긴 호흡의 공교육 회생 프로젝트 마련해야

2009.04.30 16:56:23

■특별좌담-사교육 경감 논란


30년 규제하고 입시 고쳤지만 매번 실패
심야교습 제한 ‘풍선 효과’ 막는 게 관건
학교에 학원강사 모시느니 잡무나 없애라

대통령 직속 미래기획위원회 곽승준 위원장이 최근 ▲학원 교습시간 제한 ▲방과후 학교 민간위탁운영 ▲내신 축소 및 외고 수학, 과학 가중치 폐지 등을 담은 사교육비 경감대책 추진을 시사해 논란이다. 자율형사립고와 국제중 설립, 학업성취도 평가 공개 등 수월성 교육을 추진하기 위해서는 우선 사교육 수요를 잡아야 한다는 현 정부의 의지로 풀이된다. 하지만 당장 한나라당과 교과부가 미래기획위의 ‘오버’를 지적하며 불협화음을 내고 있는데다, 되레 공교육만 약화시키는 것 아니냐는 지적도 나오는 만큼 보다 교육현장을 고려한 보완대책이 함께 제시돼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새로운 사교육 경감 대책이 조만간 나올 것 같은데요.

김학일=심야학원 교습금지 등 강력한 방안과 함께 공교육을 활성화해 사교육을 잡겠다는 의지에는 공감합니다. 하지만 방과후 학교 외에는 내세울 만한 공교육 활성화 방안이 없다는 게 아쉽습니다. 또 학교 교육활동의 90%가 교육과정 운영인데 이에 대한 과감한 자율화 방안 등이 포함되지 않은 것도 그렇고요.

노종희=학원 교습시간 제한 등은 학생들의 건강권 보호 차원에서 긍정적인 측면이 있지만 전반적으로 이번 대책이 사교육 해결에 크게 기여할 것으로 보이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규제나 조치 위주의 사교육 대책은 반짝 효과를 거둘 수는 있으나 이제껏 그랬듯이 또 다른 부작용을 생산해 낼 개연성이 높으니까요.

김선이=사교육에 경감 대책은 지난 30년간 정권이 바뀔 때 마다 나왔지만 그때마다 실패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이번 사교육 경감 방안 역시 실효성 면에서 매우 회의적이고요, 부작용도 클 것으로 예상합니다.

이명준=그래서 사교육비는 날로 팽창해 지난해 20조 9000억 원에 달했습니다. IMF 때도 사교육비는 매년 상승했을 정돕니다. 특히 올해는 영어교육의 활성화로 11.8%나 증가했다는 자료도 있어요. 결국 사교육을 잠재우려면 특단의 대책이 필요합니다. 교과부만이 아니라 관계부처가 합동으로 해결에 나서야 하는데 당정청이 불협화음을 내고 있으니 실효성이 우려됩니다.

-학원 교습을 밤 10시까지로 제한하는 시행령 제정 방안이 제시됐습니다.

이명준=무엇보다 법령 제정이 우선돼야 할 겁니다. 2007년 서울 강동교육청은 밤 10시까지로 규정된 학원교습시간을 지키지 않았다며 모 학원에 대해 시정명령을 내린 적이 있었습니다. 그러자 학원 대표가 교습시간을 제한하는 조례가 법률의 위임이 없어 무효라며 소송을 제기했었는데요, 그 결과 재판부는 위임규정 미비로 교육청의 명령을 무효라고 판시한 적이 있습니다. 치밀한 법령개정과 단속방안을 검토해 실효성을 높이는 것이 관건이라 할 것입니다.

김학일=동감입니다. 학생들의 건강권 보호 차원에서 이는 진작 이뤄졌어야 합니다. 다만 실효성을 어떻게 담보하느냐는 과제입니다. 법적규제나 단속에는 한계가 있기 때문입니다. 학원에 대한 제재로 풍선 효과는 있겠지만 미미할 것으로 봅니다. 오히려 현재 지방에서는 잘 정착된 일반계 고교의 야간 자율학습이 앞으로 일부 학원업자나 학부모 단체 등의 중상모략 등으로 파행을 겪을까 우려됩니다.

노종희=학원 교습시간 제한이 실효를 거두기 위해서는 지속적인 감독과 단속이 필수적으로 요구되는데, 이것이 현재의 행정력으로 실현가능할지 우려됩니다. 교습시간을 제한하면 음성과외와 같은 새로운 출구를 찾게 되는 풍선효과가 나타날 것인데, 이는 분명 과외비의 고액화를 초래하게 것이기도 하고요.

김선이=저 역시 학원 교습시간을 밤 10시로 규제하는 방안이 과연 실효성이 있을까 의구심이 듭니다. 우리의 행정력으로 단속이 실질적으로 이뤄질지도 미지수고요. 오히려 음성적인 사교육으로 고액과외가 성행해 부유층에게 유리한 상황을 만들어 줄 수도 있다는 염려 섞인 목소리가 많습니다.

-학원 수요를 흡수하기 위해 방과후 학교 강화방안도 나왔습니다. 외부 학원의 우수한 프로그램이나 강사를 활용하겠다는 건데요.

노종희=방과 후 학교를 활성화 하는 일은 바람직하지만 학원 프로그램과 강사를 활용하는 것은 특별한 경우에 한해 이뤄져야 합니다. 학교 내 교육 프로그램은 역시 교사들의 손에 의해서 운영되는 것이 바람직합니다. 이를 위해서는 교사들을 잡무로부터 해방시키고 적정한 보상책이 제공돼야 할 것입니다.

이명준=제 생각도 그렇습니다. 이젠 학교에 담당부장이 임명될 만큼 방과 후 학교가 자리를 잡아가고 있습니다. 다만 학원 강사를 활용하는 것은 신중해야 합니다. 학교를 학원화하는 우를 범하기 보다는 교육의 장(場)인 학교가 중심이 되도록 제도가 개선돼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교사가 각종 잡무에서 벗어나 수업방법 개선에 몰입할 수 있도록 해야 하고, 방과 후 학교에서 전문강사로 활약할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김학일=앞서 다 말씀들을 해 주셨는데요, 정리하자면 방과 후 학교 활성화를 위해 가장 필요한 것은 해당 업무를 담당하는 부장제도의 신설과 인력풀의 확보, 그리고 소요되는 재정지원입니다. 전문 학원 업자에게 의존하는 것은 문제가 있어 보입니다만 학교장 관리 하에 프로그램이나 인력풀을 활용하는 시스템은 바람직하다고 봅니다. 특히 예․체능 영역의 경우, 초․중학교별로 분화해 특성화된 내용을 집중 지도하는 시스템을 갖추고 학생들이 이동하게 하면 매우 효과적일 것입니다. 다만 이로 인한 학교관리에 대한 재정적 지원이 요청될 것입니다.

김선이=외부 학원 강사를 활용하겠다는 것은 설익은 방안으로 보입니다. 공교육과 사교육을 경쟁시키겠다는 취지인데 참으로 어이없는 발상입니다. 스타 강사들의 수업이 어떻게 탄생하는지 알고나 있을까요? 그들의 수업은 혼자의 힘으로 이뤄진 게 아닙니다. 그들은 국내 유명 대학의 석박사 출신 조교들을 채용해 그들의 강의를 연구하고 분석해 매일 새롭게 강의 내용을 발전시킵니다. 하지만 학교는 어떤가요. 교사들은 일 년에 수천 건이 넘는 잡무에 눈 코 뜰 새 없고, 말썽꾸러기 지도와 학부모 상담으로 수업에만 집중할 수 없습니다. 이런 수업환경 개선 없이 무조건 외부 학원 강사를 영입하면 학교 수업은 어떻게 될 것인지 생각해  보긴 했는지 의문입니다. 수업개선 로드맵부터 내놔야 하지 않을까요.

-대입에서 내신 반영 비율을 낮추고, 상대평가 방식을 절대평가로 바꾸는 방안도 얘기되고 있습니다. 외고 입시에서 수학, 과학 가중치를 없애는 방안도 검토 중이고요.

이명준=공교육에 대한 신뢰는 내신 강화에 있다고 봅니다. 따라서 내신 반영비율을 낮추면 낮출수록 학교교육은 무너지게 될 것이 자명합니다. 이 점에서 내신 반영비율은 유지돼야 합니다. 또 전환된 지 얼마 되지 않은 상대평가 방식을 또다시 절대평가로 바꾸는 것도 현장에 큰 혼란을 초래할 것입니다. 아울러 특목고 입시는 공교육의 기본인 일반계고교가 정상화가 될 수 있도록 같은 맥락에서 적용돼야 합니다. 수학, 과학 가중치는 외고 입시에서 폐지하는 게 맞다고 봅니다.

김학일=내신 축소 등은 수능과 논술의 영향력 증대를 의미하고 이는 사교육을 증대시킬 것입니다. 그보다는 정기고사 축소와 수행평가 활성화가 대안이 아닐까 싶습니다. 특목고에 대해서는 설립목적에 부합하는 운영을 하도록 철저히 지도해야 합니다. 수학 및 과학 가중치를 없애고, 일부 시도처럼 필기시험을 보지 못하도록 하는가하면, 전문교과 이수에 대한 철저한 확인을 통해 이를 어길 시는 인원감축, 재정지원 중단 등 강력한 조치를 취해야 합니다.

노종희=우리의 사교육 문제는 대입제도를 요리 저리 뜯어고쳐서 해결될 수 없다는 것이 지난 역사의 교훈이 아닌가 합니다. 내신 반영 비율을 높일 때는 언제고, 이제는 무슨 논리로 또 낮춘다는 말입니까. 대입제도의 개편은 하급학교 교육에 막대한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사교육 대책 차원이 아니라 공교육 정상화 측면에서 신중하게 접근해야 합니다. 사교육 문제해결에 있어서 대입제도는 결코 요술방망이가 아닙니다.

김선이=공교육을 정상화 하겠다며 내신 반영 비율을 낮추겠다니 아이러니합니다. 외고입시에서 수학, 과학 가중치를 없애는 방안도 조금 엉뚱하고요. 실제 외고 입시에서 수학 가중치가 2점 정도인데 그것으로 당락이 결정되지는 않습니다. 신중한 검토가 필요합니다.

-사교육 경감을 위해 어떤 처방이 필요할까요.

이명준=한 의식조사에 따르면 학생과 학부모는 사교육의 원인을 학벌주의 대학서열체제라고 인식하고 있습니다. 사교육 감소를 위해서는 능력주의 구현과 대학서열 완화가 가장 필요하다고 답했고요. 하지만 정부의 사교육비 경감 대책에는 학벌주의와 대학서열체제에 대한 언급이 없습니다. 국민의 인식과 정부의 교육정책 사이에 소통부재가 있지 않나 생각합니다. 따라서 사교육비 경감대책은 장기적으로 포괄적인 관점에서 접근해야 할 것입니다. 공교육 강화 정책, 입시제도 개편, 학벌위주 사회구조 개선 등을 면밀히 분석할 필요가 있다는 생각입니다.

김학일=최소한 학교에 교육과정 편성 및 운영의 자율권을 주되 과목 최소화와 학생, 학부모의 수요에 맞춘 교육과정 운영에 나서야 합니다. 교사들은 수업전문성 제고에 뼈를 깎는 노력부터 해야 하고요. 초․중학교의 경우 단일학교 중심의 방과후학교가 아닌 권역별 또는 지역별 거점학교를 정해 다양한 프로그램과 우수교사(강사)가 참여하도록 하고, 참여 교사에 대한 인사상 인센티브를 주는 방안 등이 강구돼야 합니다. 또 입시와 관련해서는 영어인증제의 빠른 도입과 인문사회과정 및 예․체능의 수리영역 수능시험을 폐지하고 대신에 대학 학부 및 학과 특성에 맞는 내신 반영 노력이 필요합니다. 특목고 가중치 부여와 필기고사 폐지도 실시하고요. 이렇게만 해도 사교육비의 70%는 줄 것이라고 봅니다.

노종희=단방약을 찾으려는 조급증을 버리고, 문제가 어렵고 복잡할수록 ‘기본으로 돌아가는’ (back to basics) 중장기적 혜안이 필요합니다. 사교육 문제의 해법이 특별히 따로 있는 것은 아닙니다. 교육현장을 ‘실질적으로’ 변화시켜 공교육을 살려 내는 교육개혁을 이루어내면 사교육 광풍은 자연히 진정될 것이다. 지금 필요한 것은 공론화를 통해 종합적인 ‘공교육 회생 프로젝트’를 국가적 의제(national agenda)로 설정하고, 비록 시간이 걸리더라도 멀고 험한 개혁의 길을 선택해야 할 때입니다.

김선이=답은 공교육 정상화입니다. 어떤 형태로든 존재하는 사교육을 무조건 배척하고 없애려 할 것이 아니라 예체능을 포함해 개인 능력차로 인해 생기는 보완재로서의 사교육 수요는 인정하되, 무너진 공교육의 원인을 찾아 개선해 나가야 합니다.

<참석자>
노종희 한양대 교수
김학일 남양주 와부고 교장
이명준 서울 서초고 교사
김선이 좋은학교바른교육학부모회 사무총장

조성철 chosc@kfta.or.kr
ⓒ 한국교육신문 www.hangyo.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구독 문의 : 02) 570-5341~2 광고 문의: sigmund@tobeunicorn.kr ,TEL 042-824-9139, FAX : 042-824-9140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 | 등록번호 : 서울 아04243 | 등록일(발행일) : 2016. 11. 29 | 발행인 : 문태혁 | 편집인 : 문태혁 | 주소 : 서울 서초구 태봉로 114 | 창간일 : 1961년 5월 15일 | 전화번호 : 02-570-5500 | 사업자등록번호 : 229-82-00096 | 통신판매번호 : 2006-08876 한국교육신문의 모든 콘텐츠는 저작권 보호를 받는 바 무단 전재,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