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교단수기 금상>낭중지추의 또다른 의미

2016.06.30 17:47:28


2015년 10월 17일 토요일은 특성화고 대상 공업기계직 9급 공무원 필기시험을 시행하는 날이다. 이제 10일 남았다. 오늘은 학교장 재량 휴업일(가을 방학)이 시작되는 날인데도 불구하고 11명의 기계직 공무원반 학생들이 등교해 지도교사인 나를 보고 인사한다. 5명은 기계과 학생, 5명은 자동차과 학생, 1명은 자동차과를 졸업한 공무원 3수생이다.

매일 밤늦게까지 학교에서 공부를 하는 우리 아이들, 오늘은 아침부터 서너명이 졸고 있어 약간 힘이 빠진다. 그래서 한마디 했다. “여러분들, 어제 내가 말했죠. 이젠 잠자는 시간을 줄이라고. 잠이 오면 여러분도 이젠 성인 몸과 같으니까 커피 한잔 정도 마시라고. 몇 그램도 되지 않는 눈꺼풀, 위로 들어!” 깜짝 놀라 잠을 깬 한 아이가 “선생님, 어제 잠이 많이 와서 커피 한 개를 타서 먹었는데, 계속 잠이 와서 또 먹고 또 먹었는데도 계속 잠이 와요. 커피 3잔 먹어도 잠이 오는데, 잠 안자는 방법 없나요?”란다. 어이가 없기도 하고 기특하기도 하고.

갑자기 이 아이들에게 ‘어떻게 하면 얼마 남지 않은 기간 동안 열심히 공부할 수 있는 동기를 마련해 줄까? 넌센스 퀴즈나 유머도 좋겠지만 그것보다는 10일 동안 아이들의 가슴을 울릴 수 있는 얘기가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 수업을 멈추고 두 제자에 대한 이야기를 시작했다.

자동차 정비사를 꿈꾸던 찬호

먼저 2006년 2학년 자동차과 1반 담임을 맡았을 때 부반장이였던 제자 용찬호에 대한 이야기다. 찬호는 자동차정비기능사 자격증을 1학년 때 혼자 공부해서 취득하고 성적이 항상 1등이었다. 키도 작은 편이고 머리카락이 이현세 만화의 주인공 ‘설까치’처럼 쭈뼛쭈뼛한 직립모의 학생. 찬호를 보고 있으면 ‘정말 열심히 생활하는 놈이구나’라는 느낌이 들어 하루는 찬호를 불러 이것저것 물어보게 됐다.

“너는 뭐가 되고 싶니?” “최고의 자동차정비사가 되고 싶어요.”

“아니야, 너 정도의 의지와 실천이라면 공부해도 돼.” “아니에요, 선생님. 시간 나는 대로 영어공부하고 있는데, 몇 년을 쉬었더니 머리에 들어오지 않고, 공부는 내 적성에 맞지 않는 것 같아요.”

“너는 공부해도 돼. 10여년 교직 생활하면서 보니 진짜 대학 공부해서 성공할 수 있는 애는 너같은 애들이더라. 너같이 공부를 소처럼 뚜벅뚜벅 하다보면 네 삶을 더 밝게 열어갈 수 있어.”

“선생님, 저는 꼭 자동차 정비사가 될 겁니다. 중학교 입학하면서 아버지가 돌아가셔서 방황하고 있을 때, 담임이 하루 결석했다고 엄청나게 야단치셔서 또 결석했더니 엄마를 학교에 모시고 오라고 하고. 학교가기가 싫어 자꾸 결석하게 됐어요. 그때 엄마가 오산의 아빠친구로부터 일자리가 생겼다는 연락을 받고 인천에서 전학을 오게 됐어요. 전학해서도 어영부영 놀다가 중2학년 여름방학 때 우연히 엄마가 일하는 곳으로 가고 싶다는 마음이 들었습니다. 36℃가 넘었던 한여름에 엄마 직장을 찾아갔는데, 엄마가 절단기로 자동차를 자르고 있는 모습을 보게 됐어요. 엄마는 항상 ‘일하는 곳에서 사무도 보고 다른 분을 조금 도와준다’고만 말했는데, 너무나 다른 광경을 보고 엄청 놀랐죠. 가슴이 너무너무 아팠어요. 그래서 자동차 정비사가 돼 돈을 엄청 벌거라고, 엄마에게 다시는 이런 일 하지 않게 할 거라고 다짐했습니다. 최고의 자동차 정비사가 제 삶의 목표입니다.”

찬호가 끝까지 고집을 부려 어머니께 전화드려 사정을 이야기하고 학교에 오시라고 했다. 교무실에 셋이 앉아서 ‘대학가라’고 아무리 부탁하고 달래도 찬호의 생각은 변화가 없었다. 한참을 조용히 계시던 엄마가 말문을 열었다.

“찬호야. 네 인생은 네 인생이다. 어느 부모도 자식의 앞길을 막지 않는다. 엄마를 위한 삶을 살지 마라. 너에게 엄마가 어떻게 보일지라도 자동차 기름 묻은 옷에 가스 절단기로 철을 자르는 엄마의 모습은 엄마의 인생이다. 네 인생을 뚜벅 뚜벅 걸어가라. 이 엄마는 네가 엄마를 위해 사는 것이 싫다. 너 자신을 위해서 열심히 살았으면 해.”

엄마의 이 길지도 않은 몇 마디에 찬호의 눈에는 눈물이 금세 고였다. 찬호 엄마의 눈에도 마찬가지였다. 그러나 찬호 엄마는 끝까지 눈물은 흘리지 않으셨다. 바라보고 듣고 있던 나도 무엇에 얻어맞은 듯한 느낌을 받았다.

결국 찬호는 숭실대학교에 입학하게 됐다. 군 전역 후에 찾아온 찬호에게 ‘앞으로 찾아오지 마라. 찾아오려면 성공한 걸 보여줄 수 있을 때 오라’고 했다. 가끔 핸드폰에 있는 찬호엄마의 메신저 사진을 보면서 찬호가 잘 해내고 있을 것이라고 믿고 있다.

보디빌더에 빠진 승빈이

이번에 이야기 할 제자는 2009년에 담임을 맡게 된, 항상 빡빡머리를 하고 다니는 안승빈 학생 이야기다. 2009년 2월 겨울방학 때 당직 근무를 하고 있는데, 물려입을 헌 교복이 없냐는 학부모 전화가 왔다. 학교로 오시라고 했더니 바로 오셨던 그 어머니는 교복을 고르면서 남편 회사의 부도로 아들 둘인데 생활이 너무 어렵다고 말씀하셨다. 자동차과 신입생 담임으로 내정돼 있던 터라 내가 그 학생의 담임이 될 수도 있겠단 생각에 관심을 갖고 들었다. 어머니는 승빈이가 중2때 보디빌더에 빠지기 전까지는 공부도 아주 잘했었다고 말씀하셨다. 정말 승빈이는 우리반 학생이 됐다.

1학년 기말고사 전까지 승빈이에게는 특이사항이 없었다. 그런데 기말고사를 코앞에 두고도 아침부터 계속 졸기만 하는 일이 반복돼 승빈이를 불러 이야기를 나누게 됐다. 알고 보니 승빈이는 동네 체육관에서 일을 하고 있었다.

“선생님, 새벽에 일어나 6시에 체육관 문을 열고 손님 맞을 준비를 다한 다음, 등교하면 좀 피곤해서 잠이 오는데 앞으로는 조심하겠습니다.” 그러나 이렇게 말하면서도 승빈이의 얼굴은 너무나 밝았다.

“선생님, 보디빌더로 저를 지도해줄 스승님을 찾았는데 제자로 받아 주지 않으시더라고요. 그래서 제 맘대로 몸으로 때우기로 했지요. 매일 새벽에 일어나 체육관 문을 6시 정각에 열고 방과 후에도 체육관에 가서 운동도 하고 11시부터 2시간 정도 청소를 하고요. 이렇게 몇 달을 했더니 보디빌딩에 대해 조금씩 지도해 주고 계세요. 스승님 한마디 한마디가 제게 너무 도움이 돼서 힘든 건 전혀 없습니다. 제가 좋아하는 것인데요.”

담임으로서 도와줄 수 없어 가엽고 안타까웠지만 승빈이는 내 걱정이 무색할 정도로 웃고 있었다. 승빈이에게 보디빌더는 근육만 잘 만들면 되는 것이 아니고, 앞으로 지도자가 되려면 인체에 대한 지식뿐만 아니라 대인관계를 위한 심리학 등도 틈틈이 공부해야야 된다고 말했다.

그 뒤로 승빈이의 손에는 인체, 심리 등에 관련된 책들이 항상 들려 있었어다. 졸업할 때까지 몇 권 읽었냐고 했더니 학교 도서관에 있는 인체나 심리 관련 책은 거의 다 읽었다고 했다. 승빈이는 전국대회에 출전해 좋은 성적으로 입상하더니 결국 한국체육대학교에 입학했다. 한국체대에 입학이 확정되던 날, 승빈이 엄마는 전화를 하셔서 “선생님, 승빈이 우리 아들이라 자랑이 아니라 정말로 대단한 아이에요. 자신이 정한 시각에 정확히 일어나고 운동 없는 시간이나 휴일에는 컴퓨터로 자신이 궁금한 인체에 관한 내용을 모두 찾고 이해하려고 했어요. 이해하지 못한 것이 있으면 출력해서 방 벽에 붙여 놓고 매일 보더니 어느새 한 방 가득 채우더라고요. 다 이해한 부분은 떼고, 새로운 것을 다시 붙이고를 여러 번 했지요. 언제나 변함없는 모습의 승빈이를 보고 아이 아빠도 ‘내 아들이지만 존경스럽다’는 말까지 하더라고요”라고 말씀하셨다.

두 제자의 이야기를 들려주고 보니 공무원반 아이들의 눈이 커져 있었다. 갑자기 7월 중순부터 10월 초까지 하루에 3시간씩 한결같이 함께 공부한 이 아이들의 모습이 찬호와 승빈이랑 겹쳐 보였다.

낭중지추(囊中之錐)라는 사자성어에 나는 다른 의미를 붙여 주고 싶다. 주머니와 같이 닫혀있고 캄캄한 상황에 놓이더라도 자신의 의지와 행동을 일치시켜 정성을 다한다면, 송곳처럼 능력을 발휘해 주위 사람들에게 인정을 받게 된다는 의미로 말이다. 우리 공무원반 아이들 모두가 이번 시험 합격을 통해 어느 곳에서나 송곳처럼 빼어난 재능을 발휘할 수 있는 인재가 되기를 바란다.
서영달 경기 수원공고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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