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 서푼앓이

2005.05.13 10:56:00

충족보다 모자란게 좋다는 교훈

밥상머리 교육


3대(代)가 한집에 살았던 대가족시대에 철들 무렵의 아이는 할아버지와 겸상 시킴으로서 식사매너를 버릇 들였다. 할아버지가 숟가락을 들기 전에 들어서는 안 되고 또 숟가락을 놓기 전에 놓아서는 안 된다. 반찬은 할아버지가 젓가락을 대기 전에 손을 대서는 안 된다.


특별 메뉴가 밥상에 오를 때는 밥상이 들기 전에 어머니가 몰래 불러내어 손대서 안 되는 불가촉(不可觸)식품을 미리 통고했던 것이다. 상추쌈을 먹을 때는 어른 앞에서 입을 크게 벌리고 눈을 부라리는 것이 부덕하다 하여 고개를 돌려서 입에 넣어야 했고... 이처럼 옛 가문에는 나름대로 가문전승의 법도가 정해져 있었다.


율곡(栗谷) 선생은 아이들이 삼가야 할 17조를 정하고 크게 어기면 한번만 범해도 벌을주고, 가볍게 어기면 세 번 범할 때 벌을 주었다. 그중 몇 가지를 가려보자.


부모가 시킨 일을 당장 시행하지 않는 일, 형이나 어른에게 포악하게 말하는 일, 음식을 다투고 사양하지 않는 일, 다른 아이를 업신여기는 일, 과실을 숨기는 일 등등. 기계유씨(紀係兪氏)가문에는 정간공(兪最基) 가훈(家訓)인「육물(六勿)」이 전승 돼 내렸다. 그 여섯가지 하지 말아야 할 일물(一勿)이 잡된 놀음을 하지 말라, 이물(二勿)이 남의 흠을 이야기하지 말라, 삼물(三勿)이 오만하고 간사한 말로 남을 헐뜯지 말라, 사물(四勿)이 인정없이 남에게 야박하게 굴지 말라, 오물(五勿)이 내 주장으로 남의 주장을 이겨낼 생각을 말라, 그리고 심신(心身)을 해칠 일은 하지 말라는 것이 육물(六勿)이다.


요즈음, 정치인들 어릴적부터 이 육물(六勿)속에 자랐던들 지금 같은 답답한 정국을 이루어 놓치는 않았을 것을 하는 생각도 든다.사람의 뇌세포는 1백40억개나 된다. 그 세포 하나하나가 각기 40∼1백여 개의 돌기(突起)를 뻗쳐 서로간에 복잡하게 맥락됨으로써 그 사람의 지성, 감성, 성격을 형성시킨다.


비극의 왕자 사도세자(思悼世子)는 어릴 적에 궁중 잡배들의 아들딸과 칼싸움 놀이에 지새워 세자가 휘두른 칼에 피를 보는 경우도 종종 있었다 한다. 또 그를 시중했던 한 상궁은 결벽증이 심해 옷 입히는 데 무척 까다롭게 굴었다고도 한다.


어린 세자의 뇌세포 맥락에 이것이 프린트되어 장성한 후, 칼에 대한 콤플렉스로 주변 사람들은 물론 심지어 후궁까지 살상하는 씨앗을 뿌렸고, 옷 한번 입는 데 스무 벌을 갈아입어도 성이 차지 않으며 스무 번이나 불에 쬐어 입는 등의 병적인 결벽증을 형성시키고 있다.


맹자(孟子)의 어머니가 세 번이나 집을 옮긴 것도, 증자(曾子)가 부잣집 아이와 노는 아들을 보고 미련없이 이사해 버린 것도 모두 어린 자식의 뇌세포 프린팅을 걱정해서다.

전통 童子訓 발달


우리나라에도 이 프린팅을 예방하는 전통 동자훈(童子訓)이 꽤 발달해 있었다. 법도 있는 가문에서는 서푼앓이를 참아야 한다는 동자훈이 있었다. 아이에게 밥을 줄 때도 십푼(十分)에서 삼푼을 모자라게 먹이고, 옷을 입히고 잠을 재울 때도 십푼에서 삼푼을 춥게 입히고 재우라는 교훈이다.


사랑하는 자녀에게 서푼을 덜하려면 마음의 아픔이 수반되는 것이요, 그래서 서푼앓이란 말이 생겨났음직 하다. 이렇게 하여 충족보다 모자란 것이 있어야 한다는 인생의 교훈을 뇌세포에 프린팅했던 옛 어머니들은 현명하다.


또한 닭을 잡을 때면 아이들을 방안에 가두어 놓고 잡는다든지, 아이 업고 푸줏간 앞을 지나지 말라든지, 아이 손잡고 가다 개가 홀레하는 걸 보거든 눈을 가려주고 걸음을 서둘라는 교훈들도 같은 맥락이다. 오늘의 스승들이 잊고있는 가공할 측면이 아닐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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