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년 9월 초 공개된 GPT-6 Astra는 우리에게 또 한 번 거대한 지적 충격을 안겼다. 3년 전만 해도 'AI에게 질문을 잘해야 좋은 답을 얻는다'며 단순히 질문이 강조되었다. 이제 AI는 단순히 질문에 답하는 수준을 넘어 복잡한 문제를 해결하고, 글을 쓰고, 자료를 분석하며, 사용자가 미처 생각하지 못한 아이디어까지 제안한다. 그렇다면 AI를 잘 다룬다는 것은 곧 AI에게 일을 잘 시킨다는 뜻이다.
그러나 이것이 질문의 시대가 끝났다는 뜻이 아니다. 잘 시키는 힘은 '내가 정말 원하는 것은 무엇인가'를 스스로 묻는 데서 시작된다. 시키기는 질문의 다음 단계일 뿐이다. 오랫동안 교실에서 질문수업을 해 온 교사로서, 나는 여기에 두 가지 힘이 필요하다고 본다. 열어서 맡기는 힘과 좁혀서 요구하는 힘이다.
맡기는 힘, 좁혀서 요구하는 힘
질문수업에서 학습지를 배제하고 빈 공책을 스스로 채워 나가게 하는 이유는, 학습지라는 틀, 곧 교사가 정해 놓은 틀 안에 아이들의 생각이 갇히지 않게 하기 위해서다. AI도 마찬가지다. 원하는 방향이 아직 서지 않았을 때가 있다. 이때 억지로 구체적인 지시를 내리면 오히려 내 좁은 생각 안에 결과가 갇힌다.
이럴 때는 구체적이지 않게, 열어서 맡기는 것이 좋다. "이 주제로 재미있는 수업을 구상해 줘"처럼 넓게 던지면, 뛰어난 AI는 맥락을 스스로 읽고 내가 미처 생각하지 못한 관점을 제시한다. 실제로 최신 AI일수록 모호한 요청 속에서도 의도를 파악하는 능력이 좋아지고 있다.
질문수업의 열린 질문과 같은 구조다. 다만 주의할 점이 있다. 열어서 맡기면 AI가 방향을 주도하게 된다. 펼쳐진 여러 관점 가운데 무엇을 고를지는 사람이 판단해야 한다. 무엇이 목적에 맞는지, 무엇이 사실인지 따져 묻는 힘, 즉 열어서 맡기는 힘에는 반드시 고르는 안목이 짝을 이루어야 한다.
반대로 원하는 방향이 분명할 때가 있다. 이른바 전문가들이 AI를 다루는 방식이다. 목적이 분명한 사람이 명확하게 시키면, AI는 그 사람의 관점대로 결과를 내놓는다. OpenAI는 Astra가 특정 조직의 문체와 양식, 디자인 기준을 더 잘 따르도록 개선되어 첫 결과물부터 바로 쓸 수 있는 수준에 가까워졌다고 밝혔다. 구체적으로 요구할수록 AI도 그만큼 정확히 응답한다는 뜻이다. 질문수업으로 말하면 초점을 좁히는 질문에 해당한다.
그런데 구체적으로 시키려면 그 구체성을 담을 '말'이 있어야 한다. '짧게 써 줘'와 '세 문장으로 써 줘'는 다르다. '쉽게 설명해 줘'와 '초등학교 3학년이 이해하도록 비유를 들어 설명해 줘'는 전혀 다른 결과를 낳는다. 자신이 가진 어휘의 크기가 곧 AI에게 시킬 수 있는 일의 크기다. 비트겐슈타인은 '내 언어의 한계는 내 세계의 한계를 의미한다'고 했다. AI 시대에는 내 언어의 한계가 곧 내가 부릴 수 있는 AI의 한계가 된다.
어휘력과 문해력이 필수
AI가 글을 대신 써 주는 시대에 왜 여전히 읽고 쓰기를 가르쳐야 하느냐는 질문을 받는다. 답은 한 가지다. AI가 글을 대신 써 줄수록, AI에게 요구하는 글은 사람이 더 잘 써야 한다. ‘말을 잘한다’는 자신이 원하는 것을 정확한 단어로 표현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 말을 글로 잘 써야한다.’ AI에게 전달되는 것은 결국 글이기 때문이다. 또한 ‘잘 읽어야 한다.’ AI가 들려준 결과가 자신의 의도와 맞는지 판단하는 것이 문해력이기 때문이다.
사회학자 머튼이 이름 붙이고 스타노비치가 읽기 발달에 적용한 '마태 효과'는 어휘에서도 그대로 나타난다. 어휘가 풍부한 아이는 더 많이 읽고, 더 많이 읽은 아이는 다시 어휘가 늘어 격차가 점점 벌어진다. AI 시대에는 어휘력과 문해력의 격차가 'AI를 부리는 힘'의 격차로 이어질 수 있다. 어휘력과 문해력은 이제 국어 교과만의 문제가 아니라 모든 배움의 출발선이다.
그래서 때로는 활짝 열어 맡기는 여유를, 때로는 정확한 말로 좁혀 요구하는 힘을 가르쳐야 한다. 그리고 그 두 힘의 뿌리는 하나, 스스로 묻는 힘과 그 물음을 담아낼 풍부한 말이다.

양경윤
창원한들초 수석교사
'질문수업 어떻게
시작할까' 저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