지성체로서 서울대가 보여주어야 할 공적 책임감과는 거리가 멀다. 진정한 최고 명문대의 위상과 품격은 타 대학과 다른 ‘독특한 양식의 서류’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가장 엄격한 공정성의 기준을 스스로에게 적용하고, 사소한 오해의 여지조차 선제적으로 차단하는 ‘도덕적 엄격함’에서 나온다는 사실을 다시금 인식할 필요가 있다.
성적표 양식 하나 바꾸는 데 수년의 세월이 걸린다는 변명은, 불공정의 이익을 은연중에 누리고 있다는 의구심을 자인하는 꼴밖에 되지 않는다. 공정성이 의심받는 순간, 서울대 로스쿨이 배출한 인재들의 뛰어난 역량조차 ‘제 식구 감싸기’의 결과라는 불명예스러운 시선에 갇히게 될 것이다.
대한민국 청년들이 바라는 것은 ‘특혜’가 아닌 ‘대등한 출발선’이다. 이들의 불만과 불신을 해소하고 진정한 공정 경쟁의 장을 마련하기 위해 교육 당국과 서울대는 즉각적인 결단에 나서야 한다. 첫째, 표준화된 전국 통일 성적증명서 서식(PDF/데이터화)의 도입이다. 법학전문대학원협의회 차원에서 전국의 모든 대학이 동일한 양식(폰트, 표 구성, 문서 방향, 여백)으로 출력되거나, 원서 접수 시스템(유웨이, 진학사 등)을 통해 규격화된 ‘표준 데이터 전산 서식’으로 변환되어 평가위원에게 제공되는 시스템을 즉시 구축해야 한다.
둘째, 정성평가 기준의 투명한 공개 및 정례 검증이다. 성적증명서 양식 논란이 증폭된 배경에는 40%에 달하는 정성평가의 모호성도 자리 잡고 있다. 평가 항목별 배점, 정성평가의 출신 대학별 평균 점수 등 구체적인 가이드라인과 결과를 투명하게 공개하여 사교육 의존도를 줄이고 입시의 예측 가능성을 높여야 할 것이다.
셋째, 독립적인 외부 공정성 검증 위원회 가동이다. 로스쿨 입시 전 과정에 외부 인사 및 공정성 시시비비를 가릴 교외 참관인을 의무적으로 배치하여, 서류 블라인드 처리 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식별 요소(서식, 특이 과목명 등)를 사전에 완전히 차단하는 ‘사전 검증 필터링 시스템’을 제도화 해야 할 것이다.
서울대학교는 대한민국 교육의 상징이자 최고의 지성 집단이다. 그렇기에 서울대에 요구되는 시대적 사명은 “우리는 남들과 조금 다르다”는 소수 특권의식이 아니라, “우리가 앞장서서 가장 바르고 공정한 기준을 세우겠다”는 선도적 책임감이어야 한다. 가로형 성적표를 세로형으로 바로 잡는 일, 혹은 통일된 데이터 양식으로 서류를 개편하는 일은 결코 복잡하거나 불가능한 기술적 난제가 아니다. 오직 ‘바꾸고자 하는 의지’의 문제일 뿐이다.
더 이상 사소한 서류 외형 하나로 청년들의 땀방울이 부정당하고, 입시의 공정성이 훼손되는 일이 반복되어서는 안 될 것이다. 서울대가 스스로 ‘가로’의 틀을 깨고 공정한 ‘평등의 보편적 균형’을 유지할 때, 비로소 청년 수험생들의 탄식은 신뢰와 존중으로 바뀔 것이다. 지금 필요한 것은 ‘다름’을 자랑하는 오만이 아니라, ‘바름’을 실천하는 획기적인 각성과 결단이라 할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