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교단수기 금상>나비를 키우는 아이들

2016.04.14 20:52:33


꽃 주위를 하늘하늘 날아다니는 오월의 나비를 보면, 교실에서 애지중지 키운 나비들을 창밖으로 날려 보내주면서 너무나 아쉬워했던, 뿌듯해했던 아이들의 모습이 떠오른다.

때는 2010년, 남대구초 재임시절 3학년 아이들과의 특별한 경험이 떠오른다. 3학년 1학기 과학·국어를 통합한 동물의 한 살이 프로젝트가 시작됐다. 내가 교실에서 기르고 싶은 동물이란 주제로 글쓰기를 했는데, 장수풍뎅이, 사슴벌레, 달팽이, 나비를 키우면 좋겠다는 의견이 나왔다. 그 이유는 소리가 나지 않아 공부에 방해되지 않고, 냄새가 나지 않아 공기오염이 없고, 털이 날리지 않아 병에 걸릴 염려가 없다는 것이었다.

모둠별로 장수풍뎅이 애벌레, 장수풍뎅이, 사슴벌레 애벌레, 사슴벌레, 개구리 알, 달팽이를 준비했다. 그런데 나비 알은 쉽게 구해지지 않았다. 수소문 끝에 남해에 있는 나비생태원에서 나비 알을 주문했다. 4월 25일, 배추흰나비와 표범나비의 알이 동대구고속터미널에 도착했다. 생태원 관계자는 나비 알을 택배로 보내면 알이 스트레스를 받아 부화하기가 어려울지도 모른다며 고속버스 화물칸에 실려 보낸 것이다. 그 상자를 승용차 뒷좌석에 조심스럽게 실어 와서 교실로 옮겼다. 상자 속에는 케일화분이 들어있었고 5∼6개의 연두색 나비 알은 케일 잎 뒷면에 오종종 붙어 있었다.

아이들은 ‘나비알 속의 세상’ 상상해 그리기, ‘나비의 꿈’에 대한 글쓰기 등을 하면서 앞으로 태어날 나비에 대한 기대로 술렁거렸다. 나비 알을 관찰하기 위해 과학실로 달려가 실체현미경과 생물현미경을 가져왔다. 알을 잎에서 떼려고 했으나 잘 떨어지지 않아 핀셋으로 꽉 집는 바람에 알 하나가 터져버렸다. 아이들은 소리를 질렀다. “선생님, 제발 좀 조심하세요!” 난 그 순간 정말 미안함과 당황스러움에 얼굴이 빨개졌다. 케일 잎의 일부를 가위로 잘라낸 다음 프레파라트를 만들었다. 아이들은 한쪽 눈으로 알의 모양을 보면서 관찰공책에 알의 모습을 그렸다. 현미경을 보고 관찰한 것을 그리는 일이 아이들에겐 어려운 일이었지만 마치 생물학자가 된 듯 으스댔다. 알이 꼭 노란 옥수수 자루모양으로 생겼다며 몹시 신기해했고 빨리 애벌레로 깨어나기를 기다렸다.

4월 29일 아침, 알을 관찰하던 경수(가명)가 애벌레가 보인다고 소리쳤다. 아이들은 순식간에 몰려들었고, 화분은 ‘퍽’하고 엎질러졌다. 조심조심 흙을 쓸어 담고 다시 케일을 잘 심었지만 가장 먼저 태어난 1령 애벌레는 흔적도 없이 사라져버렸다. 우리는 다시 애벌레가 태어나기를 애태우며 기다렸다. 이틀 뒤 애벌레가 줄줄이 태어났다. 쉬는 시간이면 아이들은 애벌레의 행방을 찾느라 분주했다. 애벌레들은 하얀 실처럼 가늘고 기다란 구멍을 길게 남기며 케일 잎을 활보했다. 꼬물거리는 애벌레들을 주말 동안 교실에 남겨두고 가는 날, 아이들은 밤에 너무 깜깜해서 애벌레들이 무서울 것이라 걱정했다. “손전등을 달자”, “촛불을 켜자”, “야광스티커를 붙이자” 등 여러 의견을 제시했다. 결국 아이들은 야광별 스티커를 수조유리벽에 촘촘히 붙여두고 집으로 돌아갔다.

재량휴업일과 토요일, 일요일을 지내고 온 아침, 머리카락 굵기로 눈에도 잘 보이지 않던 애벌레가 케일 잎의 여기저기에 구멍을 숭숭 뚫어놓고 앙상한 가지에 길게 늘어서 있었다. 부랴부랴 남해에 케일 화분을 다시 주문했다. 아이들은 애벌레를 꺼내 손바닥이나 손등에 올려놓고 쓰다듬기도 하고, 심지어는 얼굴에 붙이기도 했다. 배추흰나비 애벌레를 꿈틀이, 서커스맨이라고 불렀고, 표범나비 애벌레를 깜상이라고 불렀다.

아침에 등교하자마자 아이들은 애벌레를 꺼내어 자로 재어보고 꼼꼼히 기록하느라 분주했다. 배추흰나비와 표범나비의 모습은 많이 달랐다. 배추흰나비는 연초록 원피스를 입은 상큼 발랄한 소녀의 모습이라면 표범나비는 검정색에 노란 줄무늬 원피스를 입은 화려한 숙녀의 자태를 뽐냈다. 애벌레는 아이들의 사랑 속에서 무럭무럭 자라났다.

5월 17일 아침, 애벌레가 사라지고 유리벽에 배추흰나비 번데기 두 마리가 붙어있었다. 번데기는 색깔이 초록색이고 등 쪽에 뾰족한 모양이 있었으며 가장자리 부분에 점이 줄지어 있었다. 아이들은 유리벽에 붙어있는 번데기의 배 부분을 손가락으로 간질이기도 하면서 빨리 나비가 돼야 한다고 재촉했다. 배추흰나비가 번데기가 된 후 표범나비 애벌레는 배추흰나비 애벌레보다 훨씬 빠른 속도로 자라 배추흰나비보다 훨씬 커졌다. 이런 속도로 자라면 아마도 나비가 굉장히 클 것이라고 기대했다. 아이들은 표범나비와 배추흰나비의 성장과정을 꼼꼼히 기록하면서 나비에 대한 애착과 사랑을 키워나갔다.

배추흰나비와 표범나비가 변화하는 동안, 창문 쪽 한 켠에서 살고 있던 올챙이에게도 변화가 왔다. 뒷다리가 나오고 앞다리가 나오고 드디어 개구리가 됐다. 개구리 크기는 새끼손가락 한마디 정도였다. 아이들은 개구리의 먹이를 구하는 방법에 대해 협의했다. 개구리는 살아있는 모기나 파리를 먹어야 하는데 그것을 구해줄 수 없기 때문에 개구리를 어항에서 키우는 일은 불가능하다는 결론을 내리고 학교에 있는 연못에 풀어주기로 했다. 아이들은 ‘3학년 1반 개구리가 살고 있어요.’라는 팻말을 만들어 연못가에 세워두고 개구리를 연못에 풀어주고 왔다.

이렇게 나비와 개구리의 모습이 변화하는 동안 교실 뒤편 사물함 위에서 살고 있던 사슴벌레와 장수풍뎅이 애벌레에게는 별다른 변화가 없었다. 아이들은 ‘미련 곰탱이, 느림보’라고 부르며 하루에도 몇 번씩 사육 상자의 톱밥을 파헤치고 애벌레를 꺼냈다가 집어넣기를 반복했다. 장수풍뎅이 애벌레는 굵다란 굼벵이 모양으로 하얀 몸이 여러 개의 마디로 돼 있고, 구부러져 있었다. 손가락 세 개를 합한 정도의 굵기인 굼벵이를 아이들은 마치 장난감 다루듯 했다.

쉬는 시간이었다. 철호(가명)가 앞으로 나와서 장수풍뎅이 애벌레의 크기가 줄어들었는데, 아마 다른 친구가 자기 애벌레를 바꿔치기한 것 같다고 울먹였다. 서희(가명)가 일어서서 그런 것이 아니라 애벌레에서 번데기로 되려고 몸을 움츠리기 시작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6월 말쯤에 번데기가 될 예정인데 벌써 번데기가 될 리 없다는 말에 더 두고 지켜보기로 했다.

그 때 교실 뒤쪽에 갑자기 아이들이 몰리기 시작했다. 장수풍뎅이와 사슴벌레가 싸움을 준비하고 있었다. 나무껍질 위에 장수풍뎅이와 사슴벌레가 위풍당당하게 올라서 있었다. 장수풍뎅이는 껍질이 몹시 반짝거리고 뿔이 멋졌다. 아이들은 장수풍뎅이가 이길 것이라고 장담했다. 그에 비해 사슴벌레는 색깔이 검고 윤기가 별로 없었다. 두 마리는 나무껍질 위에 서서 서로의 몸을 더듬거리기만 했다. 아이들은 왜 책에서 본 것처럼 싸우질 않느냐고 두 곤충에게 항의했다. 싸울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그런데 갑자기 사슴벌레가 장수풍뎅이의 옆구리를 공격했다. 사슴벌레의 갑작스러운 공격에 장수풍뎅이의 등에 구멍이 났다. 아이들은 끔찍한 장면에 놀랐고 사슴벌레가 정말 세다고 입을 모았다.

휴일이 지나고 오자 노란색 바탕에 검은 무늬가 있는 배추흰나비들이 날개를 접고 유리 수조 바닥에 앉아 있었다. 그토록 기다리던 나비의 모습을 보고 우화과정을 놓쳐 버린 것을 내내 아쉬워하며 아이들은 박수를 치고 환호했다. 하지만 나비 번데기의 우화는 천적으로부터 살아남기 위해서 밤에 이루어진다는 진수(가명)의 말을 듣고 아쉬움을 달랬다. 우리는 우화과정을 동영상으로 보면서 번데기가 혼자서 얼마나 끙끙대며 껍질을 뚫고 나왔을까? 하며 나비의 노고에 대해 이야기했다.

5월 22일 일찍 학교에 온 지혜(가명)가 눈물을 그렁그렁 매단 채 나에게 달려왔다. “선생님, 배추흰나비가요. 가만히 누워 있어요. 움직이질 않아요.” 배추흰나비 한 마리가 힘없이 바닥에 쓰러져 있었다. 아이들은 배추흰나비의 죽음을 보고 슬퍼했다. 왜 죽었을까? 그 이유를 협의한 결과 바로 먹이라는 사실을 알게 됐다. 나비가 꽃의 꿀을 먹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다음날 아이들은 설탕물과 꿀물을 가져왔다. 하지만 나비들은 하루 종일 그것 근처에는 얼씬거리지도 않았다. 아이들은 애써 키운 나비들이 다 죽을 것이라고 걱정하면서 밖으로 보내주기를 원했다. 죽은 나비를 밖으로 꺼내려고 하는데 다른 배추흰나비 한 마리가 밖으로 날아 나왔다. 아이들은 박수를 쳤다. 배추흰나비가 창밖으로 날아갔다. 아이들은 “잘 가” 라고 하면서 손을 흔들어주었다. 나머지 세 마리도 꽃의 꿀을 구할 수 없으니 놓아주는 것이 좋겠다는 의견이 모아졌다. 우리는 사육 상자를 열고 배추흰나비를 날려 보내주었다. 나비들은 날개를 하늘거리며 창밖 세상을 향해 날아올랐다. 아이들의 얼굴엔 아쉬움과 뿌듯함이 뒤범벅됐다. 몇몇 아이들은 날아가던 나비가 뒤돌아보면서 고맙다고 인사를 했다며 서운함을 달래었다.

5월 27일, 표범나비가 우화했고 장수풍뎅이 애벌레가 번데기가 됐다. 그리고 상주에 있는 농원에서 1령 누에들이 교실에 도착했다. 아이들이 집으로 돌아가고 난 조용한 교실에 누에들이 뽕잎을 씹는 소리가 사각사각 쉬지 않고 들렸다. 누에들은 누에고치가 되고 빨강, 노랑, 파랑 번데기가 되고 나방이 됐다.
며칠 전 ‘내 생애 최고의 선생님’이라는 제목으로 소연(가명)이로부터 메일이 왔다. 수목원 나비를 보니 멀리 떠나가신 선생님이 보고 싶다는 내용이었다.

‘얘들아, 나도 그 때의 너희들이 무척 그립단다. 너희들이 생명의 소중함, 자연의 아름다움, 우리 반에 대한 자부심으로 행복해하는 모습을 볼 때마다 난 너희들이 너무 소중하고 너희들의 해맑은 모습이 너무 아름다워 가슴이 넉넉했단다. 사랑한다. 보고 싶다. 얘들아.’
송의연 대구용지초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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